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매일 15km 거리에 떨어져 있는 유치원에 왕복을 한다. 운전을 해서 간다면 25분 정도 걸리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40분 정도 걸려 유치원에 도착한다. 17개월이 된 아기는 11킬로그람정도라 이제 아기띠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걸을 수는 있지만 뒤뚱뒤뚱 넘어지기 일쑤라 아직 유모차가 없으면 외출이 힘들다.
8시 반 등교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침 7시 20분까지 집 앞 버스 정류장으로 나간다. 유모차 중 가장 바퀴가 큰 디럭스 유모차에 아이를 앉히고 (거의 모든 날들이 자고 있는 아이를 옮겨 눕히는 것에 해당된다. ) 의자 아래 짐칸에는 아기의 간식, 밥, 신발, 여분의 옷, 담요 등등 만약을 위한 짐을 한가득 담는다. 독일의 대부분의 버스가 안내된 시간에 분단위로 딱 맞춰서 도착하지만 이른 아침에는 5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시간 전에 가버리는 버스도 있기 때문에 조금 서둘러서 버스정류장에 나가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아이가 등원을 시작한 후 3개월 정도 매일 비슷한 시간에 버스 정류장에 나가다 보니 매일 같은 사람을 만난다. 서로 인사는 안 해도 내적 친밀감이 솟아난다.
내가 버스로 유모차를 태운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고 하면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깜짝 놀란다. 애기랑 출근 시간에 버스를 탄다고? 그것도 유모차를 가지고? 거기는 버스에 사람이 없어?
아니다. 여기도 출근 시간 버스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서로 바짝 몸을 기대서 끼어 타고 한 사람이라도 더 태워서 가려는 건 어디든 마찬가지인 출근 풍경인 듯하다. 하지만 유모차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버스, 트램, S-Bahn, 지하철 모든 대중교통이 유모차를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그 공간에 사람들이 서있다가도 유모차가 들어오면 거의 모두가 자리를 비켜준다. 그리고 비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면 규칙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유모차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어때요?"라고 소리를 쳐준다. 감사한 사람들이다.
유모차를 가지고 대중교통을 탈 때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문 앞에 유모차 표시가 되어 있는지다. 유모차 그림이 그려진 문으로 들어가야 유모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문이 여러 개 달린 긴 버스를 탈 때도 유모차 그림이 그려진 문으로 타야 하고 그렇지 않은 문으로 타면 유모차가 지나갈 공간이 없어서 애를 먹을 수 있다.
운전기사들도 정류장에 서있는 유모차를 보면 차를 보도블록에서 최대한 가까이 대려고 노력해 준다. 저상버스이지만 그래도 유모차가 타기 쉽게 버스를 살짝 기울여주는 운전기사들도 있다. 한 번은 버스를 보도블록에서 너무 멀리 세웠다며 운전석에서 내려 뒷문으로 와서 유모차를 올리기 쉽게 보조판을 꺼내준 운전기사도 있다. 어느 날 하원길에는 버스에 유모차 4대가 탄 적이 있다. 요리조리 테트리스를 해서 유모차 공간에 4대를 세웠다. 아이들이 각자 옹아리를 하며 쪼르륵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유치원 버스 같은 느낌도 들고 그 모습이 귀여워보였다. 운전기사에 따라 유모차와 자전거를 함께 태우지 않는 기사도 있다. 규칙이 뭔지는 찾아본 적이 없지만 같은 번호의 버스라도 어떤 운전기사는 자전거 여러대도 허용을 하고 어떤 운전기사는 자전거를 가지고 타려는 사람에게 유모차가 있으니 태울 수 없다고 엄격히 승객의 승차를 거절하는 걸 보니 운전사 저마다 규칙이 따로 있나보다. 그날 탑승을 거절당한 자전거를 가지고 타려는 승객에게 괜시리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유모차를 가지고 지하철을 타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싱글일 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녀서 엘리베이터를 주의 깊게 볼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엘리베이터 위치를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의외로 독일 지하철에 엘레베이터가 참 잘되어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게 되면 자전거를 가진 사람, 큰 짐을 가진 사람, 나이가 드신 분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모두 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유모차가 등장하면 어떤 분들은 먼저 가라고 해주시거나 본인이 타고 자리를 꾸역꾸역 만들어서 같이 가자고 해준다. 나도 유모차를 가지고 탈 때 최대한 유모차 핸들도 접고 내 몸도 구석에 붙여 같이 타고 가자고 말한다. 그런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스몰토크가 이어진다. "몇 개월이니~" "우리 아이들도 이럴 때가 있었는데 시간이 정말 빨라요" "아기랑 외출 쉽지 않죠?" 독일에 10년이 넘게 살면서 한 스몰토크 중 99프로는 아기를 낳은 후이고 그중 50프로는 대중교통 엘리베이터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물론 독일도 매일매일 파라다이스이지는 않다. 백번에 한번 꼴로 이상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유모차가 타려는 순간에 문을 닫고 출발해 버리는 에스반, 절대로 자리를 비켜주지 않을 거라고 발에 힘을 주고 잔뜩 찡그린 인상의 이상한 사람을 만나는 날이 있다. 하지만 이 어이없는 날이 용서되는 것은 "유모차 타는데 도움 필요해요?" "제가 도와드릴까요?"라고 따뜻한 도움을 주는 손길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외출할 때 시야를 넓히고 도움을 줄 손길이 없는지 확인하게 된다. 며칠 전 트램에서 유모차에 탄 아이와 함께 큰 짐을 가지고 내리는 승객이 있었다. 망설임 없이 가서 "도와드릴까요?"물어보고 유모차를 같이 내려줬다. 나의 작은 도움에 그분은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사로 답해주었다. 그 인사 한마디에 하루가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아이와 함께 매일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작은 에피소드들이 쌓여간다. 아이가 놓친 굴러가는 타요 버스를 잡아주기 위해 승객들이 도미노처럼 허리를 숙이는 모습도 아이가 아니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독일의 모습이다. 어떤 날은 독일 사는 게 참 싫은 날도 있지만 이런 모습은 독일 참 살기 좋네가 나오는 모습 중 하나다. 단짠단짠의 단이 존재하기에 오늘도 나는 독일에서 힘을 얻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