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정체와 행방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의원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세자와 심복 무영의 행적은 마치 조지프 캠벨이 쓴 《천의 얼굴을 가진 여정》에서 영웅의 모험을 떠올리게 한다. 모험에의 소명을 받은 주인공이 갖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하는 목표에 도달한다는 설정은 소설과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다.
이번 회차 첫 장면은 세자와 무영이 계곡이 있는 산속에서 불을 피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세자가 농으로 삼족을 멸한다는 말에 무영은 갑자기 자세를 바로 곧추세운다. 이내 농인 것으로 알고 긴장을 늦춰보지만, 권력자의 한마디 말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무영 또한 그렇게 어필한다. 세자 저하 입에서 삼족을 멸한다는 말이 나오니 어찌 겁을 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다음 날, 말을 타고 산 길을 가면서 세자는 다시 농으로 삼족운운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살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세자 일행이 목표 장소인 그들이 찾던 지율헌에 도착하기까지는 이렇다 할 어려움이 없었다. 정작 문제는 도착하고서야 발생했다. 의원의 모습은커녕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적막한 지율헌의 풍경은 그들에게 다가올 위기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마치 누군가와 결전을 치르듯 문조차 폐쇄시킨 채,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는 그곳이 더욱 살풍경한 곳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수한 죽창이 둘러싸인 담장과 대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극을 더욱 긴장의 회오리 속으로 몰아간다.
담장 너머의 상황을 예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담을 넘는 것은 무영이다. 담을 넘는 자와 말위에서 이를 지켜보는 자, 여기서도 신분의 대비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영화 <기생충>에서 봉준호 감독이 의도적으로 장면의 경계를 통해 신분의 대비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세자와 이를 호위하는 무사의 역할은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담장을 넘었던 무영이 목도했던 것은 지율헌의 살벌한 풍경이었다. 곳곳에 죽창이 마치 눈으로 째려보듯 널려있고, 살기가 맴도는 적막하고 음습한 공간에는 수십구의 사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율헌에서 발견된 사체들은 대부분 힘없는 민초들이다. 피골이 상접한 사체 또한 무언가 물어뜯은 흔적으로 더욱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다. 이런 장면은 상황의 심각성을 고조시키는 장치로 활용된다.
당시 그 지역의 관리자였던 부사는 민초들이 먹을 것도 없어 죽어 가는 와중에서도 잔치를 벌이다 수십구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관아로 간다. 거적때기를 덮은 즐비하게 늘어놓은 수많은 시신은 과거 민간인 학살로 인한 주검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당시 사용되었던 죽창이 이 극에도 등장한 것을 보면, 단순히 <킹덤>이 공포 스릴러 영화로만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충분하다. 감독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좀비 영화에서 나올법한 장면이 과거 우리 역사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지율헌의 비극이 알려지면서 관아에 모여든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부사와 이방, 포졸들이 포함된 관헌들과 죽음의 희생양이 된 유족, 이를 바라보는 민초들이다. 수십구의 사체가 나온 비극적인 상황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관헌들과 민초들의 선명한 대비다. 관헌들은 다소 우스꽝스럽고, 희화화되는 반면 민초들은 사뭇 진지한 자세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의녀 서비와 그의 남편은 적극적으로 좀비의 부활을 경고하는 하는데 비해, 부사를 포함한 관헌들은 그 사실을 알려주는데도 소극적으로 사태를 주시하는 정도에 그친다. 소수가 아는 진실을 대중이 알지 못했을 때, 대중은 위기에 처한다. 백척간두에 놓인 운명 앞에, 지율헌의 일원이었던 그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소리치지만 늘 그렇듯 권력자들은 그런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희생하는 것은 늘 민초들이다.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조학주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인물이다. 권력을 위해서는 죽은 사람도 살릴 정도로 그 욕망이 하늘을 찌른다. 생과 사를 가른다는 생사초는 진시황의 불로초에서 그 모티프를 따온 듯하다. 결국 생사초로 인해 촉발된 비극은 죽은 왕을 살려냈고, 그런 허수아비 같은 왕에 기생한 권력은 괴물이 되어간다. 정작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역병에 걸린 사체가 아니라 조씨 일당의 무모한 권력욕이 아닐까? 왕을 괴물로 만든 그들은 왕보다 더한 괴물이 되어 그들 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야욕에 빠져있다. 권력에 눈먼 이들은 누군가 희생양을 만들고, 그로 인해 그들의 권력을 보전한다. 여기서는 조학주가 그런 인물이다. 당시 기득권이었던 유생들 또한 새로운 권력에 빌붙기 위해 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권력의 나침반은 늘 힘센 자에게로 향한다.
<킹덤>에서 가장 획기적이었던 아이디어는 역병에 걸린 사체가 밤이 되면 부활하고, 다시 낮이 되면 죽음을 맞이한다는 설정이다. 이런 설정은 서양 좀비 영화에서도 차마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요소다. 결국 이런 한계점 설정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치로서 효과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번 회차에서 중요한 점은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상황들이 하나둘 벗겨진다는 것이다. 왕의 정체, 좀비의 속성, 조 씨 일당의 음모 등 사전 정보들이 오픈된 상태에서 과연 세자와 무영은 어떤 행로를 걷게 될 것인지 기대된다.
☞ 3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