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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라 May 10. 2024

시댁어른들 안녕하신가요?

어버이날 2

2024.05.08

휴직 중의 어버이날은 어떨까 싶었다.

자주 가는 초밥전문점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오면

50% 할인해 준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나한테만 보내온 것이 아님에도 특별하게 초대받은 백화점 VVIP 초대권 보다도  신선했다.

평일의 여유를 반값으로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과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정신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평소에 날 것은 안 좋아하시기 때문에 친정엄마를 모시고 가지는 않을 것 같았고 아버님 어머님 생각이 다.


우리 아버님 어머님은 법 없이도 사 실 분이다.

어머님은 순박한 시골분들의 전형적인 모습과

열심히 교회활동 하시는 눈치 빠른 권사님의 모습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이시다.

아버님은  젊은 시절은 일을 많이 하셔서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못 보실정도라고 하셨다.

그만큼 성실하셨고 책임감도 크셨다.

성격도 깔끔하신 편이었고 남에게 싫은 소리 못 하시는 신사 같은 분이시다.

어머님은 엄청 깔끔하시다.

우리 아이들을 도맡아 주시면서도 집안상태는 늘 깨끗하고 한결같았다.

자잘한 물건부터 커다란 물건까지 아이들과 남편의 물건들을 테트리스 하듯 정리해 놓으시느라 늘 바쁘셨다.

늘 바쁜 우리 부부의 집안일을 많이 도맡아 주셨고, 그 흔한 잔소리 한마디도 없으셨다.


우리가 일을 할 때는 아이들을 봐주시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주셨고 그것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부분이 되었다.

다만 교회에 너무나 소속되어 있는 통에 내가 좀 불만이긴 했으나 강요는 없으셨고 금은 오히려 교회  때문에 매주 할 일이 있으시고, 활력이 있으시다고 하는 각의 전환이란 걸 하고 나니 마음이 가볍다.


어머님은 그 누구보다도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하시고, 시간이나 약속에 확실하시고, 지혜로우시다.

중년 나이에 엄마라면 누구나 있는 고집은 좀 있으신 편인데  그건 어머님보다 내가 더 세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결혼 전 나는 어머님의 교회에 인사를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어머님이 응급실에 실려가신 적이 있다.

남편의 교회도 아니고 내 교회는 더더욱 아닌데

결혼은 둘이 하는 것인데  어머님의 교회가 웬 말인가?

그 당시 남편은 작은 교회라서 자녀 결혼식에는 당사자가 청첩을 직접 들고 목사님께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사를 드리는 건 나쁘지 않으나 그렇게 해야 하는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따라 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다음은 교회 예배에 끌려가는 시나리오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내 결혼에 있어서 모든 결정은 내가 한다.


나는 결혼 결심과 동시에 남편과 같이 상견례 통장을 만들었다.

한 달에 6만 원씩을 모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40만 원에 가까운 목돈을 만들어 어머님께 드렸다.

그 당시 상견례 비용은 의례 남자 쪽에서 부담해야 하는 비용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부담을 덜어 드리고자 했던 것이다.

어머님은 많이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생일에 어머님께 용돈을 드리기도 했다.

태어난 남편도 고생이라지만 무엇보다도 어머님의 고생이 더 컷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와 어머님은 태생부터가 다른 기질인 것 같다.

어머님은 엄청 깔끔하시지만 나는 더러운 편에 가깝다.

어머님은  예민하시고 꼼꼼하시지만 나는 터분 터분하고 덜렁댄다.

어머님은 할 말을 하지 못하시고 속으로 삭이시지만 나는 할 말은 끝까지 내뱉어야 한다.


나는 과일을 사더라고 박스째 사다 드리고 싶지만

어머님은 싱싱하게 먹는 것이 좋다며 조금만 사 오라 하신다.

나는 반찬을 그릇에 담을 때도 듬뿍 먹음직스럽게 담지만 어머님은 남으면 아까워 조금씩 담으신다.

오히려 다른 모습이 많아서 이해는 안 되지만  신선했던 것 같다.


올해로 아버님 어머님과 가족이 된 지 15년 차가

되었다.

직장생활을 한지도 20년이 되었는데

이런 경력을 가질 수 있는 건 어머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온전히 맡아 주셨기 때문인지라

20년 안식년 포상금의 반을 어머님께 드렸다.


50%는 어머님의 공이고

50%는 그래도 역시 내 공이겠지!


오늘  어버이날을 보내며

나도 엄마가 된 지 14년이 되었지만

41년 동안 나의 엄마  자리를 지켜준 친정부모님과

15년 동안 주변에서 물심양면 도와주신 시어머님을 생각하며

아직까지는 나의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마무리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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