롭 레터만 감독(2010) / 미국
<걸리버 여행기>는 원전을 현대판으로 각색한 영화이다. 예고편에서 보인 코믹적인 내용이 보고 싶은 충동을 자극하게 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걸리버는 신문사에서 우편배달업무를 맡고 있다. 물론 그도 유명한 여행 작가를 꿈꾸고 있지만 현실에서 보면 그건 그저 꿈에 불과하다. 걸리버의 모습은 일단은 무능력하게 그려진다. 더군다나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상관으로 발탁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자신의 존재감에 회의를 느끼던 걸리버는 결국 큰 사고를 치고야 만다. 버뮤다 삼각지에 여행기에 자원하게 된 것이다. 버뮤다 삼각지는 숱한 의문을 낳은 미스터리 한 공간이다. 여기에서도 이곳은 걸리버가 소인국으로 가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마치 블랙홀처럼 빨려드는 급류에 휘말린 걸리버는 소인국 '릴리풋'에 도착하게 되는데…….
<걸리버 여행기>는 희화적인 요소가 짙다. 난데없이 영화 <트랜스 포머>에 나올 법한 로봇이 등장하고 - 물론 내부에서 조종하는 인간이 있긴 하지만 - 대형 네온사인과 간판으로 장식된 걸리버만의 특화된 도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소인국 '릴리풋'에서 걸리버는 더 이상 뉴욕에서 대우받던 찌질남이 아니다. 궁전의 화재를 진압하고, 적군을 물리친 영웅인 것이다. 물론 이런 그의 역할은 소인국이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는 하다. 이는 어찌 보면 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력하고, 조소의 대상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어떤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예기치 않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더군다나 짝사랑의 대상인 달시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그가 소인국에서는 공주와의 사랑을 이어주는 메신저의 역할까지 자처하고 나서게 된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걸리버 여행기>에는 소인국과 거인국이 존재한다. 물론 이는 걸리버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걸리버가 소인국에서는 거인으로서 영웅의 대접을 받지만, 거인국에서는 그저 어린아이의 장난감 인형으로 전락한다. 같은 대상이 상황에 따라 그 쓰임이 틀려지는 것이다. 비록 사회에서 무능력한 인간의 전형인 모습을 보였던 걸리버도 그에게 주어진 상황에서는 그 어떤 위기도 감내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투지를 가진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상황은 사람을 만들고, 변화시킨다. 우물 안 개구리가 외부의 세계를 알 수 없고, 온실 속의 화초가 자연의 광대무변한 진리를 깨칠 수 없듯이 인간도 한 곳에 머물면 사고나 행동이 고착화된다. 세상은 한없이 넓기에 주어진 환경에 적응만 하려는 소극적인 자세보다는 새로운 환경을 찾아 나서라는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