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품고, 키우고, 마주하기까지의 여정
새벽에도 간호사는 나의 상태를 점검하러 병실을 방문했다. 혈압을 재고 갔는데 잠결에도 고생이 참 많으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생각보다 잠을 잘 잤다.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에너지를 많이 쓴 탓일까. 못 버틸 것 같던 부작용도 익숙해졌다. 두근거림은 거의 사라지고 손도 미미하게 떨렸다. 병원의 밤이 일찍 찾아왔듯이 병원의 아침도 일찍 시작했다. 억지로 아침밥을 입에 욱여넣고 화장실을 갔다. 오늘도 피가 나왔지만 색이 옅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더 이상의 출혈은 없을 것이라고 했었는데 안심이 되었다.
어제는 간호사가 직접 내 침대 옆에서 수축을 체크했었는데 오늘은 내가 직접 검사실로 갔다. 몇몇 산모분들이 배에 측정 기계를 대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수축이 잡히랴, 휴대폰을 하면 수축이 잡히랴 걱정하며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 있었다. 15분 정도 지났는데 수축이 잡히지 않았다. 안심이 되었다.
꼼지의 심장 소리는 듣기 힘들었다.
분명 심장은 잘 뛰고 있으나 아기가 너무 작아 소리가 잘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측정기를 피해 이리저리 움직인다고 했다.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그게 싫은 거구나 너는.
태교 여행은 취소했다.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비행기와 숙소는 환불받지 못했다. 솔직히 돈이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거기에서 하혈을 했었더라면.... 그런 상상을 하니 지금의 상황이 더 좋아 보였다. 어쩌면 하늘이 도운 걸 지도 몰라.
밥을 먹고 눕고 밥을 먹고 눕고.... 병원 생활은 생각보다 더욱 지루했다. 피가 많이 옅어져 면회는 가능했지만 하루에 15분이 최대였다. 병실 밖 복도를 돌아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애초에 많이 움직이면 다시 하혈을 할까 봐 무서웠다.
링거 때문에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다. 병실에는 와이파이도 잘 터지지 않았다. 누워서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영화라도 보고 싶었지만 인터넷이 잘 되지 않았다. 시간을 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저 자는 것이었다.
낮잠을 여러 번 잤다. 얼마동안 이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 걸까. 우리 엄마가 동생을 낳을 때 하혈로 입원을 했었다. 엄마는 두세 달을 입원하여 동생이 2.5kg이 될 때까지 버텼다고 한다.
나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