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일기
1. 신선 1차 채취 (이식 안 함) - 5일 배양 9개 동결
2. 동결이식 1차 - 5주 자연배출
3. 동결이식 2차 - 8주 소파술
지금까지의 나의 난임 성적표다. 신선으로 첫 채취를 마치고 9개의 배아가 5일 배양으로 동결이 되었다고 들었을 때 나는 이미 9명의 아이를 가진 듯이 행복했다. 첫 이식에 임신테스트기의 두줄을 보고 와! 이렇게 나도 엄마가 되는구나! 그래! 시험관 하면 다 될 줄 알았어!라는 자신감에 가득 찼었다. 하지만 첫 초음파를 보고 며칠 지나지 않아 큰 출혈로 유산을 한 후엔 너무도 허망했고 피가 너무 무서워졌다. 동결 이식을 위해 먹기 시작한 약을 너무 일찍 끊었기 때문이었을까? 프로게스테론이 너무 적었을까? 하루에도 수십번 인터넷을 검색하며 이 짧은 지식으로 원인을 찾아내 모든 탓을 그 그것으로 돌리고 싶었다.
두 번째 동결 이식은 자연주기라 불리는 이식 방법을 진행했다. 내막을 키워주는 약을 먹지 않고 나의 자연 배란을 기다린 후에 날짜를 맞춰서 이식을 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한다면 이번에는 출혈이 없겠지...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번엔 아기의 심장이 제때에 뛰지 않았다. 원래 뛰어야 하는 주 수보다 한 주 늦게 쿵쿵쿵 심장이 뛰긴 했지만 이내 아가는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
선생님은 소파술을 할 때 아가의 유전자 검사와 나의 유전자 검사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나도 정확한 원인을 알고 싶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한 달 뒤 검사 결과가 나왔다. 아가의 23번 유전자가 3개였던 것이 밝혀졌다. 아.. 그랬었구나... 그리고 나의 유전자 검사는 16번 유전자의 길이가 길긴 하지만 정상변이에 속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선생님은 지난 1차 이식과 2차 이식에서 두줄은 봤지만 임신 유지가 되지 않았으니 다음 이식부터는 착상 전 배아 유전자 검사인 PGT-A를 진행해서 정상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배아인 경우에만 이식을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아.. 이건 PGS라고도 불리는 시험관 카페에서 많이 들어 봤던 단어였다. 시험관 고차수 선배님들만 진행하는 줄 알았던 이 PGT-A가 결국 나에게도 왔구나... 눈앞이 캄캄했다.
나의 경우에는 동결된 배아가 남아있어서 이 동결 배아를 녹여서 PGT-A 검사를 한 후에 이식을 진행해야 한다. 아니면 새롭게 채취해서 PGT-A를 통과한 배아만을 동결했다가 이식하는 방법이 있다. PGT-A의 장점이라면 유전자 결함으로 인한 유산 케이스를 미리 걸러내어 임신유지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것이었고 단점이라면 높은 검사 가격과 PGT-A 통과 배아를 만날 때까지 이식은 꿈꿔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로봇과 같지 않기에 착상전 배아 상태인 경우에는 유전적 결함이 있어 보이지만 엄마 뱃속에 착상한 후에 자기 검열을 통해서 정상적인 유전자는 태아에게 남고 비정상적인 부분은 태반으로 미뤄내는 SELF CORRECTION의 과정이 있기도 해서 사실상 PGT-A가 꼭 정답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검사를 다 마친 모든 것이 건강하다고 결과가가 나온 PGT-A 배아도 착상실패 및 유산의 과정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만약 PGT-A를 하겠다고 선택한다면 장점만을 보고 달려가야 하고... 병원에 따라 한번 PGT-A의 길에 들어서면 계속 PGT-A를 권유&강요하는 곳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3개월 동안 수없이 고뇌하고 수없이 검색을 해봤다.
그럼에도 내가 스스로 선택하기가 어려워서 여러 병원 홈페이지를 통해 그동안 눈여겨보던 명의로 소문난 세분께 상담의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 주치의 선생님까지 포함한다면 총 4분의 의견이다. 3분은 유산의 이력 때문에 PGT-A를 권하신다고 했고 나머지 한분은 아직은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한 번 더 이식에 실패한다고 하면 그땐 꼭 PGT-A를 해보라고 하셨다.
소파술을 한 다음날 가슴은 뭉치고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파서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걷기도 힘들었다. 만약 아기를 제대로 출산한 사람이 그 아픔을 맞이했다면 이제 아가를 낳고 몸이 회복되어 가는구나라고 행복한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 하지만 유산으로 얻은 그 아픔이 나는 너무 싫었다. 내 몸이 소파술로 인해 약해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아픈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켜서 거봐 시험관 하면 몸이 약해진다니까? 와 같은 헛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소파술도 똑같이 산후조리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거 없이 그냥 오뚜기처럼 건강하게 다시 일어서고 싶었다. 미역국을 먹거나 산후조리를 하는 것은 아가를 낳고 그때 제대로 누리며 하고 싶었다.
그래... 내 삶에 이런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 않으니 PGT-A를 선택해 보기로 하자! 건강하지 않은 배아는 이식을 해도 착상이 안되거나 어쩌면 이렇게 또 소파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니 차라리 이식의 기회가 없다 한들 검사를 통과한 건강한 배아만 이식해 보도록 하자!
3개월 후 병원을 다시 찾았다. 오랜만에 가서 설기도 했지만 늘 경쾌하게 반겨주시던 주치의 선생님이 안 계셔서 더욱 낯설게만 느껴졌다. 새 선생님의 이름이 쓰여있는 낯선 진료실 앞에 앉아서 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즈베리님! 오늘 저희 선생님 첫 진료죠? 손바꿈 하시는 건가요?"
"네.."
"알겠습니다. 초음파실 다녀오실게요!"
이렇게 나의 동결 3차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