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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Aug 23. 2020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을 뜬다

<6. 프란시스코 고야, '거인'>

   "입으로 불을 토하고, 코로 연기를 내뿜는다. 그 어떤 무기로도 물리칠 수 없다. 한없이 찬란한 빛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구약성서 욥기에서 그려지는 바다 짐승 '리바이어던'의 한 구절입니다.



프란시스코 고야, 거인.


   거대한 남성이 우뚝 서 있습니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 근육질의 팔과 허리, 어디든 발자국이 찍힐듯한 육중한 허벅지 등 영락없이 야만적인 거인으로 보입니다.


   그를 감싸도는 흰 구름은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더욱 더합니다. 사람 한 둘쯤은 파리 잡듯 손찌검 한 번으로 으스러뜨릴 듯합니다. 큰 몸은 산을 구릉지처럼 낮게 만듭니다. 말그대로 리바이어던의 등장 장면 같습니다. 그의 기세에 놀란 탓일까요. 밀과 사람들은 말그대로 혼비백산(魂飛魄散) 중입니다.


   그런데, 거인을 좀 더 자세히보니 의외로 인간적인 면이 보입니다.


   표정은 결연합니다. 옷 한 벌 걸치지 않은 게 가진 것, 잃을 것 하나 없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거인, 무언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습니다. 알몸의 전투 태세에서 처절함마저 읽힙니다. 


   알고보면, 거인은 밀려오는 무언가를 보며 절박함을 느끼는 것 아닐까요. 뒤에 있는 모든 것을 지키고자 자신의 생을 걸고 있는 것 아닐까요. 나는 흐릿하게 사라질지언정 당신들은 살아남길 바란다…. 도망치는 이들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8~1828)의 작품 '거인'(1808~1810)입니다.




   짓밟지 않고 되레 막아주는 거인으로 읽혀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고야의 삶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고야의 청년기만 기억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이런 작품을 그렸다는 점을 믿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그는 로코코 양식의 영향을 받은, 화사한 귀족적 화풍을 가진 궁정 화가였으니까요.


   그런 그는 1807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 이에 맞선 영국·스페인·포르투갈 사이 피를 부른 '반도전쟁'을 겪고서 소위 '멘붕' 상태가 됩니다. 나폴레옹은 당시 스페인을 통제하기 위해 그의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의 국왕으로 앉힙니다. 이에 반발하는 스페인은 반 프랑스파인 영국·포르투갈과 손을 잡고 게릴라 활동에 나섭니다. 격분한 나폴레옹이 칼을 빼들었을 때, 피바람은 걷잡을 수 없이 들이닥칩니다.


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 5월 3일의 학살.


   고야는 불타는 도시 속에서 온전한 정신을 챙길 수 없었습니다.


   부와 명예를 준 궁정화가란 직업을 잃은 그는 길거리에 나앉아 전쟁의 참혹함을 마주합니다. 프랑스군이 군화로 자국민을 짓밟습니다. 프랑스 군에 협력한 자국민은 친구, 동료에게 도살되듯 죽습니다. 고야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살육의 현장을 보고 제정신으로 연명하길 포기합니다.


   그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전쟁, 이를 처단해줄 리바이어던이 있었다면 참상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을 뜬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판화집 <변덕>에 실린 에칭.


   그는 나폴레옹의 말 발굽 사이로 촛불처럼 꺼질 뻔한 조국의 나약함을 절감했습니다. 이 조국을 살릴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 모든 것을 감싸며 함께 죽어가는 성모보다는 침략을 막아주는 포악의 존재, 리바이어던의 등장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고야는 화약 냄새가 가실 때쯤인 1819년 스페인 마드리드 시와 그 교외를 가르는 만사나레스 강 건너편으로 9만5000제곱미터 크기의 밭이 딸린 집을 삽니다. 이 집은 그의 불안정해진 정신 상태를 대변하듯 '귀머거리의 집'으로 불립니다.


   고야는 반도전쟁 이후 나폴레옹의 몰락 소식을 듣고도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프란시스코 고야, 거인.


   그는 전쟁이 한창일 때 스페인의 미래를 위해 계몽운동에 가담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친프랑스파로 낙인된 적이 있었지요. 또 유명 화가였던 만큼 조세프의 초상화를 사실상 강제적으로 그린 적이 있었는데, 이 일 또한 씻을 수 없는 낙인으로 남았습니다. 고야는 '빼앗긴 들에 봄이 왔을 때도' 억울함과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붓은 화사함을 찾지 않고, 어둠과 암울함만 쫓게 됩니다. 그는 차츰 청력을 잃고, 평생을 알 수 없는 이명에 시달립니다. 고야는 '귀머거리의 집'을 산 후 외부인과 접촉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은둔형 외톨이가 된 채 두문불출하는 삶을 이어갑니다.


   그는 1820~1823년까지 최소한 4년에 걸쳐 이 집의 1층 식당과 2층 응접실 등 벽면에 열다섯 점 이상의 그림을 그립니다. 면적만 33제곱미터입니다.


   고야가 식당에 특별히 걸어둔 그림 중 하나가 바로 '거인'이라고 합니다. 


   그때 리바이어던이 있었다면 내 생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말그대로 '밥 먹듯' 이런 생각들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초상.


   한편 고야의 '거인'은 2000년대에 끊임없이 위작 논란이 일었습니다.


   고야의 작품이 아니라 그의 아들인 사비에르 고야(Javier Goya), 그의 조수 아센시오 훌리아에 의해 그려진 것 아니냐는 설은 한때 유력한 설로 굳어진 바도 있습니다. 영국의 더 타임스(The times) 인터넷판은 2009년 1월, 고야의 '거인'이 그의 손을 거친 그림이 아니라고 보도까지 했죠. 


   하지만 지금은 이 작품이 고야의 진품이라는 설이 더욱 유력합니다. 같은 해 스페인 대학과 다수의 전문가들이 그의 작품이 맞다고 인정하면서요. 근거는 그의 부인이 죽으며 남긴 재산 목록 중 이 작품이 포함돼 있다는 점, 당시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략으로 고통받는 이를 다룬 고야의 문헌과 해당 작품의 발상이 일치한다는 점 등에 따른 것입니다. 


   고야의 작품들은 대부분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있습니다.


   특히 그가 '귀머거리의 집'에서 그린 '검은 그림들' 연작은 프라도 미술관 내 한 전시실에 통째로 다 같이 전시돼 있으니, 다른 곳은 아니라도 이곳만은 가봐도 좋을 듯합니다.


   고야는 82살에 눈을 감습니다. 그는 매독에 걸렸는데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삶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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