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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끼 Dec 04. 2021

칼을 든 괴한에게 대처하는 방법

진시황과 형가


 오늘은 안 긁히는 날이었다. 핑곗거리야 많지만 그냥 안 긁히는 날이었다고 치련다. 안 긁힌 기념으로 단상을 남기려 한다. 친구들과 이야기 중에 칼 든 괴한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확신에 차서 기둥을 두고 대치하여서 괴한이 다가오면 뺑뺑이를 돌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 방법의 오래된 기원을 얘기해보려 한다.


실제 사서와 검증해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쓰는 거라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 양해 바란다. 옛날 옛적 중국 전국시대에 ‘형가’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참 용감하고 의리도 있고 호방하고 여러므로 인물은 인물이었던 거 같은데 당시 연나라 태자와 깊은 교분을 맺었다고 한다. 이 우정이 생기는 과정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각설하고 당시는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시절이라 연나라 태자는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형가가 아마 태자한테 은혜를 입은 것도 있고 해서 진왕 영정을 죽여서 태자의 걱정을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양왕 시절부터 진의 국력은 이미 육국을 압도하였는데 영정을 죽인다고 해서 다 해결될 거 같지는 않다. 뒤에 나오겠지만 그래서 형가가 플랜을 두 개 짠 거였을 수도 있다.


옛날에는 항복의 의미로 지도를 바쳤다고 한다. 이 땅이 당신 거요 하는 상징적 의미도 있고 지도에는 나라의 각종 정보가 다 담길 테니 퍽 괜찮은 상징이다. 연나라 태자는 진나라에 항복 사신을 보내는 걸로 꾸며서 형가를 진나라 함양으로 보낸다. 형가가 연나라를 떠나 아마 그 강이 낙수였던가? 어느 강을 건널 때 시를 하나 지었는데 그 시가 중국사람이 정말 좋아해서 노래로도 많이 부른다고 한다.


함양 땅에 도착해서 진왕 영정 앞으로 나아가는데 사실 이게 얼마나 떨리는 일인가, 그냥 사신으로 가도 떨리는데 왕을 암살하러 가는 사신이라니 안 떨리는 게 이상하다. 형가는 좋게 말하면 호걸, 나쁘게 말하면 미친놈이라 긴장 안 하고 나아가는데 옆에 있던 사람은 긴장을 너무 해서 그런가 떨어서 나아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조금 의심을 샀지만 그렇게 긴장을 많이 하는 사신이 많았던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같이 온 사신은 두고 형가 혼자 진왕 앞에 나아가는데 가까이 가서 지도 속에 있던 칼을 꺼낸다. 여기서 바로 죽였으면 암살 성공! 이겠지만 형가는 그러지 않았다. 진짜로 플랜 B가 있었던지 칼을 진왕에게 들이밀고 이보쇼 연나라 땅 뺏은 거 다 내놓고 연나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오 하면서 막 칼을 들이밀었다. 사실 이게 웃긴 일인데 자객이 왕을 칼로 위협하며 받은 약속을 진짜로 지킬 거라 생각한 것이다. 현대인이 보면 형가 이 사람 참 멍청하겠다 생각하지만 실제로 춘추시대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고 놀랍게도 당시 위협받은 당사자 제환공은 약속을 지켰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거 없이 괘씸해서 바로 자객을 죽이려 했으나 관중의 조언을 받고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형가도 아마 이 사례를 참고했을듯한데 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는 너무 달랐다. 전국시대는 국가 간 총력전을 벌이는 시대인데 저런 약속을 지킬 리가 만무했다.


형가가 진왕을 칼로 위협하다가 환관이 물건을 던져서 형가의 시선을 끌었나? 뭐 어찌하다가 진왕이 기둥 뒤로 갔다. 그래서 형가가 쫓아가니 기둥을 두고 두 사람이 뺑뺑이를 도는 모습이 되었다. 상상해보면 좀 웃기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다들 의문이 들 것이다. 아니 왕이랑 자객이랑 저러고 있는데 다른 신하들은 뭐 하고 있는 거냐 근위병들은 다 뭐 하고 있는 거냐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진왕은 의심이 많아 자신 외에는 근위병 조차도 칼을 들고 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모든 신하들은 왕의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조차도 못했다고 하니 목숨이 위협받는 급박한 상황에서 진왕이 명령을 내릴 경황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니 신하들은 발만 동동 구르며 계속 훈수를 뒀다고 한다. 예를 들어 대왕 왼쪽으로 도세요, 오른쪽으로 피하세요. 가령 이런 식이다. 생각할수록 웃기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신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근처에 있는 물건을 던져 형가의 주의를 끌거나 진왕한테 훈수를 두는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이 상황에서 진왕은 칼을 차고 있었다. 그럼 바로 칼을 빼서 형가를 치면 될 것 아니냐라는 생각이 드는데 왕의 칼은 정말 길다. 사실 장식용이었을 것이고 진짜 뽑을 일이 드물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칼을 빼려고 해도 잘 나오지가 않았다. 물론 차분하게 집중해서 빼면 빠지기야 하겠지만 여러분 기억하시라 지금 진왕은 기둥을 두고 형가와 계속 뻉뺑이 도는 중이다. 그때 조고라는 환관이 말하길 “대왕, 칼을 등에 대고 뽑으십시오!” 진왕 영정이 그 말을 듣고 등에다 대고 장검을 뽑아 형가를 죽였다.


약간은 허무하게 끝났다. 진왕이 연나라를 멸하고 나서 연나라 태자가 도망갔는데 끝까지 쫓아가서 죽였다고 한다. 연나라 태자를 쫓아가 죽인 장수가 그 유명한 ‘이신’이다. 내용이 길어졌지만 여러분 혹시라도 칼을 든 괴한을 만나면 큰 기둥을 찾아서 대치하라! 계속 뺑뺑이 돌다 보면 기회는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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