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충고할 것이 없어요. “
아이를 맡기고 간 지 30분 만에 허옇게 얼굴이 질린 선생님이 교실 바닥에 털푸덕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는 우리 아이를 안고 있었다.
“오늘은 울음을 1초도 그치지 않았어요. 울기만 하네요.”
내가 아이를 들어 안아주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허허허 흐흑 흐느꼈다. 아이고 우리 아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희 아기가 오늘 특별히 컨디션이 안 좋았나 봐요. 원래 낯을 가려서 적응이 오래 걸릴 거 같았어요. “라고 에둘러 말해봤다. 선생님이 오늘 너무 치쳐서 아기의 적응을 포기할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혼자 즐겁게 잘 노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너무 울어서 미운털이 박힐까 봐도 두려웠다. 그리고 솔직한 마음으로 이 짧은 시간에 지쳐버린 선생님에게 화가 나는 마음도 들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선생님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ratlos라는 단어를 썼다고 말했다.
“ratlos? 그거 별로 좋은 말 아닌데?”
“어? 나는 rat 충고 los 없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야? 무슨 뜻인데?”
“해결책이 없다는 얘기야. “
우리 어린이집 케이스는 아니지만 몇 유치원에서 적응을 못하는 아이들에게 다음에 다시 오기를 권하거나 오전만 나오게 하다는 소문에 들려온 적이 있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낯가림이 원체 심한 아이긴 하지만 이렇게 해결책 없다는 속수무책이라는 얘기를 들을법한 건가?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음에도 왜 오늘 낮에 선생님 앞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의 제스처와 표정 모든 것이 나 오늘 너무 힘들었고 이상태라면 더는 안될 거 같은데?라는 아우라를 뿜어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입학 전 잠시 한국에 들어갔을 때 아이를 시간제보육에 맡긴 적이 있다. 그때도 하루에 3시간을 맡기면서 선생님께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 많이 울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어머님 아이들은 다 울어요! 걱정 마세요! 저는 어린이집 6년 차고요 여기 선생님은 9년 되셨어요. 저희가 다 알아서 돌봐드리니 볼일 보고 오세요.”라고 말씀해 주셨었다. 정말 마음이 든든했고 감사했다. 아이는 점차 점차 적응해서 마지막 날에는 활짝 웃으며 놀았다고 선생님께서 사진도 보내주셨다.
오늘 그 시간제 보육 선생님들이 너무 그리웠다. 아이가 내일은 더 적응을 잘하기를 최소한 5분이라도 울음을 그쳐 주기를 바라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우유, 칫솔, 인형을 바리바리 싸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이 있다면 더 잘 적응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어제 선생님 표정과 말이 생각나서 어린이집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독일어 단어 하나 외우려면 며칠 걸리는데 ratlos ( 해결책 없음)은 그냥 한순간에 뇌리에 콱 박혔다. 평생 안 잊힐 것 같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선생님이 창문 밖을 보다가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Guten Morgen! Robin!” ”좋은 아침이야 로빈! “
아이에게 먼저 인사를 해주더니
“라즈베리! 유모차 세워두는 창고가 있는데 거기 안내해 줄게! “
라며 밖으로 나왔다. 어린이집 문을 나서서 바깥으로 뺑 둘러 뒷문으로 가니 조그만 창고에 유모차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앞으로 여기에 주차하고 들어오면 더 편할 거예요. “
“고마워요. 선생님 어제 아기가 적응을 못하는 거 같아서 우유랑 인형이랑 아기가 치카치카하는 걸 좋아해서 칫솔도 가져와봤어요.”
“오! 잘됐네요! “ 선생님은 이런 익숙한 물건들이 아이들을 더 안심시킬 수 있다며 잘 가져왔다고 했다.
유모차를 세우고 아이를 데리고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에 원장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있었다. 아이를 선생님께 넘기기 전에 왠지 고맙다고 아이가 오늘도 좀 울 거라고 모든 선생님이 계신 데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어제 우리 아이가 많이 울어서 힘드셨죠? 아이도 울어서 힘들었겠지만 선생님들도 걱정됐어요. “
그러자 다른 서류를 보고 있던 원장선생님이 뒤돌더니
“아니에요! 이건 우리의 직업인걸요! 우리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아이는 말을 못 하니 울 수밖에 없어요. 표현의 한 형태이고 천천히 적응해 나가면 돼요!”
어제 너무 힘들었던 우리 아이의 담당선생님도
“걱정 말아요! 오늘 좋은 시간 보내보자 로빈!”
하며 아이를 넘겨받았다.
아… 내가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인가! 원장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른 선생님들도 더 힘을 내는 분위기가 되었다. 어제와 다름없이 우는 아이를 뒤로한 채 교실 문을 닫고 나오는 내 발걸음에 죄책감을 조금 덜 수 있었다.
나는 2층에 대기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벌 받는 생각하는 의자에 앉은 느낌반 휴식반으로 아래층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다렸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아마 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나 보다. 그리고 다시 줄어들었다. 우리 아기 첫 사회생활 고생이 많다.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놀이터 들러서 재미나게 놀다가 가자. 마음속으로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오늘은 40분 만에 선생님이 나를 부르러 2층으로 올라왔다.
오늘도 아기가 울음을 안 그쳤을까 봐, 혹여나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더 이상 받아주고 싶지 않다고 할까 봐 떨리는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똑똑똑
멀리서 웅얼웅얼 울먹이며 친구들 사이에 앉아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로빈이는 완전 최고였어요! 많이 울기는
했지만 이 울음이 제 생각엔 우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 말하려는 것 같아요. “
휴 다행이었다. 아기의 컨디션에 따라 나의 하루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애 맡긴 죄인의 마음이란 것이 이런 걸까… 어린이집에 보내면 보낼 수록, 적응 훈련이 단계를 거듭할 수록 뭐가 뭔지 모르겠고 확신도 사라지고 있다. 아기에게 너무 무리한 것을 잘해주길 기대하고 있는 걸까 걱정이 된다.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아이가 적응을 못해서 어린이집을 못다녀도 그것또한 우리의 운명이겠거니!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더라도 아이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말자. 솔직히 우리가 탄 배가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겠다. 무리하지 말고 하루 하루 하는데 까지만 열심히 해보자! 휴! 어린이집 보내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