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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즈베리 Jul 18. 2024

독일 어린이집 급식 소금의 딜레마

24개월까진 무염식을 하고 싶었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꼭 지켜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만 2살까지 소금이 없는 무염식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


안 그래도 짜디짠 독일 음식을 주식으로 먹으면서 크게 될 아이에게 소금의 세상은 최대한 늦게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아기였을 때 밥을 잘 먹지 않아서 엄마 속을 많이 태웠다고 했다. 엄마는 그래서 한살이 갓 넘은 나에게 짜파게티를 끓여줬다. 지금은 너무 잘 먹어 탈이지만 뭐라도 먹으면 다행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진 속 나는 다섯 손가락에 짜파게티를 주렁주렁 쥔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엄마가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해서 나는 내 뱃속에서 밥 잘 먹는 아이가 나올 거란 기대를 애초에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가 아빠의 무난한 식성을 닮아서일까 15개월인 지금까지 소금을 넣지 않아도 잘 먹고 특별히 신경 써서 채수로 물볶음을 하거나 소고기 뭇국, 미역국, 매생이 계란찜 정도에도 열광하며 밥을 먹었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지 일주일 지나고 선생님께서 점점 적응 시간을 늘려 이제 점심시간도 함께 참여해 보자고 하셨다. 점심시간에 함께 참여하기 전에 선생님은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이 있는지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는지 물어봤다. 거의 모든 한국 엄마들이 그렇듯이 나는 15개월이 된 아이에게 한 번도 소금 간이된 음식을 준 적이 없었다.


독일 길거리를 걷다 보면 유모차에 앉은 한 살도 안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독일 국민빵인 브레첼을 입에 물고 가는 풍경을 종종 볼 수 있다. 겉면에 큰 소금이 안 붙은 브레첼이라고 하지만 반죽 자체가 어른인 내가 먹기에도 꽤나 짭짤하다. 또한 독일에는 아가들을 위한 저염 치즈도 따로 없고 12개월 이후의 이유식을 맛보면 이건 소금이 들어갔구나가 딱 느껴지는 제품들이 몇몇이 보인다. 독일 육아는 이렇게 소금이 아무렇지 않은 걸까?


그리하여 나의 유일한 궁금증은 오로지 소금이었다.


“혹시 아이들 음식에 얼마만큼의 소금이 들어가나요? 어린이집 식단에 저염식이라던가 무염식을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선생님은 처음 듣는 질문인지 저염식 무염식이라... 혼잣말로 되뇌며 확인해 보고 알려주겠다고 했다.


"리자! 우리 어린이집 식단 소금의 양이 어떻게 돼?" 선생님은 아이들이 있는 공간에서 자리를 뜰 수 없어 옆 공간에 있는 원장선생님께 큰 목소리로 외쳤다.


원장 선생님 리자는 내가 있는 공간으로 와서 설명을 해주었다. “저희 어린이집 음식은 어른이 먹기에도 맛있는 걸 보니 소금의 양이 같다고 볼 수 있어요. 특별하게 저염식이나 무염식을 제공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저희 어린이집이 이용하는 급식업체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제일 많은 어린이집이 이용하는 업체예요. “


뭣이라? 어른과 똑같은 양의 소금이라고? 그 얘길 듣자마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15개월 동안 내가 지켜온 우리 아이의 무염식의 노력이 이렇게 깨져버리는구나. 너무도 속상했다. 내가 유일하게 지금까지 지켜온 육아 신념이었는데 괜히 나의 욕심 때문에 우리 아이를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등록하게 해서 이런 사달이 났구나 싶었다. 마음이 너무 울적했다. 다른 어린이집에 보내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도 그쪽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저염식이 아니래. 근데 어쩌겠어. 우리 애만 도시락 싸 보낼 수도 없고 그래도 집에서는 최대한 소금 안 주려고 노력해."


"나도 무염하다가 처음 소금 있는 음식 전날 죄책감이 많이 들었는데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그냥 그 이후로는 소금을 오픈해 버렸어."


"아우 나도 첫째는 그렇게 지켜주려고 했는데 둘째는 10개월에 자기 오빠 먹는 거 뺏어먹더라고!"


나보다 길게는 몇 년 짧게는 몇 달 먼저 독일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낸 친구들의 답이었다. 공통적으로 마음을 놓으면 육아가 한결 편하다고 하지만 내 유튜브에는 나의 걱정하는 마음을 눈치챈 알고리즘 덕분에 소금 절대 주지 말라는 추천 동영상이 줄줄이 뜨기 시작했다. 마음이 더더욱 무거워졌다. 참 별거 아닌데 나도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짜파게티 먹으며 컸는데! 프푸에서 제일 큰 어린이집 급식업체라는데! 다들 이렇게 크는거야~~ 라며 내 마음을 다독여보지만 내 마음은 그렇게 쿨하지 못했다. 아니 그럼 소금 있는 음식 주기 싫으면 내가 36개월까지 집에서 데리고 있으면 되잖아? 하지만 복직도 다가오고 언젠가 오픈할 소금 때문에 어린이집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 어떤 방법도 명쾌한 해답이 아니었고 현실적이지 않았다.



참 나 소금이 뭐라고!!




다음 날 어린이집의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오늘의 메뉴는 그린소스와 삶은 감자 그리고 삶은 달걀이었다. 그린소스는 각종 허브를 갈아서 만든 프랑크푸르크 전통 음식이다. 아이가 먹기 전에 내가 살짝 먹어봤다. 그냥 레스토랑에서 먹던 그 맛과 똑같다. 바꿔 말하면 내가 먹기에도 간이 딱 맞고 꽤나 맛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의 첫 소금이 들어간 음식이 프랑크푸르트 전통음식이라니 운명적인 만남이다.


감자를 잘게 잘라 초록색 소스를 찍어 아이의 입에 살짝 넣어줬다. 너무 맛있어할까 봐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하지만 처음 먹는 허브의 맛이 강렬해서였을까? 어린이집에서 밥 먹는 게 낯설어서였을까?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이내 퉤 하고 뱉어낸다. 이번엔 삶은 달걀을 줬다. 오물오물 먹긴 했지만 한두 입 먹더니 이내 그만 먹고 싶다는 눈빛과 제스처를 보여줬다.


"음식이 낯선가 보구나~~~ 그럴 수 있어~ 다음에 또 시도해 보자~." 선생님은 아이의 정리를 도와주고 이렇게 어린이집의 첫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휴! 나의 솔직한 마음은 아이가 잘 먹지 않아 다행이었다. 잘 먹지 않아서! 그리고 다 뱉어내서 행복하긴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그래 이런 건 가능한 조금 더 늦게 , 고작 하루라도 더 늦게 알아간다면 좋겠다.


날씨가 좋아 하원 길에 공원 벤치에 앉아서 집에서 준비해 간 유아식 도시락을 꺼냈다. 오늘의 메뉴는 소고기 가지볶음과 밥이다. 아이는 오늘 소금을 맛봤음에도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만든 밥을 꿀떡꿀떡 잘 받아먹었다. 아가야 고마워! 우리 어린이집 음식은 천천히 적응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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