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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욱 Jun 08. 2023

다이어트에서 해방되고 싶다

운동 가야지! 자기 요즘 배가 너무 나왔어! 아내의 계속된 잔소리가 모닝콜이 되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내 배가 어때서? 투덜거리며 마지못해 화장실 앞 체중계에 올라선다. 허걱. 체중계에 표시된 숫자에 내 눈을 의심했다. 1년 6개월 다이어트하며 두 자릿수 체중을 유지했는데 하루아침에 세 자리 수가 된 것이다. 비상이다.




55세. 이제 건강을 생각할 나이다. 아니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은 늦었다. 100세 인생을 행복하게 향유하려면 건강이 최고의 자산이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전부 잃는 것이다"라는 명언처럼 건강은 돈과 명예, 권력이 주는 단기적 쾌락이 아니라 인간이 행복한 삶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대체불가능한 행복의 조건이다



솔직히 55년 살아오면서 건강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청년 때부터 폐결핵 등 호흡기 질환으로 평생 약을 드시고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이 다양한 질환으로 고생하셨다. 반면, 어머니는 70세가 넘는 노년까지 적십자 등 봉사단체에서 일하시고, 공공기관에서 바리스타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실 만큼 건강하신 편이었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체육활동으로 팔이 부러져서 정형외과에서 수술하고 포경수술한 것 외에 병원에 입원한 기억은 없다. 특별히 질병으로 고생하거나 몸이 약하여 불편했던 기억은 없다. 전 국민의 80%가 걸렸다는 코로나 한번 감염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무말랭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큰 키에 홀쭉한 체형이었으며 군 제대할 때까지 188cm 장신에 몸무게가 70kg을 넘은 적이 없었다.




내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군 제대 후 복학하면서 아마도 20대 후반쯤으로 기억된다. 1980년 대 후반 내가 대학 다닐 때의 국가상황은 6.10 민주항쟁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세상을 비판하며 친구들과 잦은 술자리, 폭식 등으로 체중은 90kg까지 불었으며 1998년 결혼할 때는 100kg을 넘은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히 188cm 장신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크게 살이 찐 것 같이 보이지 않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켜 다이어트를 해야 되겠다는 필요성도 동기부여도 크지 않았다. 내가 살이 찌게 된 이유는 아내의 역할(?)도 한 몫했다. 전라도가 고향인 전업주부 아내는 외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집에서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연애시절 분위기 좋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썰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항상 처갓집에 있는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즉석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내의 가정적이고 알뜰한 면이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25년을 남편의 건강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살고 있지만 항상 싱싱한 재료로 건강식 밥상을 준비하는 아내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1994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하며 절제되지 못한 생활습관으로 체중은 점점 불기 시작하더니 결혼 20년 차에는 체중이 115kg까지 오르게 되었다. 당연히 건강상태는 안 좋아졌다. 혈압은 높아지고 몸은 피곤하며 삶이 무기력해졌다. 공무원 정기검진을 위해 혈압을 측정하는데 3회 연속 180이 나와 검진을 연기하는 사례까지 발생하였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몸을 방치하면 더 이상 안 되겠구나! 내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무너진다.라는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아내의 건강코칭에 무조건 순종하기로 했다. 각종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쥬비스 다이어트'라고 유명연예인들이 다이어트에 성공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먹으면서 살을 뺀다는 포인트가 매력적이었다. 퇴근 후 수원시청 옆에 있는 주비스 수원지점으로 달려갔다. 이것저것 테스트하고 최종 상담시간. 제일 중요한 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1개월 300만 원, 2개월 500만 원. 최소 10kg 감량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고민이 되었다. 공무원 박봉에 살 뺀다고 500만 원을 지출한다는 것은 보통 용기로는 불가능한 결정이었다. 깨끗이 포기했다. 나의 장점이다.




이가 아니면 잇몸으로 버틴다. 다이어트는 해야 하겠고 돈은 없고.. 고민 끝에 아내의 친구가 다니는 다국적 기업 프로그램에 문의하기 시작했다. 비용은 200만 원대이고 매니저가 방문해서 관리하며 핸드폰 앱으로도 상시 모니터링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아내와 상의 끝에 혹독한 다이어트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다이어트를 수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에는 내 인생 마지막 다이어트라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과 규칙적인 운동.. 살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두 자릿수 몸무게도 가능할 것 같았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드디어 두 자릿수 몸무게에 성공했다. 99kg. 체중계 숫자를 보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다이어트시작 전 105kg이었으니 4개월에 6kg이 빠진 것이다. 욕심이 생겼다. 그래 해보자. 살 빼고 혈압약 끊고, 멋진 슈트도 입고, 프로필 사진 한번 멋지게 찍자!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혹독한 다이어트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8개월 기간이 지나자 90Kg까지 체중이 빠졌다. 몸은 가벼워졌고 혈압약도 끊었다. 사람들을 만나는데 자신감이 생겼다. 항상 쿠팡에서 보던 빅사이즈 코너에서 일반상품으로 눈길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90kg까지 감량에 성공하자 이제 더 이상 빼지 말고 현 수준을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신은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다행히도 다이어트를 시행한 기간이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라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많지 않았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퇴근 후에는 집에서 생활하는 일이 많았다. 당연히 술자리가 줄어들었고 먹을 기회가 줄어들었다. 정 먹고 싶을 때면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었으나 군기반장 아내의 레이더 감시망을 피할 수는 없었다. 2023년 새해가 되면서 코로나에 따른 정부의 규제가 완화되기 시작했다. 족쇄와 같던 사회적 거리 두기는 해제되었고 동창회, 직장모임, 향우회 각종 모임에 출석하였다. 즐거웠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이처럼 좋았던 일이었던가? 부어라! 마셔라!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많아졌고 음식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맛있는 음식은 즉시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은 음식을 먹는 이상의 만족감을 선물하였다. 이 글을 쓰기 1주일 전 핸드폰 갤러리를 검색해 보니 온통 음식 사진이다. 이 베리안 돼지고기, 부대찌개, 한정식, 양꼬치, 애슐리... 살이 안 찌는 게 이상할 정도의 음식들이다. 지금 보니 또다시 식욕이 충만해진다.




체중계 숫자를 보니 현타가 온다. 이제 어쩌지? 몽둥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이 크다. 더 이상 안 되겠다. 다시 허리끈을 동여매기로 결심했다. 음식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본다. 7월 중순 직장에서 지원하는 종합건강검진이 예정되어 있다. 멋진 소방관 몸짱 사진을 냉장고에 부착하며 마인드컨트롤한다.  언제쯤 다이어트의 굴레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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