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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오후 Oct 10. 2017

작가나 한번 해봐야겠다

- -  내 맘대로 작가 하기

글을 깨치면서 품었던 꿈인듯하다

재미진 이야기를 써보는 것,

좋은 글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한켜 한켜 작가로의 소망이 쌓여갔다


어쩌다 보니 글을 쓰는 것보다 책 만드는 일을 먼저 하게 되면서

글 쓰는 것이 아주 어려워졌고 쓰는 일과는 멀어져버렸다.

좋아한다는 연장선에서의 글쓰기는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본인에게는 엄금 조치를 내리고

다른 이의 글들은 매의 눈으로 샅샅이 까다롭게 평가하게 된 것이다


잘못된 글은 독이 되어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편집일을 하면서 먼저 깨우친 탓이다.

글은 아무렇게나 쓰면 안 되겠구나

막연히 써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일

활자화의 위력을,

그 연장선상에서 글쓰기의 어려움,

함부로 글을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50줄에 들어섰는데도 쓴다는 욕구는 사그라들지 않고 

생계를 위한 일에 온 시간을 쏟고 있는 나 자신을 보노라면

어딘지 내가 있을 데가 아닌 곳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더 이상 온전히 생계를 떠안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 오자,

인생이 유한함을 온몸으로 절절이  체득한 이후,

글쓰기는 더는 미룰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그래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은 한번쯤 하고 가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  인생이 후회없지 않을까?

관 뚜껑을 닫는 순간에도 미진한 못다한 일이 남아 있다면

(킹 크림슨의 에피탑)

너무나 슬프고 후회가 남을 것이다.


- 작가가 뭔 대순가 그냥 쓰면 작기지.

- 내가 쓴 글을 누가 읽어 주기나 할까? 

그럼 나랑 내 친구들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들 그렇게만이라도 돌려보더라도 

쓰고 싶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서설가 김연수님은  산문 <소설가의 일>에서 말한다.

누구나 죽기 전에 한번은 소설을 쓰는데 그게 바로 자기의 인생 이야기란다.


첫 소설이랍시고 흉내 비스무리하게 낸 거라곤 중학교 1학년 때 어디서 많이 들었음직한 것을 쓴 거다.

40년이나 지났는데 왜 중1이 확실하냐고 묻는다면

기억력도 그다지 좋지 않고 최근에 깜빡깜박 치매 초기 증세도 보이는 나의 상태로

그 당시가 중1이 분명한 것은 내가 소설을 창작했다고 말하며 부끄럽게 반 아이들 앞에서 낭독하던 날의 그림이 머릿속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수업중 눈발이 날리고 아이들의 주의가 창가로 몰리면서 수업 분위기가 깨지고 

그 틈에 내가 글을 썼다고 들어달라고 하던 모습(감히 친구들 앞에서 낭독했다.)

내 자리는 창가쪽 맨 뒷자리.  당시의 담임샘 얼굴, 친구 몇 명의 얼굴이 또렷하게 생각 나기 때문이다.

(이런 쓰다 보니 눈 내리던 풍경은 현실이 아니라 내 소설의 첫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안하게 든다) 

와 선생님 눈 와요 눈,

그해 첫눈을 보면서 첫눈 오는 날 떠난 첫사랑을 떠올리는  다분히 소녀 취향의 할리퀸 류 소설이었으리라

그 처녀작을 무슨 보물인양 최근까지 가지고 있다 근거없는 부끄러움이 몰려와 단박에 없애버린 것도 최근인 듯하다


평생 일기도 제대로 쓰지 않은 주제에 뭔 글을 쓴다는 건지

돈 만 원에 구입한 소설에서 백만 원 이상의 감동을 받고는

저자에게 너무도 송구해하던 착실한 독자로나 만족할 것이지  

아 부끄러움이 40년을 단박에 뛰어남어와 내 볼을 물들인다

죄없이 귀를 혹사 당하던 중1반 친구들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

무료한 수업 중 만난 한 줄기 소나기 정도로만 여겨줬으면 다행인 듯

(부끄럽게도 그 친구들 중에는 현재 실세 스타 작가가 있었다.)


너무나도 타인의 눈을 의식해서 못해 왔다면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해보고 싶은 것,

그것도 40여 년 간 꾸준하다면 한번 해봐도 되지 않을까?


그럼 작가는 어떻게 되고 누가 작가라 불러주지?

등단하려면 신춘문예에 응모해야 하나?

그건 절대로 안 된다.

먼저 당선될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쟁쟁한 신인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취업 준비하듯

몇 년간 신춘문예에만 집중하는 이들이 많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는 패스

그리고 나는 그런 정통작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장식처럼 내 이름 앞에 폼나는 관사 하나를 얹고 싶을 뿐이다


설혹 기적처럼 데뷔한다 한들 그 명성에 걸맞는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감당해 낼 재간이 없다

그건 명줄을 재촉하는 일이다

그럼 신변잡기 수필 몇 편 써서 동호회 가입하고 동인지에 슬쩍 끼워놓고 이름을 올리면 될까?

이건 또 이래서 어렵다.

내 주제가 모임이나 동호회에 꾸준히 참석하기에는 너무 내 멋대로다.

이제껏 그 흔한 동창  모임, 애들 학부모 모임, 지역 모임에 참석을 안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들어가려고 한다면 괴퍅하다고 모나다고 정 맞을 것이다

그럼 제일 속 편한 방법은 다소 재정적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단행본 분량의 글을 써서 자비 출판을 하는 것이다.

책을 낸다면 저자 이름을 박아야할 테니까


이글은 그 시작이 될 것이다.

책이 팔리기는커녕 혹시라도 생면부지의 사람이 책을 보고싶다하면

책값을 받기는커녕 감사의 예로 커피 쿠폰이라도 동봉해서 보내야 할 정도이겠지만

내가 작가라는 명함을 달 수 있는 건 이 방법뿐이리라.


이렇게 해서라도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이룰 수 있다면 기어이 기쁘게 감내할 일이다. 에브리바디 땡큐다

모두 다 세계 명작을 쓸 수는 없을 거고

돈 주고 사보고는 책값이 아까워 손해배상이라도 받아야하겠다고 투덜댄 책도 있었던 지라

내가 슬쩍 작가라고 나선다 한들 문단에 큰 물의는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원래 다른사람의 일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니 나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좀 관대해지자.

쓰다보면,

쓰고 고쳐쓰다보면

좀 나지지 않겠는가

자 작가님 출발하시죠 ㅋㅋ

=> 가끔 찾아 작가 코스프레를 하는 신촌 근처 시 전문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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