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깨닫는 백수의 의미
직장인들은 가끔 스스로를 '노비'라 부릅니다. 인생에서 일정 시간을 바치고, 대신 월급이란 달콤함을 약속받는 삶인거죠.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모두 노비가 되길 원하잖아요. 특히 노비에도 계급이 있어 대감집 노비가 좋다, 공노비가 짱이다... 이런 웃지 못할 농담도 하고요.
저도 백수 기간이 길어지니 자유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스스로를 경영할 수 있는 자유시간이 백수의 장점이라면 장점일텐데, 왜 자유시간이 길어질수록 불행해질까요. 주변에 은퇴를 한 어른들을 봐도 자유는 형벌같습니다. 그분들 같은 경우 연금과 재산이 풍족한데도 갈 곳을 잃어 괴로워합니다. 00 대학, 00 봉사, 00 시간제 일자리에도 은퇴한 분들이 엄청나게 몰려옵니다. 어떻게든 자신이 갈 공간, 자신이 루틴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는 거죠.
저는 30대가 되니 인생이라는 건 결국 자신의 공간 찾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자신이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 말이에요. 그런데 백수라는 건 단지 시간과 선택의 자유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정주할 공간이 없는 떠돌이가 된다는 점에서 비애감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집 밖에서 머무를 수 있는 공간들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공간의 의미가 점점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재난은 모두에게 고르게 미치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더 가혹합니다. 그래서 더 어떻게든 공간을 얻길 바라고, 그 공간을 위해 다시 인생 전체를 저당잡히는 삶이 반복되는 게 아닐까요? 공간에 속박되기 위해 자유를 바쳐야 한다면, 기꺼이 바칠 만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