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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Oct 18. 2020

와, 걸작인데! 어? 쓰러진다…119 불러주세요

<속사정 특집 4 : 스탕달 신드롬>

조토, 성 프란체스코의 장례


   1817년, 소설가 스탕달(1783~1842)은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성당에서 기묘한 경험을 합니다. 조토(1267~1337)의 프레스코화를 보곤 그 예술성에 취해 강렬한 어지럼증을 느낀 것입니다.


 그는 이 그림을 본 후 상당 기간 환영과 불면증, 헛구역질 등의 후유증을 앓습니다. 훗날 자신의 이름이 붙는 '스탕달 신드롬'을 몸소 겪은 것입니다.


귀도 레니, 베아트리체 첸치


 스탕달이 다른 그림을 보고 비틀거렸다는 말도 있습니다.


 귀도 레니(1575~1642)의 작품 '베아트리체 첸치'입니다.


 베아트리체는 겁탈범인 아버지를 죽인 고작 16살의 소녀입니다. 귀도 레니는 사형장으로 가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그렸다고 합니다. 스탕달이 이 스토리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이 그림 앞에서 혼미함을 넘어 정신을 잃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스탕달 신드롬. 이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예술품을 봤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각종 정신 분열 증상을 말합니다. 대부분은 맥박 수가 필요 이상으로 빨라지는 증상, 식은 땀이 나고 팔다리에 힘이 풀리는 증상 등을 겪습니다. 사람의 성향, 작품의 주제에 따라 조증과 울증 등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감수성이 남다른 이들이 쉽게 겪는 이 증상은 안정제를 먹거나, 익숙한 환경을 되찾으면 나아집니다.


 "절정의 아름다움, 나는 천상의 희열을 맛보는 경지에 도달했다. 모든 게 살아 일어나듯 내 영혼에 말을 건넸다."
 "산타크로체성당을 떠나는 순간,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걷는 동안 그대로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스탕달은 이 증상을 이같이 메모했습니다. 그의 여행책 '나폴리와 피렌체, 밀라노에서 레조까지의 여행' 속 내용입니다.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한참 후였습니다. 1989년 이탈리아 출신 정신의학자인 그라지엘라 마르게니가 저서 '스탕달 신드롬'을 쓰면서, 지금의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다.

 



 유명인 중 스탕달 신드롬을 겪은 이는 또 누가 있을까요.


렘브란트, 유대인 신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대표적 인물입니다. 고흐는 188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립미술관을 찾습니다. 그 안에서 렘브란트(1606~1669)의 '유대인 신부'를 보곤, 그리고 싶은 그림을 드디어 찾았다며 눈물을 흘립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이 그림 앞을 떠나지 않습니다. 결국 문이 닫힐 때까지 서 있습니다. 이 앞에 앉아 2주일만 보낼 수 있다면, 내 수명 10년은 줄 수 있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면서요.




 소설 중에서도 스탕달 신드롬이 표현된 작품이 있습니다.


 위다(1839~1908)가 쓴 《플랜더스의 개》(1872)를 볼까요. 벨기에 플랜더스(플랑드르) 지방의 작은 마을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소년 네로, 그와 함께 우유가 담긴 수레를 끄는 늙은 개 파트라슈가 그려가는 소설이죠.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작품입니다.


 두 주인공의 최후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미술 재능을 타고난 네로는 재능을 꽃피우긴커녕 누명을 쓰고 버림받고 말죠.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곳은 마을 안 성모 대성당입니다. 그가 평생 보고 싶어 하던 그림,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십자가에 올려지는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가 걸려있는 곳입니다.


 네로와 파트라슈는 꼼짝 않고 누운 후 추위를 받아들였다. 갑자기 하얀 빛이 넓은 복도를 지나 흘러들어왔다. 꽉 찬 보름달 빛이다. 달빛은 둥근 천장을 넘어 루벤스의 두 그림을 두드렸다. 네로는 일어섰다. 그림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창백한 얼굴에서 기쁨에 찬 눈물이 반짝였다. "드디어 그림을 봤어. 오, 하느님. 이제 됐습니다!"


네로의 죽기 직전 마지막 말입니다.




 영화 중에는 아예 제목이 <스탕달 신드롬>(1996)인 작품도 있습니다.


 감독은 다리오 아르젠토, 주연은 그의 딸 아시아 아르젠토입니다. 여형사 안 나가 두 여성을 죽인 연쇄 살인범을 쫓습니다. 제보를 받고 온 곳은 피렌체의 미술관이었습니다. 그녀를 맞이한 건 범죄자가 아닌, 피터르 브뤼헐(1525~1569)의 작품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1560)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를 보고 충격에 휩싸여 쓰러집니다. 그 후 그녀의 삶은 스탕달 신드롬으로 인해 크게 달라지는데요. 어떤 이가 예술품을 보고 혼미해지는 일을 그린 영화는 이 밖에도 히치콕의 <사이코>(1960) 등이 있습니다.




 1979년, 피렌체 관광객에 대한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피렌체를 찾은 관광객 중 상당수가 스탕달 신드롬에 시달린다는 것입니다. 주로 20~40대, 나 홀로 여행자 혹은 2~5명 정도의 그룹 여행자들 사이에서 그 빈도가 높았습니다. 먼 이야기가 아닌,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두 번쯤은 겪어볼 만 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예술품을 보고 진심으로 감동했다는 데 대한 훈장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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