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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오후 Mar 22. 2018

함께 하자고 말해 주세요

환자와 보호자, 그 고단한 일상


 치료하면서
가족의 보살핌은 중요합니다

고통은 환자 혼자 감내할 수 있지만 

치료 과정에서 가까운 가족의 보살핌은 

약물 치료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아니 더 큰 영향을 줍니다. 

몸은 약이 치료하지만 마음은 주위의 배려와 위로로 치료받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암 같은 장기 질환은 오죽할까요? 


"병원을 믿고 의사샘의 처방대로 잘 치료받을 테니

내 걱정은 말고 각자 자신의 일에 충실해라,

날 걱정하느라 자기의 일을 망쳐

내가 그걸 신경 쓰게 된다면 내가 치료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치료를 방해하는 게 될 것이다." 하고

비장하고 단호하게 주문했지만

자질구레하게 내가 일상에서 담당했던 일은 

고스란히 누군가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단 받고 항암 시작하자 내가 하던 집안일은 남편의 차지가 됐습니다.

항암 내내 시도때도없이 잠에 빠져버리는 제 병바라지

직장다니는 딸, 재수하는 아들 아침밥 먹여보내고
빨래 세탁기 돌리고, 청소하고 설거지하면서 남편의 하루는 시작됩니다
내가 쓰던 장갑이 작은지 본인용으로 큰 장갑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환자 못지않게
 보호자들이 얼마나 힘들지 

병원 대기실에서 가끔 보호자들이 나누는 얘길 들을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 긴 병 간호에 지친 이들입니다

어떤 분은 원무과에서 지갑을 꺼낼 때가 돼서야

겉옷을 뒤집어입고 나온 걸 알아차린 듯

집안에 환자가 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 하며

황급히 제대로 고쳐입습니다.

집안 일에 환자 병간호에 돈 걱정에......

환자 못지않게 보호자들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대놓고 못해, 더 이상은 못해, 라고 말하지만

그이상 계속 해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순응하고

이제까지처럼 계속 간호할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병원은 늘 복잡하고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림을 달래고자 열어본 웹툰을 보다 울컥합니다. 

이 타이밍에 이런 내용. 

절묘한 시간과 공간 타이밍에 훅 들어와서인지 속절없이 눈물 한 방울.

다음 웹툰 <미생>79수 2월 13일에 올라온 글입니다.

 

자리 보전한 가족을 돌봐야 하는

나머지 가족의 지리한 미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으면 받는 대로

도움을 주면 주는 사람 대로

고마워하기도, 보람을 느끼기도 궁색하다.

하는 행위에 마음을 얹지 않는 것,

'무심'한 일상이야말로 그들이 껴안아야 할 삶의 비극이다.


"함께 ~합시다"


투병중 알게 된 사람들에게 받은 위로 중 가장 위안이 된 건 

"함께 ~합시다"였습니다.

가족들은 집을 나서기 전에 운동 잘하고,

잘 챙겨먹으라고 주문을 하고 나가고

돌아와서는 했는지 여부를 또 묻습니다.

난 내 멋대로 대답합니

잘 했다고 하면 안심하고

잘 안 했다면 걱정스런 표정을 짓습니다

생존을 위해 혼자서 매일 해야 하는 운동은 외로움이고 고통입니다.

가족들은 제게  oo하라고 주문하고 확인하는 것만으로 제 역할을 다한듯 합니다



사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30년 전, 친정 엄마가 간경화로 치료중일 때

 세 살, 돌배기 둘째, 두 아이의 육아로 경황이 없었습니다

제가 하는 거라곤 가끔씩 엄마를 찾아가거나

전화로 뭐 했냐고 물어보는 것뿐이었습니다

내가 같이 하자거나, 같이 먹자, 같이 가자,라는 말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습니다ㆍ

그렇게 몸에 좋은 거 하고, 좋은 데 가시라고 말만 했지

나서서 같이 하자고는 못했습니다.

하면 좋은 데 할 수 없었던 당신의 처지에 얼마나 마음이 답답했을까요?


30년이 넘어 내가 그 처지가 되니 그 마음이 헤아려집니다

가까운 가족이라면 ~하세요,라기보다는 

같이 하자고 손 내밀어 보세요.

환자에게 훨씬 도움이 됩니다.


보호자분들, 힘들더라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환자들도 최선을 다해 일상으로 복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힘들겠지만 같이 하자,라고 말해주세요

시간은 어김없이 흐를 것이고, 일상은 다시 돌아와

예전처럼 행복하게 지낼 날이 곧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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