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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Aug 26. 2020

'불멸'의 사랑 vs '불 붙은' 사랑?

<7.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베아타 베아트릭스'>

   불멸의 사랑이었을까요, 그저 불 붙은 사랑이었을까요. 그를 이해해야 할까요, 손가락질해야 할까요.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베아타 베아트릭스.


   그녀를 따라 눈을 감고 싶습니다. 목을 뒤로 젖히고, 손을 모아 무언가를 바라고 싶어집니다. 보는 내내 침을 꼴깍 넘기지도 못할 느낌이 드는 그림입니다. 


   공기가 떠다니는 소리가 들릴 듯합니다. 나지막히 기도문도 흘러나올 것 같습니다. 괜한 성스러움, 알 수 없는 아릿함이 흘러나옵니다. 


   환한 피부, 늘씬하고 우아한 몸 곡선, 길고 풍성한 붉은 머리…. 고전적 미인은 아니지만, 한 번 보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개성 있는 여인입니다. 그림 속 그녀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금빛 안개인지, 독한 모랫바람인지 모를 기운이 감쌉니다. 왼쪽에는 사랑의 신, 오른쪽에는 단테가 있습니다. 여릿한 붉은 새가 양귀비 꽃을 떨궈줍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28~1882)의 '베아타 베아트릭스'(1864~1870)입니다. 베아타는 '축복받은, 성스러운'을 뜻합니다. 베아트릭스는 '신곡'과 '새로운 인생'을 쓴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이상형이었던 베아트리체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단테 앞에 선 여자 모델은 엘리자베스 시달, 한때 그의 연인이었던 이였습니다. 


   이 그림에 반전이 있지요. 


   단테가 엘리자베스의 '축복받은' 모습을 그린 게 아니라 그녀가 양귀비 꽃에 취해 죽어가는 모습을 그렸다는 것입니다. 


   심장이 펄펄 뛰는, 손을 맞잡은 채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는 그림을 그려도 모자랄 판에 죽여버린다니요. 도대체 왜?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세상에. 정말 꿈이 아니었는가?" 단테는 동료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의 그림 '오필리아'(1840)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작품이 그만큼 대단했을까요. 그는 사실 그림 속 오필리아의 역할을 한 여성 모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평생 꿈속에서만 봐온 이상형이었지요. 그가 드디어 그만의 베아트리체를 찾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단테는 평생을 문학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애초 그의 아버지부터 550년전 단테가 쓴 신곡을 읽고, 너무 감명을 받은 나머지 아들 이름을 단테로 지을만큼 문학에 관심이 깊었습니다.  


   단테는 이것 또한 운명으로 보고, 신곡을 달달 외울만큼 거듭 읽었습니다. 스무살 때는 '새로운 인생'을 직접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가브리엘 단테 로세티'란 이름을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로 바꾸고, 급기야 운명의 베아트리체를 만나기 전까지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말그대로 단테에 푹 빠진 단테가 됐습니다. 그때쯤, 엘리자베스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테의 영원한 베아트리체가 될 것 같던 엘리자베스는 왜 그림 속에서 아편과도 같은 양귀비 꽃을 쥘 수밖에 없었을까요.


   당시 단테와 엘리자베스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면 열이면 열, 단테 탓을 했을 것입니다. 


   1850년, 단테는 가장 피끓는 20대 나이 때 엘리자베스를  만났습니다.


   단테는 당시 '자연에 충실한 예술로 돌아가자'는 말을 모토로 한 라파엘 전파의 수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때의 모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지요. 당시 유럽에선 돈은 없되 매력은 있는 여인이면 잡화점 앞에서 바람잡이 모델 일을 하곤 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 도중 라파엘 전파 사람들에게 '캐스팅'된 것입니다.


   단테는 그들간의 모임에서 엘리자베스를 본 후부터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와 노래, 편지 등 온갖 애정공세를 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단테의 뜻대로 동거를 하게 됩니다.


   사랑의 시작이자,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헨리 홀리데이, 피렌체 아르노 강변에서의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첫 만남.


   "오, 나의 리치."


   단테는 엘리자베스를 이러한 애칭으로 불렀지요. 엘리자베스는 '오직 단테만을 위한 모델이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단테의 굳건한 철학, 달리 말하면 꺾을 수 없는 고집 때문이었습니다.


   단테는 사랑을 지상의 사랑과 천상의 사랑으로 구분했습니다. 신곡 등 르네상스 시대의 문학에 젖은 인물이었으니 그리 이상하진 않습니다.


   그에게서 엘리자베스는 천상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상의 사랑은요? 엘리자베스가 알게 모르게 만난 숱한 외도 상대를 지상의 사랑으로 칭했습니다. 


   단테는 엘리자베스가 또 바람을 피우느냐고 질책할 때마다 "두 개의 사랑을 나눌 수밖에 없고, 내가 천상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듯 지상의 사랑도 내려놓을 수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고 하죠.


   단테는 그렇게 엘리자베스에게 수차례 이해를 구했지만, 그녀는 이를 받아들지이 못합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엘리자베스는 태어날 때부터 허약했습니다. 결핵을 지병으로 달고 다녔습니다. 단테의 이런 행동으로 인해 그의 상태는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엘리자베스는 단테를 만난 후부터 신경과민증에 시달렸습니다. 단테와 비교되는 볼품 없는 집안, 재산, 지적 소양 등은 그녀에게 불안감과 열등감을 안겨줬습니다. 단테가 이런 시달에게 이해하기 힘든 부탁까지 거듭 요청하니, 상태는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 만난 지 10년이 지난 후인 1960년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단테는 그 사이 '지상의 사랑'을 외치며 셀 수 없는 외도를 했었지요.


   그런 단테가 결국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은 것은 무슨 마음에 따른 것이었을까요. 엘리자베스가 최근 1~2년 사이 눈에 띄게 나빠지자 가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요. 어쨌든, 단테는 결혼 후에도 외도를 계속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약물에 의존하고, 두 사람 사이에 아이를 유산한 후에는 중독 증상까지 보입니다. 


   단테가 파니라는 매춘부 출신의 모델과 함께 있을 때, 엘리자베스는 생을 마감합니다. 결혼 2년 만입니다. 사인은 불면증에 따른 수면제 과다 복용이었습니다.




   단테는 자신을 비방하는 이들에게 말합니다.


   그녀를 알게된 후 그간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다만 너무 소중해, 감히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천상의 사랑'이었기에 외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입니다. 


   단테는 자신이 쓴 사랑의 시들을 엘리자베스의 관 속에 함께 넣습니다.


   그의 몸은 그 이후부터 급격히 쪼그라듭니다. 똑같은 불면증을 겪고, 마취제에 중독돼 망상에 시달립니다. 그가 '베아타 베아트릭스'를 그린 건 이때쯤이었습니다. 주변의 몇몇은 이 불후의 명작을 보고서야 단테의 마음을 믿어줬다지만… 단테는 곧 또 다시 사랑에 빠집니다. 그 대상은 그의 친구, 윌리엄 모리스의 아내였습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초상.


   결국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때만큼은 진심이었고, 떠난 사랑이 있으면 다가올 사랑도 있어야하는 것 아니겠느냐…. 단테의 말이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사랑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인가, 나는 그저 끊임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해명도 주변을 맴도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단테는 스스로 양심에 가책을 느낀 듯, 주변 사람들에게 이같은 말을 종종 했다고 합니다. 


   그를 순수한 사랑의 화신으로 봐야 할까요, 순진한 여인을 꾀인 인생의 파괴자로 봐야 할까요. 무엇보다 엘리자베스에게서 그 대답을 듣고 싶은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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