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엄마의 첫 떨어짐
낮잠을 제외한 어린이집의 모든 시간을 체험한 우리 아이는 오늘부터 나와 떨어져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된다.
원체 낯가림이 있는 아이라 나도 남편도 모두 긴장한 채 아침 식사를 마치고 비장한 각오로 등원을 했다. 제발 30분이라도 떨어져 있을 수 있기를!!
어제 선생님이 미리 알려준 오늘의 적응 훈련은 이러하다.
아이와 함께 교실로 들어간다.
나에게 안겨있는 아이를 선생님이 넘겨받는다.
나는 아이에게 인사를 해주고 교실을 떠난다.
첫날은 30분 정도 엄마와 떨어짐을 시도한다.
아이의 울음이 슬픔이나 화를 내는 것이면 선생님들이 다독일 예정이지만 만약 그 울음이 패닉의 울음이라면 나를 곧장 부를 예정이라고 한다.
오전 10시 나는 아이를 안교 교실로 들어갔다. 나의 긴장감이 전해져서였을까 아이는 뭔가 달라진 낌새를 느꼈는지 양 팔로 내 목을 꽉 둘러 안은채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어제까지 어린이집에서 흥미롭게 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의 유혹도 소용이 없었다.
울음을 그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늘 이렇게 떨어져 보지도 못하고 그냥 끝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시작되려던 찰나 선생님은 준비가 됐냐고 물었다.
떨어질 준비? 네!!! 당연하죠!! 난 어린이집 보내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렸다고요!
“네, 조금 떨리지만 준비됐어요.”
“아이는 아마 오늘 계속 울 거예요. 라즈베리 마음만 준비됐다면 이제 시작해 보죠.”
이 적응 첫날은 아이의 준비보다 내 마음의 준비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아이와 떨어진 공간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는 엄마들이 더 감정적으로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자, 아이에게 잠시 떨어질 거라고 인사를 제가 아이를 안을게요. 위층에 대기공간에 가서 기다려주세요. 저희가 30분 정도 후에 부르러 갈게요”
산 낙지를 젓가락에서 떼어내듯 나와 딱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의 손을 하나하나 떼어 선생님께 안겨드렸다. 그리고 “엄마 갔다 올게! 위에 있을 거야. 조금 있다가 봐!” 하고 교실문을 닫고 나왔다. 휴… 몸은 가벼워졌지만 아이의 울음소리가 발목의 모래주머니가 되어 돌아오는 것 같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가 위에 층 의자에 앉았다. 가방 속 핸드폰을 열어서 에스에스를 켰다. 방해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이렇게 마음 편하게 핸드폰을 할 수 있다니!!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내 귀에는 우리 아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꽂히고 나의 모든 신경은 아래층의 아이에게 향해있었다.
우리 아이는 낯가림이 엄청 심한 편이다. 신생아 때부터 엄마의 품을 아주 기똥차게 알아챘다. 울다가도 나한테만 오면 울음을 뚝 그치는 모습에 남편은 너무너무 부럽다고도 했다. 이런 낯가림은 나한테서 물려받은 기질이다. 엄마는 매일 우는 나를 두고 유치원 문을 나서는 게 너무 마음 아팠다고 한다. 초등학교 입학식에서도 자리에 가서 앉지 못하고 교실 뒤편에서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잘 알기에 애초에 애기 때부터 여러 사람을 만나면 낯가림이 좋아질까 싶어서 아이를 이곳저곳 데려가보았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더 크게 울며 자석처럼 나에게 붙었다. 타고난 성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이렇게 딱 나를 닮은 아이를 보며 우리 엄마의 마음을 간접경험하고 있다. “너 같은 자식 낳아봐라”의 프롤로그를 맛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이렇게 전적으로 믿고 좋아해 주는 생명체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좋기도 했지만 아이와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섰다.
30분이 지나고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라즈베리~~ 기다리느라 힘들었죠~? 내려오세요 “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실문 가까이 갔는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일이지? 적응을 이렇게 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과 두 명의 누나들과 함께 모여 앉아 놀고 있던 아이는 교실에 들어선 나를 발견하고는 어디 갔었냐는 원망의 눈빛을 보내며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엄마 왔어! 이리 와. 안아줄게! 우리 아기 고생했어!! “
기다릴 땐 쏜살같이 지나간 30분이었지만 아이를 품에 안으니 30시간은 떨어졌다가 안아주는 것처럼 뭉클했다.
“오늘 위에서 듣기엔 울음소리가 크던데 괜찮았나요?”
“처음엔 많이 울었는데 울음을 멈추는 순간도 있었고 친구들을 관찰하기도 했어요. 아주 좋은 시작이에요. “
“오 다행이에요!”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제법 짧은 시간을 보냈지만 아이는 굉장히 피곤함을 느꼈을 거예요. 이번주는 어린이집에서 하원할 때 다른 곳을 들리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가는 것을 권해드려요. 그래야 아이도 이 루틴을 차차 익혀갈 수 있어요.”
헤어질 땐 울었지만 나의 예상과 다르게 힘든 시간을 혼자 잘 견뎌낸 아이가 참 기특했다. 놀이터에 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미끄럼틀을 태워주고 싶지만 선생님의 안내대로 유모차를 끌고 곧장 집으로 가는 것을 택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파랗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데 집으로 바로 가야 하다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아이는 많이 피곤했는지 몇 걸음 걷기 시작하자 금세 잠이 들었다. 집에 와서 나도 같이 아이 옆에 누웠다. 눈물자국 가득한 얼굴로 곤히 낮잠 자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흔들린다. 아이의 30분은 정말 긴 시간이었으리라. 엄마가 다시 온다는 말을 알아듣긴 하고 기다린 걸까? 잘하고 있는 거 맞겠지?
평소에 한 시간 조금 넘게 자는 낮잠을 세 시간이 넘도록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난히 긴 낮잠이 이상해서 잘 자고 있는 게 맞는지 몇 번이나 아이 근처로 가서 확인을 했다. 불안한 자유시간이었지만 아이가 깨면 먹을 리소토도 준비해 놓고 나의 체력도 충전이 완료되었다. 아이가 깨고 나면 오늘은 더더욱 혼신의 힘을 불태우며 놀아줘야겠다. 이제 진짜 어린이집 적응 첫날이 지나갔다. 아직은 엄마품이 세상의 전부인 아기! 오늘 30분 잘해줘서 고마워!! 이렇게 쭉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