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콘텐츠의 현대적 변용

소설 <칼의 노래>라는 원 저작을 통해 살펴본 영화 <명량>

by 정작가


들어가며

원형콘텐츠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글에서는 다루기 민감한 주제인 역사의 한 장면을 두고 세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두 콘텐츠의 비교와 분석을 통해 매체의 특성과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성웅 이순신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관심을 가지고 들어보았던 우리의 대표적인 역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같은 역사물이 없었더라면 개략적인 이해조차도 없이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역사적인 영웅을 홀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이순신과 관련된 소설과 영화가 주목을 받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새롭게 조명된 영웅의 면모에 대해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가지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도 이순신을 다룬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여태껏 많은 작가들이 이순신에 관련된 작품들을 내놓았지만 이 작품처럼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했던 적은 흔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칼의 노래>는 이순신을 다룬 소설 중에서 대표적인 콘텐츠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영화 <명량> 또한 이순신을 다룬 수많은 영화 중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관객을 확보한 작품이고,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했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소설과 영화의 양대 산맥과 같은 작품을 비교 분석한다는 일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정된 지면으로 이 두 콘텐츠를 온전히 비교하고 평가한다는 일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기에 범위를 한정하여 접근하기로 했다.


우선 매체의 특성상 소설과 영화라는 뚜렷한 구분이 있기에 그와 관련된 특성을 살피고, 화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적 맥락의 진실, 이순신에 대한 접근 방식 등으로 비교의 범위를 확대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소설과 영화 매체의 특성을 비교, 분석,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소설과 영화에 나타난 콘텐츠의 특성

소설 <칼의 노래>와 영화 <명량>은 각기 다른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는 소재로 이 작품들은 소설과 영화라는 매체 특성의 차이점 이외에도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소설이 텍스트를 위주로 하고 있다는 점, 영화가 영상을 우위로 한다는 점을 차치한다손치더라도 영화 <명량>이 수많은 해전 중 하나인 명량대첩에 방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반면, 소설 <칼의 노래>는 이순신이 의금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백의종군하여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을 받고, 이후 죽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볼 때 양적인 측면에서 다소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영화는 아무래도 소설의 묘사보다는 직접적으로 영상을 통해 관객의 이목을 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실재하지 않았던 에피소드를 끌어넣을 수밖에 없는 한계성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영화 <명량>에서 조선수군과 왜군과의 백병전은 전쟁의 잔혹함을 영상미로 실감 나게 재연하는 데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보면 역사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소설보다 한 걸음 물러서지 않았을까 하는 판단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소설 또한 역사를 그대로 재연했다고는 볼 수 없다. 영화에는 등장하는 않는 이순신과 여진과의 만남은 작가의 상상력에 기초한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영웅 이순신의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보면 소설적인 측면에서는 적절한 시도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소설과 영화라는 매체가 다르다고 해서 전혀 이질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는 묘사는 영화의 직접적인 영상미로도 충족되지 않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표현이 작품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소설 <칼의 노래>에 첫 부분을 보면 영화적인 접근으로 도저히 표현해 낼 수 없는 표현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한 사슬을 뚫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소설은 이처럼 단어 하나의 의미에도 느낌이 달라진다. 첫 구절인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의 문장이 탄생하기까지 ‘꽃이’로 할 것인지 ‘꽃은’으로 할 것인지 몇 날 며칠을 고민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듯 소설이 담고 있는 예리한 감수성은 전반적으로 소설양식의 흐름을 통해 작품의 양상이 달라지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 반면 영화는 시각적인 이미지와 청각 등에서 느껴지는 공감각적인 이미지로 영화의 느낌을 수용하기 때문에 음미하고 되뇌기보다는 순간적인 임팩트와 감흥에 의해 작품을 대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영화의 장면은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그 양태를 달리한다. 이를테면, 백병전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혼란스러운 심리상태와 전쟁의 잔혹성을 표현하기 위해 다소 격한 배경음과 거침없이 흔들리는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 혼란스러운 전투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 반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한 신(scene)에서는 서정적인 이미지를 느낄 수 있을 만큼 평온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자를 통해 바라본 접근 방식

소설 <칼의 노래>에서 주목할 것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는데 있다. 이순신이 직접적인 화자가 되어 전체적인 소설의 흐름을 이끌고 간다는 것은 영화적인 기법으로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가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부합되는 측면이 강한 매체라고 한다면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는 시점의 선택은 이와 달리 주관성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색다른 접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순신 장군이 경상 우수사 배설과의 대화에서 속으로 한 얘기를 ‘이 자식 봐라……’라는 문구로 삽입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었던 작가의 역량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소설에서 1인칭 시점의 접근은 주로 진술에 의존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배경 설명으로 하지 못하는 부분들까지 촘촘히 해설해 줄 수 있다는 점은 소설이라는 매체가 영화보다 우위를 점할 있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매체의 한계성으로 드러난 콘텐츠의 특성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소설 <칼의 노래>와 영화 <명량>은 역사적인 사실을 다루는 분량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소설 <칼의 노래>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이후부터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영화 <명량>은 수많은 해전 중 하나의 해전만을 다루고 있다. 고로 소설은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압축했다는 느낌이 들고, 영화는 이야기를 확장했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은 매체라는 한계성에서 찾을 수 있다. 소설은 텍스트적인 요인으로 인해 전체적인 이야기를 끌고 갈 수밖에 없고, 영화는 역사적인 사건 중에서 극적인 요소를 찾아내어 새로운 영상미로 탄생시킬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이후 이순신의 3부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한산>, <노량>이라는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있는 것 또한 해전별 성격에 따른 접근방식이 유효한 이유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다루는 매체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초점을 맞추고 이에 따른 접근을 하는 것이 유효할 듯싶다. 고로 <칼의 노래>와 <명량>의 접근은 단순히 이야기의 방향적인 접근보다는 매체의 특징에 근간을 둔 표현방식에 방점을 두는 것이 올바른 방향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소설인 <칼의 노래>가 역사적인 접근 방식에 더 충실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소설은 텍스트에 기반을 둔 매체이다 보니 역사적인 가치를 고증하거나 증거하고 표현하는 양식이 영화보다는 자유롭다. 영화는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와 특수효과, 영상에 의존하다 보니 세세하게 역사적인 접근을 이뤄내기 쉽지 않고 자칫 잘못하면 역사왜곡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수도 있다. 영화에서 특히 역사물의 고증에 신경을 쓰고 있는 이유는 한 번 지나간 화면은 바로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유한성은 상상력에 기반을 둔 소설에 비해 취약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고증을 잘하고 세트를 완벽해 재현해 놓는다고 해도 소설을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역사적인 현실성에 기초한 콘텐츠의 접근 양상

이순신과 선조의 관계는 역사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관계를 과연 소설과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비교해 보았을 때도 그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소설에서는 배경 설명부터 화자인 이순신이 느끼는 감정들이 여실히 드러나 있지만 영화에서는 이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이는 영웅인 이순신의 이미지를 좋게 하려는 이유도 있겠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지나치게 영웅성만을 부각한 감독의 편향성이 드러난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반면 소설에서 이순신은 적절하게 선조에 대한 불만도 드러내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상황 인식 또한 명료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탈영병을 처단하는 것이 한 장면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소설에서 보면 여러 차례 그런 장면이 나온다. 여진과의 에피소드 또한 이순신의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한다. 고로 이순신의 영웅적인 측면만을 부각한 영화보다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고뇌와 고통, 욕망에 초연하지 않았던 이순신 장군의 면면을 바라볼 수 있었던 소설에서 실존적인 인간의 가치에 제대로 접근하여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소설과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라는 기본적인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런 반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허구적인 요소가 개입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하더라도 그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지 않는 이상 영화는 허구일 수밖에 없다. 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허구는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믿음직할만한 당위성을 내포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영화 <명량>에서는 다소 비현실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저격수의 등장이라든지 원거리에서 화살로 도망가는 장수를 한 방에 맞추는 장면, 백성들이 위기에 처한 대장선을 구하는 상황, 적장이 상대편의 배의 무모하게 뛰어드는 장면들을 살펴보면 그것이 과연 현실에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인 사료를 참조했든 극적인 효과를 위한 장치였는지는 몰라도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역사적으로 불리했던 상황에서 전세를 역전시켰던 상황을 재연하기보다는 다소 우위에 있던 상황에서 적을 굴복시켰던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영화가 있는 그대로를 재현할 수 없고, 꼭 그럴 필요까지도 없겠지만 좀 더 세부적인 묘사에 중점을 두고, 당대의 현실적인 상황을 최대한 반영한다는 의지가 있다면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재조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마치며

위와 같이 소설과 영화의 대표적인 콘텐츠인 <칼의 노래>와 <명량>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살펴보았다. 원형콘텐츠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소설과 영화에 국한된 비교적인 접근은 다른 장르를 포괄하지 못한 편협한 지점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우려를 차치하고서라도 두 가지 장르에 초점을 맞춘 것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두 장르의 콘텐츠의 유사성과 비교적인 측면에서 적정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매체의 특성에 한정된 접근이었지만 이를 통해 소설과 영화라는 장르의 차이점을 대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화자를 통해 바라본 접근 방식을 통해 시점의 차이가 어떤 식으로 콘텐츠를 끌고 갈 수 있는지 숙고의 시간을 가졌던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역사의 일부를 다루었던 콘텐츠답게 그것이 현실적인 맥락과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사항을 고찰하는 것도 중요한 대목이었다. 이러저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역사적인 콘텐츠도 얼마든지 대중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고, 작가나 감독의 역량에 따라 그 가치는 한층 넓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로 원형콘텐츠를 통한 현대적인 변용의 방식은 비단 소설과 영화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여타 장르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돌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할 수 있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문씨 ,영화양을 만나다>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