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쌀밥이 좋아요
세상이 떠나가라 울며 30분 40분 엄마와 떨어지는 훈련을 하던 아이는 어느새 우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등원을 인지한 듯 어린이집에 들어서면 엉엉 울기는 해도 내 품에서 빠져나와 선생님께 안기려 몸들 틀고 팔을 뻗는 놀라운 발전을 했다.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이 점차 늘어 1시간이 되었고 이제는 점심 식사까지 먹고 나오는 걸로 해보기로 했다. 어린이집을 다닌 지 꼭 한 달 만이다.
아이가 점심까지 먹고 나온다면 나는 3시간의 온전한 자유시간을 얻을 수 있다. 길어진 자유시간과 유아식 한 끼는 집에서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다음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후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11시부터 12시니 11시 반쯤 픽업을 가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11시가 조금 지나자 전화벨이 울린다. 좀처럼 울릴 일 없는 내 전화기를 들어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하이 역시나 어린이집이다.
“라즈베리, 로빈이 점심 식사를 한입도 먹지 않았어요. 아이가 배가 고플까 전화해요. 지금 픽업해서 집에서 점심을 먹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전화를 받자마자 5분 거리 어린이집으로 달려갔다. 옹기종기 모여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 집에 갈 준비를 끝내고 교실을 돌아다니는 아이가 보였다. “로빈!!” 내 목소리가 들리자 안도감과 서러움에 아이는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오늘 메뉴는 푸실리 (짧고 말린 모양의 파스타)에 볼로네제 소스였는데 입맛에 맞지 않는지 전혀 먹지 않네요.”
아뿔싸! 우리 아기는 저렇게 큰 모양의 푸실리를 먹어본 적이 없다. 이유식도 한국식으로 쌀가루로 시작해서 밥통이유식으로 끝냈고 유아식도 밥 국 반찬 또는 리소토와 볶음밥 정도였다. 아이에게 얼마나 낯선 식재료였을까!
“아! 아이가 아직 서양식 식재료를 많이 못 접해봐서 낯선가 봐요. 이제 좀 여러 가지 줘봐야겠어요.”
아이를 데리고 나오며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외국에서 아기를 키우는 게 실감이 되기도 했다. 내가 아이를 너무 한국식으로 키웠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것은 후회는 전혀 아니다. 독일에서 아기를 출산한 후 독일 병원의 의료진 이야기만 들었다가 신생아였던 아이가 이틀 내내 쫄쫄 굶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 지 삼일 만에 아기는 황달에 걸려 12시간 동안 자그마한 플라스틱 상자에 들어가 안대를 쓰고 광선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눈물이 주룩주룩 나던 그때 다짐한 게 있다. 절대 독일에서 의사건 간호사건 말하는 그대로 믿지 말자! 아이에 관한 모든 건 내가 제일 확신할 수 있는 정보만 채택하기로!
그래서 이유식은 한국에서 책을 사 오고 여러 한국 전문가들의 유튜브를 보고 중간중간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소아과 선생님께 진료를 받으며 100프로 한국식으로 진행했다. 내 몸은 좀 힘들었을지라도 마음이 참 편했다.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이 있었고 태어난 직후 이틀 동안 굶긴 무지한 어미의 죄책감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이제는 이유식 단계도 지났으니 슬슬 서양식 식재료와 요리법도 적용해 가며 유연히 아이를 키워야 할 시기가 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기용 파스타를 샀다. 한 봉지 안에 동글동글 모양, 세모모양, 각이진 모양 다양한 식감을 느낄 수 있는 모양의 파스타가 들어있었다. 아이에게 삶은 파스타를 보여주자 호기심 있게 손을 뻗기는 하나, 입에 넣어주니 바로 오물오물 혀끝으로 뱉어버렸다. 소스를 듬뿍 묻혀서 줘도 같은 결과였다. 시간이 필요하겠지!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 식사를 거부하는 것이 한동안 어린이집 선생님들에게는 고민거리이자 신기한 풍경이었다.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지만 이렇게 찐 아시아인은 처음인지 우리 아이를 통해서 문화차이를 배워나가는 것이 선생님에게도 우리 가정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오늘은 드디어 치즈를 손에 잡았어요! 먹는 건 실패했지만 말이에요. “
선생님들은 내가 픽업을 갈 때마다 조금씩 발전하는 아이의 모습을 기쁘게 전달해 주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 아이가 혹시나 배가 고플까 봐 뽀로로 가방에 빵과 우유를 챙겨 보냈다. 선생님들은 점심시간에 어린이집 음식을 시도하게끔 도와주고 아무것도 안 먹을 경우엔 빵과 우유를 먹여주시기로 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난관이 생겼다.
아이가 식탁에서 식사를 거부한다고 했다. 모든 아이들이 의자에 앉아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데 우리 아이는 땅바닥에 앉아서 음식을 먹겠다고 했다고 한다. 식사 중에도 이름을 부르며 “여기 와서 같이 먹을래~?”라고 물었지만 바닥에 앉아 오지 않았다고 한다.
픽업 시간이 되어 어린이집에 가니 정말 아이가 바닥에 앉아 의자에 음식을 올려놓고 먹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런 아이가 너무 귀엽다고 웃으시며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할 자유가 있어요. 바닥에 앉아 먹는 것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답니다. 혹시 궁금해서 그러는데 집에서 바닥에 앉아서 먹나요? “
식사시간에 관한 문화차이가 있는지 조심스레 물으셨다.
나는 다급히 대답했다.
“아니요!! 집에서는 아기의자에 앉아서 식탁에서 잘 먹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하하”
바닥에서 먹는 걸 가르친 적이 없는데 집에서 우리 아기 왜 이렇게 바깥에서 줄줄 새는지 모르겠다. 아가야 너 덕분에 엄마는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구나! 바닥에 앉아 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피식 나왔다.
오늘은 어린이집 메뉴에 쌀과 야채가 나와서 몇 숟갈 먹었다고 한다. 선생님도 나도 그 몇 숟갈에 마음을 놓고 온갖 최고를 가르치는 형용사를 사용하며 기뻐했다.
육아는 탱탱볼을 만지는 느낌이다. 몇 번 위아래로 반복해서 튕기며 이제는 내 손에 많이 익었나 싶을 때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 어느새 내 손을 떠나 버려 잡으러 뛰어가야 하는 탱탱볼! 내일은 또 어떤 적응을 해 나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