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
#10.
그 상태로 어떻게 공항으로 가서, 어떻게 비행기를 타고,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희미하다.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는 제대로 인사할 틈도 없이 저린 몸을 끌고 택시에 올라탔다. 비행기가 연착되는 동안 공항의 한 의자에 앉아 종일 끙끙댔다. 큰 배낭을 들고 있는, 처음 보는 사람이 손바닥을 꾹꾹 누르면서(아파서 낯 가릴 틈도 없었다) '단단히 체했네', '비행기 탈 수 있겠어요?' 등의 말을 할 정도인 걸 보면, 안색이 좋지 않아도 여간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잔병치레를 여러 번 하기보다, 한 번 병에 걸렸을 때 크게 아픈 체질이다. 누군가는 날 더러 여섯 번 아플 것을 한 번에 몰아 아픈 애 같다고. 그러게 말이에요.
화장실에 가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했는지 모르겠다. 소화제가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편의점에 가 매실 음료를 샀다. 위약효과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매실 음료를 통해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 그래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꽈리를 트는 듯한 쓰림에 이명의 아픔마저 받아낸 나는 고향 땅을 밟자마자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내가 하루에 택시비를 이만큼이나 쓴 건 수습 기간 이후 처음일 것이다. 오후 1시께 집에 도착한 나는 픽 쓰러져 오후 6시까지 잠들었다.
눈 뜨니 일상이다. 잠이 보약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지 그러는 동안 통증도 크게 사라졌다. 그간 회복을 위해서만 몸을 웅크렸던 덕일 수도 있다. 사실 요 몇 년 사이 오후 1시에, 그것도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5시간을 내리 잠든 적이 있었던가. 누우면서도 요즈음 가장 큰 안도감을 느꼈다. 조퇴증을 받고 점심시간 전에 나온 고등학생 같은 홀가분함이다. 먼 곳에서 찾지 말라더니 고개만 돌렸는데 극락이다.
이번 휴식은 이렇게 잔잔하게 끝이 났다.
다시 태엽을 감는다. 녹은 제대로 닦아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좀 더 튼튼하고, 덜 비틀대길 바라면서 두 손가락에 힘을 줘서 성실히 돌린다. 곧 다시 제대로 태엽을 감을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돌아간다. 바라건대, 더는 사귀지 말고, 더는 휩쓸리지 말아야지.
도연명
더는 휩쓸리지 말아야지. 비틀대는 지금 시점에선 이 말이 필요했다. 어떤 일에서도 휩쓸리지 않으려면, 뿌리를 더 단단히 내려야한다.
이때 휴대폰에 메시지가 들어온다.
"다시 언제 모일까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이다. 먼 공간에서 만난 인연이 이어지기 쉽지 않은데, 운이 항상 좋을 모양인지 이렇게 타지에서 만날 친구도 얻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