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살이, 쉬운게 하나도 없네
3월의 어느 날 아침 9시 남편은 출근을 미루고 집에서 대학교 부설 어린이집 총괄 관리자와 줌미팅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xxx이고 R군의 아빠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F대학교 부설 어린이집 관리자 ooo입니다. 당신의 아이를 이곳에 보내고 싶으시다고요?"
"네 제 와이프가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물론 지금은 육아로 인하여 휴학 중이긴 합니다만, 저희 동네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더군요. 그래서 부설 유치원에 자리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드렸습니다."
"그렇죠. 요새 어린이집 자리받기가 엄청 힘든 것을 압니다. 유치원 선생님들의 인력 부족이 그 원인 중 한 가지이지요. 저희 부설 어린이집에 자리가 있는지는 아직 확실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오늘 저와 줌미팅이 끝난 후에 서류를 제출해 주세요. 웨이팅 리스트에 올려드린 후 자리가 나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리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일단 남편과 담당자는 어린이집 콘셉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연령대는 0-3세로 이루어져 있고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풀타임으로 보육을 제공할 수 있으며 아침, 점심, 오후 간식까지 세 번의 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다. 유치원의 교육 콘셉트는 에미 피클러의 방법을 따르고 있다고 했다. 꽤나 자세한 설명과 질의응답이 오가며 약 한 시간의 줌미팅을 마쳤다. 휴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다. 독어가 서툰 내게 한 시간의 줌미팅을 하라고 했다면 나도 상대도 너무 곤욕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줌미팅을 끝내고 받은 어린이집 입학 신청서는 매우 간단했다. 나의 학번, 과, 이름 주소를 적고 아이의 생년월일, 주소를 적은 후 언제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은지를 쓰기만 하면 됐다. 언제부터? ASAP이라며 내일 날짜를 쓰고 싶었지만 아이의 돌 기념 한국 방문이 기다리고 있어서 독일에 돌아오는 다음날인 한 달 반 뒤로 적어서 신청서를 보냈다.
제발 제발!! 잘 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여기가 유일한 희망이에요!! 간절함을 담아 이메일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려면 내가 이 학교의 재학생이어야 한다. 그 말인즉슨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기간 동안 멈췄던 대학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일단 자리받고 생각하자!
그리고 우리는 한 달간의 일정으로 한국으로 갔다. 아이의 돌사진을 찍고 가족끼리 소규모 돌잔치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하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띠링! 이메일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6월 1일부터 당신의 아이에게 자리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몇 번 전화를 드렸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이메일을 드립니다. 자리를 원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뭐!! 전화로 연락을 했었다고? 세상에나! 내가 이 중요한 시기에 한국에 머무는 바람에 연락이 온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이렇게 자리를 놓칠 수는 없다!!! 일단 이메일을 받자마자 답장을 써서 보냈다.
"친애하는 어린이집 담당자님
연락을 주셔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현재 R군의 첫 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한국에 잠시 와있습니다. 그래서 전화 연결이 불가능했습니다. 저희에게 이메일로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네! 저희는 6월 1일부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싶습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 독일에 돌아갈 예정인데 돌아가자마자 전화를 드려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답장을 보낸 지 한 시간 만에 바로 답장이 도착했다.
"친애하는 부모님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독일에 오셔서 전화 주시면 다시 안내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R군과 부모님과 함께 어린이집에 오셔서 계약 관련, 유치원 적응기관 관련 이야기, 앞으로의 진행상황에 대해 알려드리는 미팅의 시간이 있을 예정입니다. 미팅 날짜는 전화할 때 잡도록 하겠습니다.
R군과 한국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고 R군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우와!!! 이렇게 자리를 받았다고!! 3개월 후에 우리 아가가 어린이집에 가게 된다고? 믿을 수가 없다!!! 매일마다 아이와 24시간 함께 하며 체력적으로 지치는 순간이 있었는데 3개월 뒤에 아이가 기관을 간다고 생각하니 없던 힘도 불끈불끈 솟았다. 끝이 있는 힘듦이라고 생각하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긍정파워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아이를 보며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나 편하자고 이 어린아이를 사회생활로 내모는 것은 아닌가? 육아 전문가들은 어린이집은 최대한 늦게 보내고 엄마와 유대관계를 맺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는데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나? 또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참 웃기다. 집에 데리고 있어도 죄책감이 들고 기관에 보내려고 해도 죄책감이 든다. 어느 한 방향도 마음이 편한 방향이 없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결국 멈췄던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육아, 대학공부, 복직 과연 이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육아의 짐을 덜려고 어린이집을 보내고 싶었는데 혹 떼려다가 혹 붙인 격이 되어버렸다. 앞이 깜깜하다.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 20살 아가들과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다니.. 모든 수업을 줌으로 집에서 해결하던 코로나 시절이 그립다. 내 인생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독일에는 어린이집 관련 괴담이 돈다.
"8개월에 어린이집에서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는데 아이가 너무 어려서 안 보내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이후 아이가 3살이 될 때까지 자리가 안 나서 3년간 가정보육 중이에요."
"저희도 10개월이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는데 갑자기 아이가 짠해 보여서 제가 좀 더 데리고 있으려고 어린이집을 안 보냈어요. 그런데 다시 연락이 올 때까지 2년이나 걸렸지 뭐예요. 결국 전 육아휴직을 연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어린이집 자리를 거절한 엄마들의 혹독한 댓가에 대한 괴담이다. 이런 도시 괴담을 다시 되새기며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R군아! 이것이 너와 나의 현실이다! 우리 어린이집 가서 잘해보자! 어린이집 가기 전 3개월 동안 엄마가 신나게 놀아주고 많은 사랑 줄게!! 일단 오늘 엄마는 공부고 뭐고 일단 어린이집 자리를 받아서 너무 기쁘니 편의점 가서 맥주 한 캔 사 와야겠다. 우리의 미래에 치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