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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즈베리 Jul 11. 2024

이 독일어로 독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라고요?

엄마의 도전 - 독일 어린이집 적응기간

“달? 닥? 다악? 한므리가 지… 붕… 우에 올라가… 아안자았습니다”


진땀을 흘리며 한 문장을 읽었다. 2살 반 아이에게 읽어줘야 하기에 최대한 감정도 넣어야 하는데 보잘것없는 내 독일어로는 처음 보는 책의 문장 하나 제대로 읽기도 힘들다.


“꼬꼬댁 꼬꼬고고고 닭 한 마리가 몇 마리? 한 마리! 가 지붕 위에 휘이이익 올라가 앉았어요~”


한국어책이었으면  어느 구연동화 선생님 못지않게 잘 읽어줄 수 있었을 텐데!!!


어린이집을 등원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처음 20분으로 시작했던 적응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기고 이제는 아이는 내 무릎에 앉아있기보다 선생님과 장난감에 더 호기심을 보였다. 아이가 가끔 내가 같은 공간에 있는지 확인할 때 눈을 마주쳐 안심시키는 것만 할 뿐 나는 멀찍이 앉아 있는 듯 없는 듯 시간을 보냈다.


유치원에 며칠 있었다고 아이들의 특징이 보이기 시작한다. 릴리는 조용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자기표현이 확실하다. 살금살금 내 앞에 와서 뚫어져라 나를 쳐다본다. 나도 네가 신기한데 너도 내가 신기하겠지 큭큭 귀염둥이야!


미란쭈는 상호작용을 좋아한다. 우리 아이가 교실에 들어서면 가까이 와서 장난감도 주고받고 씩 웃기도 한다.


니콜라스는 수줍음이 많지만 하루종일 웃음을 머금고 있다. 청소놀이를 좋아해서 수건 한 장 쥐어주면 온갖 장난감을 쓱쓱 닦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알마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선생님이 자기에게 계속 책을 읽어주기를 원하지만 선생님들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시선을 놓을 수가 없어 한두 번 읽어주고 알마에게 책이 무슨 내용이었냐고 되물으며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알마가 오늘은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은가 보다.


“라즈베리~ 혹시 괜찮으면 알마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어~?”


동공지진이 났으나 알마의 눈빛을 봤을 때 나라도 도움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알마야 책 가지고 일루 와봐! 읽어줄게!”


아이가 들고 온 책을 폈더니 수탉, 암탉, 바다표범, 앵무새, 얼룩말 각종 동물들이 춤을 추고 나무 위에 올라가고 난리가 났다. 처음 보는 단어들도 많아 등에 땀이 쭉 흘렀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더듬더듬 글을 읽었다. 알마가 눈이 똥그래진다. 어른이 이렇게 독일어 못하는 거 처음 보지?


알마가 내 독일어를 알아듣기는 할까? 얼마나 이해하는지 궁금해서 알마에게 질문을 해본다.


“알마야 방금 수탁이 뭐 했어?”

“올라가쪄”

“맞았어!!!!”


이 쪼그만 아가가 내가 더듬거리며 읽어준 책 내용을 기억하고 답하다니!! 감동이 배로 밀려온다.


“알마야 바다표범 어딨어? 무슨 색이야? 바다표범은 어디에서 살지? “


질문 폭탄을 날렸고 알마는 야무진 대답으로 보답했다.

정말 고맙다 알마야!!


독일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살고 있지만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것은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한 영역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적응을 잘하는 것도 걱정되긴 했지만 학부모로서 우리 아이의 뒤편에 든든히 서있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오늘 이 작은 책 읽기를 통해서 큰 용기를 얻었다. 나를 편견 없이 똑같이 대해주는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아이의 부모로서 한몫을 잘 해내리라 다짐하며 집에 오자마자 책장에 빛바랜 채 꽂혀있는 독일어 공부 책을 꺼냈다. 오늘부터 단어 하나씩이라도 외우면 우리 아이 졸업할 때쯤이면 그래도 책은 잘 읽어줄 수 있겠지?


아이도 화이팅!! 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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