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트된 PPT는 산더미, 내 기억 속 지식은 티스푼

시험기간 시작 (14주 차)

by 라즈베리


월요일, 데이터베이스 수업의 마지막 진도가 끝났다.
"이번 주 목요일 실습, 다음 주 월요일 마지막 강의. 이후엔 질의응답만 받을 겁니다. 다만, 15분 동안 아무도 오지 않으면 그냥 가겠습니다."

단순한 공지인데도 뭔가 결연한 다짐처럼 들렸다.
질문이 없으면 그냥 가겠다고? 이거 완전… 교수님 스타일이다. 교수님은 어떤 질문이든 성의껏 답해 주는 분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이 시간을 꼭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프린터를 돌렸다.
PPT, 연습문제, 필기 정리.
책상 위에 인쇄물이 한가득 쌓였다. 시작할 엄두도 못 낸 채 그걸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걸 언제 다 하지? 목요일까지 가려면 이틀이 있다.



화요일과 수요일, 약속을 다 미루고 공부에 몰두하기로 했다.
(라고 말하면 굉장히 계획적인 사람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그냥 급했을 뿐이다.)

오랜만에 처음부터 복습을 시작했다. 첫 주 수업 자료를 펼쳐 보니, 내 손으로 필기한 내용인데도 남이 쓴 것처럼 낯설었다.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다시 읽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때는 도대체 이걸 왜 이렇게 어렵다고 느꼈지? 수업 들을 때는 "이게 무슨 소리지?" 했던 내용이, 지금 다시 보니 "아, 이 말이었구나" 싶다.

이렇게 공부자 잘 됐지만 목요일 실습 시간에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질문이 없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질문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습 부분을 덜 봤다. 앞부분 이론만 죽어라 복습하다가 실습 내용을 거의 못 본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뒷부분부터 볼걸. 그래서 방향을 틀었다. 이론이고 뭐고, 실습이 많은 챕터부터 보기로 했다. 목표는 단 하나. 다음 주 월요일 전까지 무조건 데이터베이스 완주. 그리고 질문하기!


목요일 오후, 자바 수업. 과제는 이미 제출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조교가 말했다.
“마감 시간 전에 파일을 업로드하지 못한 조도 있고 일부 팀은 몇 개 빠뜨리고 제출했어요. 과제 제출도 시험의 일부라서 도와줄 수가 없어요”


유튜브에서 본 적 있다. 과제 파일은 마감 5분 전에 가장 많이 업로드된다고. 마감 직전까지 수정을 하고, 손 떨면서 ‘업로드’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던데. 여기도 비슷했겠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


조교가 내일 있을 프레젠테이션 공지를 했다. 하루 전날인데, 아직까지 우왕좌왕했다. 왜냐하면… 발표 방식 공지가 매번 달랐다.

매. 번.

이번에는 전시회처럼 진행하기로 했다. 각 조가 포스터를 벽에 붙이고, 컴퓨터 한 대를 준비해 시연을 하면, 학생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방식. 이 교수님, 발표 스타일 연구 중이신가 보다.



금요일, 대망의 자바 프레젠테이션.
그런데 전날 밤, 아이가 열이 올랐다. 왜 꼭 이렇게 중요한 날 전 날 아픈 걸까. 새벽까지 돌보다가, 남편과 상의했다. 남편이 오전에 휴가를 내고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내가 수업이 끝날즈음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오면 남편은 나와 바통터치 후 출근하고 나는 다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이 과목의 원래 수업 시간은 10시부터 11시 30분. 그런데 오늘 발표는 8시 15분부터 11시 30분까지로 공지가 나왔다. 무려 세 시간 15분이다. 교실에 도착하니 이미 아수라장이다. 프로젝트 팀만 20팀인데 게다가 석사 과정 학생들도 발표 자료를 들고 참석했다. 포스터를 붙일 공간조차 찾기 어려웠다. 어찌어찌 세팅을 마쳤는데, 교수님이 오시지 않았다. 조교는 그래도 뭔가를 진행해야 된다고 생각했는지 "자유롭게 다니면서 다른 팀 발표를 보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돌아다녔다. 그리고 입이 떡 벌어졌다. 와, 다들 무슨 게임을 만든 거야?

화려한 그래픽으로 구현된 복잡한 보드게임들! 이거 다 학생들이 만든 거 맞나? 그냥 보기만 해도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 팀 프로젝트를 다시 한번 돌아봤다. 음... 괜찮겠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조금 불안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교수님이 등장했다.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질문하고, 직접 실행해 보셨다.
10개 팀쯤 평가했을 때, 교수님이 또 자리를 비우셨다. 우리 팀을 포함해 아직 평가받지 못한 팀이 10개 이상인데 남은 시간은 30분 밖에 없다. 이거… 될까? 모두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교수님이 다시 들어오셨다.

“미안해요! 다음 수업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러고는 광속 평가 모드. 한 팀당 1분도 안 걸렸다. 질문, 실행, 점수 매기기.
“오케이, 다음 팀.”

아, 모르겠다.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자바 프로젝트 점수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정말 끝났다. 한 학기 동안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줬던 프로젝트가 끝이나다니...

후련하고, 시원하고, 약간은 섭섭하다. 정말 많은 걸 배웠지만, 가장 속을 썩였던 과목이기도 했다.

다른 두 과목의 시험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일단 한 과목이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이제 주말을 즐겨야겠다. (…라고 쓰고, 결국 데이터베이스 복습을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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