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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Oct 24. 2020

슬픔이여 안녕, 안녕!

<21. 프리다 칼로, '상처 입은 사슴'>

   "고통을 익사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 녀석은 내 안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웠다."


   프랑스의 여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아시나요. 이 문구 중 '안녕'이란 말이 사실 '굿~바이'가 아닌 '헬로'의 뜻을 안고 있다는 점 또한 알고 계실까요. 말 그대로 슬픔, 또 너로구나. 안녕?이란 체념 투의 말인 것입니다.


   고통이 얼마나 더 쌓여야 할까요. 찾아오는 고통에 대해 '오지마!'라고 하지 않고, 손 흔들며 인사하는 그 행동을 하려면 말입니다.


   이번 글의 콘셉트는 고통입니다. 그리고 그 콘셉트와 어울리는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입니다.



프리다 칼로, <상처 입은 사슴>, 캔버스에 유채, 30 x 22.4cm, 1946, 개인소장


   하나, 둘, 셋…. 일곱, 여덟, 아홉….사람 얼굴을 한, 정확히는 프리다 칼로의 얼굴을 한 사슴이 맞은 화살 갯수입니다. 얼핏, 울창한 숲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말라 비틀어진 고목들의 숲입니다. 어둡고 피폐합니다. 겨우 잎을 피운 나뭇가지는 힘없이 꺾여 땅바닥을 뒹구는 중입니다.


   애초 큰 꿈을 품고 숲을 일궜는데, 돌아오는 건 가뭄·지진·태풍이었을까요. 결국 성실한 일꾼도 '될대로 돼라'는 식으로 방치한 듯한 느낌입니다. 우호적인 것 하나 없습니다.


   사슴은 목과 등, 엉덩이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피가 뚝뚝 흐를만큼 깊은 상처입니다. 그런데 표정을 보니 고통·공포에 휩싸이긴커녕 되레 담담합니다. 피할 생각이 없었을까요. 처음 두어 발은 기를 쓰고 피하려고 했는데, 이내 체념 단계에 접어들고 만 걸까요. 어쨌든, 지금은 사냥꾼을 정면으로 쏘아보고 있습니다. '더 쏠거면 쏴라.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프리다 칼로의 '상처 입은 사슴'(1946)입니다. 그가 죽기 7년 전인 날입니다. 그는 왜 이같이 음침한, 그 이상의 기괴함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을까요.




   소아마비, 교통사고, 철심 수술, 3차례의 유산·불임….프리다 칼로는 슬픔에 젖은 삶을 살았습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신체·정신적 고통에 잠식돼 살았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특유의 투쟁력이 없었다면, 이미 스러져버렸을 그런 삶입니다.


   "일생동안 나는 심각한 사고를 두 번 당했다. 하나는 16살인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다. 두 번째 사고는 디에고다. 두 사고를 비교하면, 디에고에 치인 게 더 끔찍했다."


   칼로의 가장 큰 악몽은 디에고 리베라(1886~1957)에게 '치인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몸에 박힌 화살 대부분은 리베라가 날린 일격으로 봐도 되는 것입니다. 


   40살 리베라는 1927년 학생이던 19살 칼로를 만납니다. 리베라는 회고록을 통해 다음과 같이 칼로와의 첫 만남을 회상합니다. 


   "그녀의 태도는 얼핏 봐도 남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위엄과 자신감이 있었다. 눈동자는 야릇한 빛을 뿜었다. 그녀는 아직 어린아이처럼 귀여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꽤 성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당신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방해가 될까요. 내가 말했다. 꼬마 아가씨, 외려 영광입니다. 그녀는 몇 시간동안 말없이 나를 지켜봤다. 세 시간 쯤 흘렀을까. 그녀는 "안녕!"이란 인사를 한 후 떠났다. 그녀의 이름이 프리다 칼로란 것을 알게 된 때는 1년 후였다. 그녀가 내 아내가 될 줄은 몰랐다."


   두사람은 모두 불같은 성향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마치 운명이 정한 수순인양 1929년 칼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합니다. 이들의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문제는 리베라의 여성 편력이었습니다. 



프리다 칼로,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 캔버스에 유채, 100 x 79cm, 1931, 샌프란시스코 모던 아트 갤러리


   리베라는 애초 한 여자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칼로 또한 세 번째 신부였죠. 그는 이미 두 번째 신부를 맞은 상태에서 칼로와 사귀었습니다. 보통 내기가 아닌 겁니다. 그의 바람기는 명예·권력을 먹고 탐욕스럽게 살이 찝니다.


   "나의 평생 소원은 리베라와 사랑하며 사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리베라가 바람기를 완연히 내뿜을수록 더욱 집착했습니다. 칼로의 꿈 중 하나는 '혁명가'였습니다. 리베라는 멕시코 혁명 기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 정부의 초청을 받을 만큼 '거물 혁명가'로 크고 있었습니다.  칼로가 더욱 리베라에게 매력을 느끼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프리다 칼로, <우주와 지구, 나, 디에고, 그리고 애견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멕시코 시티 Collection of Jorge Contreras Chacel


   칼로는 리베라를 아이와 아버지, 신과 우상처럼 사랑했습니다. '우주와 지구, 나, 디에고, 그리고 애견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1949)입니다. 아이 형상의 디에고를 한 번, 두 번, 세 번, 대지에서 하늘, 우주의 힘을 끌어모아 품고 있습니다. 


   그런 칼로도 크게 휘청거린 일이 있었습니다. 고통이란 기름통에 흠뻑 빠지고선, 온 몸에 불이 붙은 것만 같은 고통을 겪어야 한 일입니다. 리베라의 불륜 상대 중 그녀와 가장 친한 사이였던 여동생 크리스티나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칼로는 하루 빨리 리베라의 아이를 임신하길 바랐습니다. 리베라의 바람기가 핏줄, 자기가 품어야 할 혈육이 있다면 잠잠해지길 기대한 겁니다. 크게 으스러진, 철심이 훑은 그 몸에 아이가 잘 잉태될 수 있을까요. 칼로는 세 번 유산합니다. 리베라에게 '칼로 몇 번 찔린' 칼로는 그제서야 이혼을 통보합니다. 결혼 10년차. 이미 지칠대로 지친 후였습니다.




   "발이 왜 필요하지? 내겐 날아다닐 날개가 있는데." (말년에 한쪽 다리를 절단한 후 일기장에 쓴 글)

 

  '욥' 이야기를 아시나요?


   성경을 보면, 욥은 선하고 독실한 신자로 나옵니다. 신은 그런 그에게서 돈, 명예, 가족을 모두 앗아갑니다. 그럼에도 신앙심을 잃지 않던 욥, 그는 자신의 몸에 부스럼이 생기는 것을 보고 이젠 건강까지 가져갈 셈이냐며 처음으로 신을 원망합니다. 그때 신은 욥에게 되레 호통을 칩니다. 나에 대한 믿음, 고작 그것 뿐이었느냐고 매섭게 소리칩니다. 참으로 고약한 시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칼로의 생은 그런 욥에 빗댈만 합니다. 고통의 꽃은 리베라를 만난 이후 더욱 만개했을 뿐입니다.


프리다 칼로, <부서진 기둥>, 캔버스에 유채, 30.6cm x 39.8cm, 1944, 멕시코 시티 돌로레스 올메도 박물관


   멕시코에서 태어난 칼로는 1913년 6살 때 척추성 소아마비를 앓습니다. 오른 다리가 왼 다리보다 눈에 띄게 얇고 가늘어졌지요. 더 큰 고통은 1925년 멕시코 국립 예비학교 학생이던 때 발생했습니다. 그녀는 9월의 어느 날, 또래 남자친구와 함께 본가인 코요아칸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전차와 충돌하고 만 것입니다. 철근과 깨진 유리조각이 사정없이 날아듭니다. 칼로의 왼 다리는 11곳 골절됐습니다. 오른 발은 탈골됐고 요추, 골반, 쇄골 등 부위는 으스러지고 맙니다. 하필이면 철근 한 줄기가 그녀의 허리를 관통합니다. 자궁까지 휘젓게 된 탓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게 됩니다. 그녀는 이 사고로 35번 수술을 받습니다. 결국 평생 하반신 마비 장애를 안습니다.


프리다 칼로, <헨리포드 병원>, 캔버스에 유채, 30.5 x 38cm, 1932, 멕시코시티 돌로레스 올메도 박물관


   흰 이마, 도발적인 눈매, 앙 다문 입술, 기이할 만큼 긴 목, 곡선으로 떨어지는 어깨, 몽환적인 표정과 꼿꼿한 자세. 칼로의 모든 아우라는 셀 수 없는 칼질 끝에 생긴 것입니다.


   칼로는 이런 고통보다도, 리베라가 안긴 고통을 더욱 깊고 처절하게 곱씹은 것입니다.

  


프라다 칼로, <두 사람의 프리다>, 캔버스에 유채, 173.5 x 173cm, 1939, 멕시코시티 현대 미술관


   "디에고, 탄생/디에고, 건설가/디에고, 나의 아이/디에고…나의 남편/디에고, 나의 어머니/디에고, 나의 아버지/디에고, 나의 아들/디에고, 나/디에고, 우주/통일 속 다양함/그런데 왜 나는 '나의 디에고'라 말하는가?/그는 결코 내 것이 아닌데, 그는 오직 그 자신의 것인데."


   칼로는 리베라와 등진 후 일탈을 시도합니다.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와의 열애설은 유명합니다. 리베라를 통해 알게 된 그에게 정력적 사랑을 쏟습니다. 직접 그린 '레온 트로츠키에게 헌정하는 자화상'을 연애 편지마냥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리베라와 칼로는 이혼한 바로 이듬해 재결합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서로를 애타게 밀어내다가도, 멀어지면 이내 다시 찾곤 하니까요. 이는 추억 때문일까요, 기대 때문일까요. 깨진 그릇은 도로 붙이려고 해도 자국이 있습니다. 서로는 그렇기에 더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 두 사람은, 특히 한 사람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리베라는 필사적으로 바람을 핍니다. 있는 힘을 다해 상처 입은 칼로에게 화살을 쏘고, 또 쏜 것입니다. 두 사람의 결말은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좋지 않았습니다.


   칼로는 리베라를 죽을 때까지 이해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증오합니다. 칼로는 1954년, 47살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리베라의 뜻을 좇아 한창 '혁명' 활동을 하던 중 폐렴이 생긴 것입니다. 그의 사인은 폐경색이었습니다.




   칼로는 죽기 전날 리베라를 만나 결혼 25주년을 기념해 사둔 반지를 쥐어줍니다. 운명을 예측한 걸까요. 이는 일종의 작별 의식처럼 읽혀집니다. 


   "행복한 외출이 되길.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않길."


   칼로의 마지막 일기장에 쓰인 문장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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