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꽃은 사람이라는 꽃이다. 사람이라는 꽃. 오죽하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있을까? 너무 상투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람을 꽃처럼 여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사람에게는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그것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향기가 나서 좋다. 그렇다고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어떤 경지에 이르러서도 아니다. 내 정체성이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내 운명일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흐를수록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줄어든다. 세파에 찌들어 영악해진 탓도 있지만 다들 마음에 상처를 담고 있는 이유가 크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다가가지 않으려는 이유도 그만큼 여력이 없다는 반증이다. 혹여 인간적으로 다가가도 곧잘 의심하기 일쑤다. 그런 상황이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불쌍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인간군상들이 만들어 낸 화단 속에서 살아가려면 때론 역겨운 향기도 맡아야 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다행이겠지만 그런 사람만 만나기란 쉽지 않다. 세월이 흐를수록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도 새롭게 만나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예 좋은 향기를 맡을 생각을 하기보다 내 코를 적응시키는 편이 빠르다. 그럴 때 필요한 덕목이 인내와 배려, 이해심이라는 것들이다.
인간에게 받은 상처는 인간을 통해 치유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죽도록 미워해도 결국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라면 그 가치를 추종하는 것이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비결일 수밖에 없다. 내가 그토록 인문학을 배우려고 하는 것도 아직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처도 쉽게 받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인간을 사랑하는 일을 결코 멈추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내가 행복해질 수밖에 없는 정체성이 쉽게 변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침체일로를 걷고 있지만 이전처럼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진력하고 싶다. 그것이 인류애와 같은 거대한 담론은 아닐지라도 인간 자체를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내 존재감과 정체성을 확증시켜 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에 그 길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