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이식실 앞에서 5분 정도 대기를 했다.
"여기서 잠시만 대기하시고 계실게요~"
껌벅껌벅 병원 수술실 복도의 천장을 바라본다.
지금의 내 마음은 오늘 아침의 내 마음처럼 똑같이 간절한데 3시간 가까이의 오랜 대기 시간 탓일까... 이제는 그 간절했던 기도조차도 나오지 않는다.
드르륵 드디어 이식실 문이 열리고 내가 누운 침대는 나를 이식실로 데려다줬다. 간호사 선생님은 능숙한 솜씨로 이식이 쉽게 되는 자세를 알려주고 곧 담당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라즈베리님~ 오늘 아침에 남은 배아 3개를 해동해 보니 한 개는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폐기를 했고 두 개를 PGT-A검사를 보냈어요. 다행스럽게 둘 다 정상으로 나왔는데 또 그중 한 개가 이식을 해도 소용없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서 오늘은 배아 한 개만 이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둘도 셋도 아닌 건강한 배아 단 한 개다!! 늘 두 개의 배아를 이식했던 터라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그리고 검사를 보낸 배아 두 개다 모두 건강한 배아였다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5분도 안 돼서 끝난 이식... 다시 수술실안의 대기 자리로 돌아와 면역 글로불린을 맞기 시작했다. 이것도 이번 차수부터 새롭게 추가된 처방이다. NK 셀이라는 면역세포 수치가 정상보다 약간 높은 수치라서 혹시나 내 몸이 배아를 낯선 세포로 인식하고 공격할 수도 있어서 그에 관련된 면역력을 낮추는 주사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주사액을 한 시간쯤 누워서 주사를 맞고 드디어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정말 긴 하루였다.
이식을 하고 나면 참 시간이 안 간다. 하루가 늘어진 엿가락처럼 길고 지겹게 느껴진다. 이번엔 꼭 피검사까지 임신테스트기를 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이식 5일 차 아침부터 임테기로 향하는 내 손을 막을 수가 없다. 공책을 준비해서 "동결 3차 - PGT-A통과 5일 배아 1개"라고 제목을 크게 적었다. 그리고 종이컵과 임신 테스트기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소변이 담긴 종이컵에 임신테스트기를 넣자마자 대조선이 빨갛게 올라온다. 그리고 숨 막히는 1초가 더 지나고 그와 동시에 핸드폰 플래시도 켠다. 대조선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임신 테스트기를 요리조리 빛에 비추며 천장으로도 들어보고 바닥으로도 들어본다.
"아직 5일 차니까 괜찮아 좀 일렀어. 내일 다시 해보면 돼."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화장실 밖으로 나온다. 아무것도 없는 임테기지만 공책에 예쁘게 붙이고 그 옆에 글씨도 써본다. '+5일'
6일 차 아침, 알람도 울리지 않았는데 눈이 번쩍 떠진다. 또다시 종이컵과 임테기를 들고 화장실로 직행한다. 오늘은 그래도 아주 연하디 연한 선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하지만 난 오늘도 해드폰 플래시를 켤 수밖에 없었다.
"아직 6일은 이를 수 있어. 내일 다시 해보자"
7일 차 아침, 어제보다 더 이른 시간에 나는 화장실에 들어와 있다. 오늘은 틀림없이 보여야 하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설마 이번엔 착상조차 못한 걸까?
8일 차 아침, 뭐가 잘못된 걸까? 왜 착상이 안 됐을까? 그동안 두 번의 이식에서 착상이 됐던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당연히 될 줄 알았다. PGT-A 통과 배아도 착상이 안될 수 있다더니 그게 내 일이 된 것일까?
9일 차 아침, 병원에 가는 날이다. 몸이 너무도 가뿐하다. 임신이라면 가슴도 아프고 아랫배도 묵직한데 나는 날아갈 듯이 몸이 가볍다. 이제는 비 임신, 즉 이번 차수 실패라는 인정해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오전 7시 반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다. 그래도 피검사까지 희망을 놓으면 안 된다던데... 정말 말도 안 되는 희망의 끈, 스타킹의 실 오라기 보다 더 얇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담당교수님을 만났다.
"임테기 해보셨어요?"
"네, 한 줄 나와요. 선생님 생리 시작하면 바로 과배란 가능한까요?"
"네, 가능하세요. 그래도 피검사 결과 전화 갈 때까지 기다려 보시기 바라요."
오후 2시 전화벨이 울린다. "라즈베리님.. 이번에 피검사 결과는 0점이 나오셨어요." "네 감사합니다."
이미 임테기로 마음고생을 다 한터라 확인 사살 전화를 받았을 때 꽤나 담담하게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장 카톡을 열어 기존의 선생님이 새롭게 오픈한 병원에 내일로 진료를 예약했다. 아직 배아 생성 허가를 받지 않아 시험관 시술을 진행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예전 선생님이 계신 곳에 가서 지금 내 상태에 대해 상담이라도 받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유일한 내 숨구멍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친한 친구들에게 시험관 시술을 모두 오픈했다. 늘 자신의 일처럼 진심으로 좋은 소식을 함께 기다려주는 친구들에게 이번 이식의 실패 소식을 전했다.
"어쩜 좋니.. 시험관이 어렵다는 얘기가 많잖아. 근데 네가 1차 2차 때 모두 임신이 돼서 신기했었어."
"어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한 거 있지"
"이번에 처음 안된 거니까 너무 속상해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다음엔 잘될 거야!!"
네가 내 속상한 마음을 다 알아? 내 마음고생을 다 알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 친구말이 맞다. 이번에 착상이 안 됐다고 해서 넘어지고 좌절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다시 일어나서 달려야 한다.
냉동 배아 9개를 다 썼다. 나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프롤루텍스를 오늘부터 끊었으니 곧 생리가 시작할 것이다. 내일 기존 선생님에게 가서 상담을 받아보고 다시 과배란부터 시작해 보자.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이고 희망찬 생각을 하려 해도 내 머릿속엔 원망과 후회가 가득했다.
냉동했던 배아를 해동해서 PGT-A를 한 것이 배아에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을까? PGT-A를 하겠다고 결정한 것이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나는 왜 내 배아들을 믿지 못했을까? 그냥 이식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었을 텐데 왜왜왜 나는 그런 결정을 했던 것인가...
밤에 티브이를 켜놓고 시원한 맥주를 꿀꺽꿀꺼 들이켰다. 속상하다 정말... 모든걸 시험관에 올인하고 있는 나의 삶이 지겹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