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죄책감
결국 어떤 어린이집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은 채 3월이 지나갔다. 2024년 9월에 입학 대상자에게 연락을 모두 돌렸다는데 우리 아이는 그 어느 곳에서도 연락을 못 받았으니 어린이집은 아예 못 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유치원 입학대상이 되는 3돌까지 앞으로 2년 더 가정보육을 할 수 있을까?
하루는 희망찼다. 그래 이렇게 아이와 놀이터도 가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음악학교도 가고 여름이면 수영장 가을이면 들판으로 나가는 거야!
하루는 우울했다. 집에 있는 장난감은 아기의 월령보 다 낮은 장난감뿐인 거 같고 새로운 사람을 낯설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 잘못인 거 같았다. 오후 네시쯤 되면 박살 난 체력에 남편의 퇴근만 기다리게 되었다.
엄마의 선택으로 굳은 의지와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가정보육 하는 것이면 몰라도 어린이집 자리가 없어 억지로 아이를 집에 데리고 있으려니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내가 어린이집에 가서 더 읍소를 했어야 했을까? 우리 아이를 위해 나는 희생정신이 부족한가? 노산으로 귀하게 얻은 아이면서 왜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건가? 유튜브에 나오는 엄마들만큼 즐겁게 놀아 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 엄마들처럼 매번 맛있는 밥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죄책감과 미안함이 쌓여갔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내 복직이다. 내년 3월까지 육아휴직을 신청해놨는데 아이 어린이집이 해결이 안 되면 또 휴직을 연장해야 한다. 이래저래 어린이집 하나 안된 걸로 내 삶의 계획이 다 틀어질 판이다. 누가 독일 애키우기 좋다고 했나!!! ( 증말 오늘도 인터넷에 독일 복지 좋아요 교육 때문에 이민 가고 싶어요라는 글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현실은 이렇게 답답하고 힘든데 이런 단점까지 다 알려주고 싶다. 파라다이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
한국처럼 잠시 하루라도 맡길 조부모님이나 급할 때 달려와줄 나의 형제자매가 있다면 마음의 짐이 반이라도 줄텐데.. 아이의 보호자로 우리 부부밖에 없으니 아직 1년이나 남은 복직이 아직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앞날을 생각할수록 마음만 초조해졌다.
나는 이럴 때 될 대로 되라지!라는 베포가 없다. 얼른 플랜 B, C, D.... Z까지 만들어야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데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머리만 복잡하다.
그렇게 해결책 없는 고민만 가득하던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코로나 때 등록한 독일 대학교에 부설 유치원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입학식 오리엔테이션에서 아이가 있는 엄마들을 위해 학교에 유치원이 있습니다.라는 얘길 듣고 나한텐 해당되지 않는다며 흘려버렸는데 오호... 한번 연락이나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수업을 들은 건 한 학기였지만 임신으로 인해 휴학을 할 수 있었고 매번 등록금을 내서 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대학 부설 어린이집에 문을 두드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도 집에서 편도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고 아이가 부설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다 하더라도 조건이 공부하는 학생의 자녀이기 때문에 멈춘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아.. 쉽게 가는 거 하나도 없다. 학점을 한 과목만 따도 되니 일단 공부는 나중에 생각하고 이메일을 보내보자!
느리디 느린 독일 행정에 기대도 없었는데 바로 다음 날 답장이 왔다! 메일에는 자리가 있는지는 확인해 봐 야 하지만 우선 담당자와 미팅을 갖는 자리를 가지자 고 답장이 왔다. 오? 갑자기 희망이 샘솟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