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엄마 사이, 고달픈 균형의 기술 (13주 차)

거의 다 왔는데… 왜 아직도 할 게 남았지?

by 라즈베리

결국 휴강 대체로 올려준 데이터베이스 인강을 미루고 미뤘다. 억지로 들어보려 했지만, 머릿속에 들어올 리가 있나.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고, 남은 건 하나도 없었다. 다시 듣는 것도 버거울 것 같아 그냥 포기했다. "시험 기간 되면 그때 가서 다시 보면 되겠지!"라는 무책임한 다짐을 한 채 강의실로 갔다. 예상대로 교수님은 우리가 하나도 안 해왔을 걸 이미 알고 계셨는지, 차근차근 문제풀이를 해주셨다. 희미하게 스쳐 지나간 내용들을 붙잡으며 겨우 따라갔다. 그래도 시험공부는 제대로 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정신없는 하루였다. 집을 나서기도 전에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인력 부족으로 오후 2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아, 내 수업은 3시 50분까지인데..."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학교 소속된 크리페마저 문을 닫으니 믿을 곳이 없었다. 결국 남편이 오후에 잠시 외출을 조정해서 두 시간 동안 아이를 맡아주기로 했다. 이런 날, 맞벌이 부부는 참 막막하다. 다행히 학생 신분이라 우선권이 있어 아이를 맡길 수 있었지만, 엄마가 전업주부인 집은 오늘 하루 가정보육이 확정이다. 이런 날을 대비해 부모 중 한 명이 무조건 집에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후다닥 뛰쳐나와 남편과 바통 터치를 했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화요일과 수요일이 한없이 여유롭게 느껴졌다. 이런 날 공부를 하면 좋겠지만, 책 한 장도 펼치기 싫었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고, 집에 누워 시간을 흘려보냈다. 분명 쉰 것 같은데, 몸은 개운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목요일. 길고 긴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제 거의 끝을 향해 가는 자바 수업이지만, 이제야 과제에 대한 피드백이 돌아왔다. 점수 받기 전에 피드백을 주신 건 고맙지만, 여태까지 질문을 해도 답이 없던 터라 갑작스러운 피드백이 당황스러웠다. 더 큰 문제는, 우리 팀이 과제를 위해 a1 사이즈 scientific poster를 16유로나 주고 출력해 왔다는 것. 그런데 피드백을 받고 보니 수정해야 할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길거리에 16유로를 흘리고 온 기분이었다. 결국,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한참을 수정했다.

그리고 5시 45분, 영어 수업. 지난주부터 이어진 발표 세션이 오늘도 계속되었다. 발표자는 다섯 명. 선생님은 15분이 넘으면 가차 없이 발표를 끊고, 마지막 슬라이드로 넘어가 결론만 말하라고 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진행했지만, 질의응답이 길어져 결국 수업 시간이 지체되었다. 강의실을 나서니 어느새 밤 9시. 트램 공사로 대체 버스를 타야 했지만, 어플에서도 안 나오는 난감한 상황. 결국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뛰고 또 뛰어서 겨우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한겨울인데도 땀이 났다.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 배도 고프지 않았지만,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서 밥 한 공기를 싹 비우고 잤다. 이상하게 야식을 먹어야 하루가 마무리된 것 같다.


금요일. 오늘은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날이었다. 유치원 환경미화가 있는 날이라 그렇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자바 연습 시간을 포기하고 아이와 함께 했겠지만, 어제 받은 피드백을 반영해야 했기에 남편이 오전에 휴가를 내고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나는 실습 시간 동안 팀원과 수정할 부분을 논의했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반영하느라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팀원이 마우스를 쓰지 않고 터치패드로 화면을 넘기다가 실수로 내가 적어둔 알고리즘 코드 절반을 날려버렸다. "휴…" 다행히 백업해 둔 게 있어 복구했지만, 시간을 허비한 건 억울했다. 왜 MZ들은 마우스를 쓰지 않는 것일까? 우리 강의실에서 마우스를 쓰는 건 교수님과 나뿐인 것 같다.


점심시간이 되어 남편과 아이를 만나 학교 식당에서 피자를 먹었다. 한 학기 동안 멘자에서 밥을 먹다 보니 모든 음식이 거기서 거기 같았지만, 피자만큼은 예외였다.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 굽는 피자는 맛있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여유로운 날이 아니면 선택하기 힘든 메뉴였다. 오늘은 일정이 없으니 천천히 기다려볼 수 있었다.


점심을 마치고, 트램 공사로 인해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빠른 길을 두고 돌아가는 게 짜증 나지만, 아이는 구경거리가 많아선지 흥미로워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낮잠을 자기 시작했고, 그 사이 실습 시간에 끝내지 못한 수정을 마쳤다. 최종 버전 업로드를 마칠 때쯤, 아이가 눈을 떴다.

드디어 주말이 시작됐다. 이제 수업도 2주 남짓 남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계속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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