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요가를 하는 무탈한 하루

세상에 휘둘린 뒤, 매트 위에서 나를 만나는 시간

by Dada

대부분의 경우, 요가원에 출석했다는 것은 그날 하루가 무탈했다는 거다. 일단 적절한 시간에 퇴근하고 요가 수업에 제시간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저녁의 요가 수업에는 대체로 하루가 평범했던 사람들이 모인다. 고요한 조명과 은근하게 풍기는 인센스 향, 산스크리트어로 된 음악으로 가득 찬 요가 스튜디오에서 각자의 매트 위에 앉아 수업을 기다린다. 뒷자리 매트에 앉아 요가 수업을 기다리는 동안 가끔씩 사람들을 관찰하며 다들 어떤 하루를 보내고 이곳에 모였을까 상상해 본다.

누군가는 상사에게 호되게 혼이 나고 왔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역대급 진상 고객에게 시달리며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왔을 수 있다. 누군가는 가족과 크게 다투고 대문을 박차고 요가를 하러 왔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오늘 연인과 헤어졌을 수도 있다. 혹은 반대로 누군가는 오늘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내고 왔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오늘이 사랑이 시작되는 날이었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퇴근하고 집에 온 배우자에게 허겁지겁 아이를 맡기고 잠시 자유시간을 얻어 왔을 수도 있다. 개인에게 주어진 하루의 무게를 무사히 감당하고 온 사람들이다. 물론 어떤 무게는 다음 날로 넘겨야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오늘의 무게는 일단락되었으니 다들 요가원에 올 수 있었을 거다.

용산에 있던 사트얌 요가원. 지금은 이사하셨다.

일단 요가 수업이 시작되면, 사회에서 우리 각자가 가진 무게는 잠시 내려놓아진다. (내려놓는다기 보다는 잠시 잊힌다는 게 맞을 수도 있다) 매트 위에서 우리는 대리도, 과장도, 아르바이트생도, 사장도, 엄마도, 아빠도 아니다. 그냥 ‘나 자신’이다. 아마도 요가가 추구하는 것은 그렇게 ‘나 자신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요가 철학에서도 ‘신’이라는 존재가 언급되는데 여기서 신은 종교적 의미의 신이 아니고 ‘나 자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매트 위에서 몰입을 하는 동안에는 누군가가 ‘나 자신을 사랑하세요,’라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오직 나 자신에 대한 생각밖에 할 수가 없다. 다른 생각을 하는 순간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있던 팔과 다리가 휘청거리고 넘어지게 된다.


요가 수업 전후로 선생님과 주변 도반들에게 ‘나마스테,’ 인사를 한다.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인사를 드립니다’라는 의미다. 나는 ‘당신이 보낸 하루를 존중하고, 당신의 요가 수련을 응원합니다,’라는 의미로 생각하며 ‘나마스테’를 한다. 요가원에 출석한 하루는 정말로 평범하고 무탈했을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던 하루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의 끝에 요가 매트 위에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면, 충분히 괜찮은 하루가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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