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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오후 Oct 12. 2017

부엌이 살아났다


암 발병 후 3년 여가 가까워진 지금, 일상은 어느 정도 회복됐다.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오는 재발에 대한 불안감,

늦은 오후면 때때로 느껴지는 피곤함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 좋다.
그동안은 치료받느라, 육체적 상실감 때문에

집안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수술 부작용으로 팔에 생긴 부종 때문에 더더욱.


새벽잠이 없는 남편은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안치고 

전날 벗어놓은 빨랫감을 세탁기에 돌리는 등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전에는 그 시간에 아침 운동을 하고 새벽 사우나를 즐겼다.


어느 날인가부터 주방에는 고무장갑이 두 켤레가 걸려 있다
내가 쓰던 고무장갑이 작았는지 조금 더 큰 장갑을 하나 더 구해와서

내 장갑과 나란히 놓여있다
그 장갑은 나에게 보내는 무언의 응원이다.



어설프지만 아이들은 아침밥을 먹고 출근과 등교를 하고

옷장이 된 베란다 빨랫줄에서 갈아입을 옷을 고른다.

그렇게라도 일상은 흘러가야 한다.


그전까지는 잠이든 먹거리든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나의 회복에만 집중하라는 묵시적인 가족들의 합의리라


사후 약방문 같지만 알칼리수로 물도 갈고

식단은  면역력 높은 고단백 유기농 식단으로 바꾸고

일상의 습관에서부터 건강 지킴이로 바꾸려 한다


이제는 매일매일 산책 겸 장을 보고 조물조물 반찬도 한다

사실 발병 전에는 먹거리에 그다지 신경 쓰고 살지, 못했다

투잡을 뛰고 있는 나는 늘 바빴고

살뜰한 식탁을 꾸미지 못했다


일하는 중간의 점심은 대충 건너뛰고

주린 배를 움켜쥔 저녁은 포식으로 마무리됐다

집 부엌에서 가족들을 위한 음식을 하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아이들은 학원과 직장으로 늘 밖으로 나돌고

굳이 내가 식탁에 전념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이제 면역력의 처음 시작이 될 식탁을 살리기 위해 

부엌으로 복귀했다

아이들이 어리던 초등시절까지 

닭튀김(지금은 치킨으로 부르는 것이 대세다), 피자 등도 일일이 다 만들어서 먹였다

외식이 일상화되기 전이기도 하지만

집에서 재료 손질해 먹이는 것을 최고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이들 10살까지의 생일상에 수수팥단지를 직접 만들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일을 시작하게 되고

그 이후로 부엌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부엌이 건강의 지킴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부엌으로 돌아봤다

제철에 나는 음식으로 조금씩 매끼마다 해먹기로 한다.

누가 선심 쓰듯이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어디 좋은 식당 가서 먹자는 말인데 

난 그 말을 싫어했다.

아무리 유명한 식당이라도 (요즘은 맛집이라 한다)

왠지  손맛이 들어간 집밥에 못 미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갖고 있다

사먹는 밥에 너무 질려서인지도 모르겠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밥상.

내가 꿈꾸는 밥상이다


내가 식탁 타령하니 옆에서 한마디 거둔다

당분간은 부엌에 새 살림이 좀 들어오겠네,

집밥이라는 대명제를 위해 당분간 내가 사들일 그릇과 조리 도구들에 대한 염려이다.


아니거든 나 많이 달라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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