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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오후 Feb 10. 2018

나의 이중생활

대한민국에서 암경험자로 사는 것


내가 암을 경험했다는 걸 어디까지 밝혀야 될까?

브런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난 글쓰고 싶은 원초적인 욕망을 해결하려는 목적이었다.

누가 읽건 읽지 않거나 간에 내가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약간의 필터링을 통해 객관화하고 싶었다.

이건 나 혼자 쓰고 보는 일기와는 다르다

내 생각과 행동을 공감 받고 나누고 싶은 바람도 있다

유명한 작가나 소문난 블로거가 아닌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소소하나마 이런 바람들이 충족되고

난 대나무 숲의 당나귀 귀 외침처럼 갈증을 해소했다.


원데이 원힐링 다이어리가 출간 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일정 자본이 들어간 책이 출간되고

경제적 수익을 떠나서 만든 책은 팔려야 하고

널리 읽혀져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브런치를 그쪽 홍보로 썼다.

---나의 본색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뭐 암에 걸린 게 범죄 행위는 아니잖아, 등등

수많은 질문들에 자문자답하면서


점점 브런치의 글은 자극적 제목을 달고

유방암을 키워드로 달고 독자들을 유혹하기 시작햇다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매출은 유방암 환우 카페를 통해 이루어지는 듯하다

암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건강에 자신도 있고

이런 소소한 것을 기록하는 것보다는시테크 재테크를 늘리는 쪽에 관심이 있게 마련이다

사실은 나도 그랬다,

3년전 어느날 갑자기 느닷없이

"암입니다!" 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건강했다,  아니 병원조차 거의 안 갔다.



지금 나의 인적 네트워크는 정확이 2곳으로 분리된다

이 둘의 접점은 없다.

처음엔 의도적으로 분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양쪽은 견고하게 분리됐다.

나의 암 진단 사실 이후부터만을 아는 쪽과

암과는 전혀 관계가 없던 3년전 이전의 시점을 유지하는 쪽

3년간 양쪽 경계를 넘나들 때는 가발을 이용했다


나는 왜 이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ㄱ

이건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지만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 사회에 있는 보이지 않는 편견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암 진단 전에 나는 왕성하게 투잡을 했다

(내 경우의 투잡은 능력이 넘쳐서가 아니라

한 곳의 잡으로 경제적 불편이 해소되지 않아서다)


아이들 입시 논술을 하고 있었는데

이 긴급한 시기에 선생이 암에 걸렸다?

이건 동정과 위로보다는 당사자의 앞일이 먼저 걱정될 것이다.

입시가 코앞인데....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능력이 당장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순간 집중도는 떨어질 수 있겠지만....(그건 순간이다)


거래처에서 큰 오더를 하나 줘야 하는데 상대업체 사장이 암진단을 받았다.

---아 이 회사 더 밀어줘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이 오더 잘 해낼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자고 하는 게 아니다.

암 진단을 받을 당시의 내 생각이 그랫다는 것이다

 

물론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당장 뭐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니다

긴급  수술을 요하는 상황도 아니고

정밀 검사를 통해 어떤 표준 치료를 할지를 정하는 데만도(이때가 지옥이다)

두어주가 걸린다.

길고긴 항암, 수술 방사 회복을 거치는 데 일년여가 기본이다

그 이후도 정기검진으로 병원을 제 집처럼 들락거려야 한다.


긴 치료 기간 동안 혼자 고립되는 것보다는 하던 일 강도를 줄여서 유지하는 게

정신 건강상 경제적인 여건상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일은, 회사는, 환자를 돕자고 있는 게 아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게 회사의 본질이므로

사원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이용을 통해

회사 이익의 극대화를 꾀해야 하므로

환자가 된 환우에게 위로는 보내겠지만 더 이상의 지원은 않을 거 같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부디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시길)


이리하여 나는 3년 전부터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

암 진단 이전에 쓰던 아이디와 지금의 아이디도 완전 다르다


하루가 멀게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지만

내 주변인들은 나를 철저하게 분리해서 생각한다

도저히 일치가 안 되는 조합인가보다.

심지어 동생들도 연관을 짓지 못한다, 아니 의심조차.

암 진단 후 만난 지인들과는 치료와 위로 이런 정보를 나눈다.

암 진단 이전의 사람들과는 몇 십년간 계속 되었던 그 일상 그대로를 공유한다.

딱 병 얘기만 하지 않으면 헷갈릴 일도 없다.


원데이 원힐링 다이어리 홍보를 하면서 열심히 나댔어도

내 인적 네트워크 사이의 경계는 여전히 공고하다.


그렇지만 브러치 내의 유방암 관련 게시글은 조회수 1000을 넘어서고

나한테서의 관심은 온통 유방암이다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이순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유방암 환우다.

이게 현실이다.

유방암을 진단 받았다는 사실은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자랐다는 사실만큼 바꿀수 없는 일이다

물론 과거로 돌아가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암에 안 걸리는 거다.

하지만 만약은 없다.ㅠ


표준 치료 후 어느 정도 암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자

그간의 유방암 카페도 떠나고 암에서 놓여나고자 했지만

원데이원힐링 다이어리를 내놓으면서 다시 3년전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벗어날 수 없는 나의 본질이 돼버렸고

편하기까지 하다.

이게 지금의 나다.

암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나보다 더 젊거나

나보다 더 힘든 이가 있다면 손내밀어 잡아주고 싶다

내가 다이어리 출간과 판매를 위해

동분서주 했을 때

기꺼이 손을 잡아준 사람들처럼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전체가 암으로 인해서 영향 받지도

능력이 감소되지도 않는다는 것.

오히려 환자들은 더 없이 치열하게 암에서 놓여나 일상으로 복귀하고자

그 어느때보다도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

육체적 심리적으로.

그러니 불쌍하다고 위로도 말고 뭘 도와줘야겠다고도 말고

가만히 손 잡아주자.

이겨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잇다고

그때까지 직장이, 사회가, 일은, 기다려 줄 수 있다고.

진심을 환자가 느끼게 되면

그 어떤 치료제 못지 않은 효과를 보인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면 나처럼 암 진단 사실을 숨기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오늘 아침 이 글을 쓰려고 한 건 아닌데

(아침에 브런치 유입경로를 보다보니 온통 유방암 투성이여서)

역시 프로가 아니니 주저리주저리


혹시 이 글을 읽고 다이어리가 궁금하시면

이곳에서 구경하시길...

http://www.yes24.com/24/Goods/57980130?Acod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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