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어린이집 첫 등원 날
지난주 아기가 몹시 아팠다. 일주일 내내 열이 40도 가까이 치솟았지만 소아과에서도 딱히 이렇다 할 처방이 없어 아이는 약국에서 파는 해열제로만 아픔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도 힘들었겠지만 새벽에 내가 깜박 잠든 사이엔 어김없이 빨간불에 40도를 나타내는 체온계 때문에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서 쉬고만 싶었다. 이런 와중에 다음 주에 있을 유치원 첫 등교를 위해 준비물을 챙겨야 했다.
예방접종 증명서
아이의 가족사진 6장
애착인형
갈아입을 옷
여분의 쪽쪽이 (필요한 경우만)
선생님이 주신 서류 더미를 뒤져 준비물 리스트를 찾았다. 독일에서 아이가 어린이집(키타)에 가려면 홍역 예방접종이 필수라 그 확인서를 소아과 의사에게 받아서 제출해야 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가 열이 나서 소아과 예약을 잡은 김에 예방접종 증명서도 떼올 수 있었다. 독일에서 공보험으로 병원을 가게 되면 늘 공짜로 진료를 받았는데 서류는 5유로라고 한다. 파란 볼펜으로 찍찍 그은 브이표시 두 개에 5유로를 내야 한다고? 괜스레 사기는 아닌지 별 의심이 다 들었다. 하하
그다음 준비물인 가족사진 6장이 의외로 고비였다. 사진은 아이가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을 때 사진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용도라고 했다. 도대체 사진첩을 넘기고 넘겨도 고를 사진이 없다. 클라우드에 용량을 업그레이드하면서까지 사진을 보관 중인데 출력할 사진이 한 장이 없다니!!
집에서 찍은 사진에는 내가 너무 그지 같았다. 잠옷바람이거나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거나 위아래 색상 디자인 상관없이 주워 입은 옷에 질끈 묶은 머리를 한 모습을 출력해 가는 거는 나의 치부를 들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야 다시 옷을 제대로 입고 사진을 찍기엔 너무 늦었다. 여행 가서 찍은 사진에는 출산 후 빼지 못한 살로 퉁퉁 부은 나의 모습만 남아있었다. 아! 거울로 보는 나와 카메라 속의 나는 정말 다르다. 아마 카메라 속의 내가 진실이겠지... 우리 아가는 태어나서 엄마의 이런 후줄근한 모습만 보았을 텐데... 갑자기 우울감이 몰려왔다. 올여름엔 꼭 다이어트를 성공하고 말테야! 다짐하지만 우울하고 슬프니 초콜릿이 당긴다. 겨우겨우 아기만 나온 사진 2장, 가족사진 4장으로 겨우 겨우 사진 6장을 골라서 집 근처 드러그 스토어에 가서 사진을 뽑아왔다.
6월 3일 드디어 첫 등교날이 되었다. 아침 6시로 맞춘 알람보다 눈이 먼저 떠져서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마음이 바빠서 그런지 아침 먹을 새도 없이 허둥지둥하며 준비를 마쳤다. 아직도 한밤중처럼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번쩍 들어 유모차에 태우고 유모차 손잡이에 주렁주렁 아기의 밥가방, 기저귀 가방을 달고 집을 나섰다.
코끝 깊숙이 들어오는 아침의 쌀쌀한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잊고 지낸 그 익숙한 공기가 반가웠다.
“우리 아기 첫 사회생활 축하해!! “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잘해보자고 속삭여 본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빠진 준비물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 넣었고 넣었고… 오케이! 유모차에 걸린 가방을 눈으로 훑으며 이미 넣은 물건들을 강박적으로 다시 체크했다. 내가 학교 가는 첫날도 이렇게 긴장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우리 아기 처음 어린이집 가는 날은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다.
어린이집 교실에 도착하니 “Herzlich Willkommen Robin! “ (로빈아 환영해!)라고 적힌 종이가 문 앞에 붙여 있었다. 지난번 방문의 충격으로 이 어린이집에 아무런 기대가 없었기에 이 작은 환영의 종이조차 폭풍 감동으로 다가왔다.
똑똑똑!
교실문을 열자마자 빨간 립스틱이 인상적이었던 원장선생님이 “로빈아 어서 와!” 라며 우리를 다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세명의 선생님과 세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교실은 여전히 차가움이 기본이 되고 있긴 했지만 사람의 온기가 섞이니 회색빛으로 우중충하게 삭막하기만 했던 교실에 살짝 빛이 들어온 것 같았다.
“안녕! 나는 베티나야. 로빈의 적응훈련을 담당할 선생님이야.”
“안녕 나는 케자넷이야. 만나서 반가워. “
“안녕 내 이름은 셀리나야.”
선생님들이 각자 놀고 있는 아이들 곁에 머물며 큰 소리로 밝게 인사를 해줬다.
“안녕 내 이름은 라즈베리고 로빈의 엄마야 반가워 “
독일어는 여전히 못하지만 이름만은 씩씩하게 말해본다. 선생님들이 본인 이름을 말해줬지만 나는 그걸 형식적인 인사말이라고 생각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선생님 이름 부를 일이 생겼다. “선생님 이 서류 어디에 둘까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기에 시선이 항상 아이들 쪽으로 머무르니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려면 이름을 불러서 내가 너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했다. 예를 들면 "케자넷 이거 준비물 가져온 건데 어디다 둘까?" 이런 간단한 대화들에도 이름을 불러야 하는 것이다. 선생님이란 호칭 뒤로 숨을 수가 없었다.
큰일 났다. 이름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헤이로 시작할 수 없으니 일단은 질문은 뒤로 미룬 채 선생님들과 아이들 대화 속에서 그들의 이름을 눈치껏 챙겨 담기 시작했다. 키 큰 선생님은 베티나, 두건을 쓴 선생님은 케자넷, 청바지를 입은 선생님은 셀리나. 몇 번을 되새겨본 후에야 겨우 이름을 외웠다.
선생님들은 새로 온 사람이 나와 우리 아이뿐이어서인지 내 한국 이름을 곧잘 외우고 발음하고 불러줬다. "누구의 어머님!"이 아닌 "라즈베리!" 라며 내 이름을 불러줬다.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학부모로서 유치원을 갔지만 나의 존재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나름 긴장되고 긴박했던 몇 분이 지나가고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초록 나무를 바라보고 있자니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난다.
우리는 첫날 유치원에 30분간 머물렀다. 우리 어린이집에서 사용하는 적응 훈련모델은 뮌헨 모델이라고 한다. 첫 삼일은 엄마와 함께 붙어 있으면서 멀리서 선생님, 친구들, 놀잇감을 관찰하고 선생님들은 인사만 하는 정도로만 아이와 컨택을 한다. 4일째부터는 선생님과 아이가 관계를 형성해 나가며 엄마는 뒤쪽으로 빠지되 아이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멀찍이 가서 앉아 있게 된다. 그리고 등원하는 시간대를 조금씩 바꿔서 점심도 먹어보고, 아침프로그램도 참여해 보고, 오후 프로그램도 참여해 보고 유치원의 모든 프로그램을 조금씩 경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 후에 엄마와 떨어지는 연습을 하게 되는 것이 이 뮌헨 모델의 이론이라고 한다. 아이의 적응상태에 따라 총 11주 정도로 천천히 적응해 나갈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는 일주일 만에 혼자 등원을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 이론에 따라 아이와 나는 선생님과 인사를 한 후에 교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키즈카페에 놀러 온 것처럼 아이는 나를 보호막 삼아 내 무릎에 앉아 주변 장난감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케아 스뎅그릇에 플라스틱 고리 장난감을 넣어 놓은 놀잇감이었는데 아이는 손으로 만지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엉덩이만 들썩들썩했다. 몇 분이 지난 후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점점 나에게서 떨어지더니 멀찍이 있는 장난감을 가져왔다. 옳지!! 낯가림이 있는 아이라 오늘 울다가만 집에 올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낯선 공간에서 아이의 도전이 너무 고맙고 대견했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선생님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10분 정도 늘려 40분간 유치원에 있어보자고 한다.
어린이집 문을 닫고 나오며 잘 해준 아이에게 고마워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첫인상보다 어린이집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오늘은 어린이집에 머문 시간보다 준비하고 이동한 시간이 훨씬 더 길었으나 풍족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발 이렇게만 쭉 가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