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달려야지 어쩌겠는가

난임 일기

by 라즈베리


마냥 우울의 늪에만 빠져있을 수가 없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실 특별할 건 없다. 매년 봄마다 달리기를 했고 그 체력으로 겨울까지 살아내는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작년에는 한국을 오가며 병원을 다니느라 달리기를 하지 못했다.


체력도 바닥이 나고 마음도 바닥이난 지금! 옷장 속 깊이 넣어두었던 운동복을 꺼내 든다.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섬유유연제의 냄새가 풍겨 난다. 정말 옷장 속에 들어간 지 오래된 옷임이 코끝에서 증명이 된다. 옷을 갈아입고 달리기 어플을 깔고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나의 달리기 열정은 너무도 작아서 바깥에 추운 바람이 불면 금세 꺾일 것 같았다. 제발 춥지만 않기를....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 맞이하는 햇볕은 너무도 따뜻했다. 애써 무시하고 싶었던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햇볕에 눈을 찌푸리며 핸드폰 속의 음악을 크게 틀고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오늘의 코스는 5분간 걸으며 워밍업을 하고 1분 뛰고 2분 걷기를 다섯 번 반복하는 것이다. 살살 동네를 뛰며 아름다운 연두색 분홍색의 나무들과 놀이터의 아이들, 벤치에 앉아서 쉬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들 이렇게 온전하게 시간을 보내는데 나의 인생만 뒤쳐져 있는 느낌이 든다. 나도 어서 이 늪을 빠져나와야 하는데...


달리면서도 머릿속에는 언제 병원에 다시 갈 수 있을까만 계산하게 된다. "지금이 배란기니까 14일 이후에 생리가 시작되고 그때 한국에 다시 가야겠다." "14일 동안 매일 달리기를 하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겠지?"


헉헉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스쳐가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휴 달리고 나니 상쾌하다. 혈액순환이 잘돼서 이번에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 난임 병원에 발을 들인 이후로 한시라도 나의 난임을 잊고 지낸 적이 없다. 그나마 오늘은 나의 우울한 마음을 조금 걷어내고 그 자리에 희망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장기전에 되어버린 나의 난임 이렇게 하루하루 잘 살아 내다 보면 어느새 이식 날이 와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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