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수해복구 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 순직사건 수사를 두고 해병대와 국방부 기싸움이 진흙탕으로 빠져들고 있다.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고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지 1개월이 넘었는데 해병대가 자체조사한 수사결과보고서를 놓고 해병대수사단장은 '외압'을, 상급기관 국방부는 수사단장의 '항명' 프레임으로 대립하고 있다. 군 조직 내부 갈등상황이라 다른 정부기관 갈등처럼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언론보도에서 접한 사건개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해병대 장병이 수해복구 과정에서 안전장비 미착용 등 군 당국의 안전조치 미흡조치로 사망하였다. 해병대사령관, 국방부장관 등 지휘책임자들은 사건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겠다고 공언한다. 소속부대인 해병대는 자체 수사기구인 해병대수사단에서 수해복구 작전과정에서 지휘체계와 안전관리 준수 여부 등을 군검찰과 공조하여 1개월가량 수사한다.
해병대수사단장(대령)은 수사결과를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에게 2일에 걸쳐 직접 대면보고하고 장관은 간단한 질의답변 후 해병대수사보고서에 자필로 결재한다. 장관이 보고 받고 결재하는 자리에는 국방부장관 참모 등 여러 명이 배석하여 당시 보고 및 결재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해병대수사단장은 결재가 완료되고 전 국민의 관심이 큰 사건인 만큼 다음 날 언론브리핑으로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상급기관의 브리핑 취소 요구로 브리핑을 취소하고 해병대수사결과보고를 법령에 따른 수사기관인 경찰에 이첩한다. 공직 내부 일반적인 의사결정과정이고 사건처리과정으로 보인다. 특별한 문제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문제의 소지가 싹트기 시작한다.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해병대수사단장에게 수차례 전화하여 국방부장관 결재가 완료된 해병대수사결과보고서 내용에 대해 재검토를 요구한다. 순직사건 당시 지휘체계 최고상급자인 해병대 1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를 보고서에 적시하지 말고(대대장급 2명의 혐의는 적시) 사실관계만 수사보고서에 기재하라는 것이다. 해병대 수사단장은 법무관리관의 전화통화를 수사에 대한 외압으로 판단하여 법무관리관 요청을 거절하고 해병대 수사보고서를 경찰에 이첩한다. 국방부가 해병대수사단장의 행위를 항명으로 보는 지점은 바로 수사결과보고서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하였음에도 해병대수사단장이 이를 강행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이후 수사단장 혐의는 '집단항명 수괴'에서 '항명'으로 완화되었다.
이후 국방부는 해병대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수사결과보고서를 회수하고 수사결과보고서 법률검토를 시작한다. 국방부 재검토 결과 당초 해병대수사단이 언급한 해병대 1 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는 해병대수사결과보고서에서 삭제되었고 국방부가 수정한 수사결과보고서를 경찰에 이첩한다. 다만, 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는 빠졌지만 대대장 2명의 혐의는 적시되어 있다. 해석에 따라서는 해병대가 적시한 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가 국방부 재조사 결과 사단장의 지휘책임은 빠지고 사단장의 책임을 부하직원인 대대장 2명이 안고 가는 상황처럼 보인다. 국방부의 해병대 수사 축소, 외압 의혹 주장이 나오는 지점이다. 결국 신변에 위협(?)을 감지한 대대장(변호인)은 '직권남용'과 '과실치사' 혐의로 상급자인 사단장을 직접 고발하였다.
사건을 최종 정리하면 해병대수사단이 수사결과를 국방부장관에 대면보고하였고 정상적으로 장관 결재가 완료되었음에도, 국방부장관 참모의 요청으로 결재를 한 국방부에서 수사결과보고서를 재검토하고 수사를 총괄한 해병대수사단장이 징계를 받는 이상야릇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군 조직 내부에서 대대장이 상급자인 사단장을 직접 경찰에 고발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였다. 군법을 모르고 조직내부 의사결정을 모르는 삼척동자도 현재의 해병대 수사상황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 국군을 통솔하고 지휘하는 최고 국방조직 국방부와 막강한 전투력으로 실전에서 승리를 쟁취해야 할 전투부대 해병대가 한 몸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법리적 논리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명령과 복종, 위계질서가 생명인 군대에서, 국방부장관은 국회에서 결재에 신중하지 못했다고 자인하는 상황을 국민들은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국방부장관의 판단과 결정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사안임에도 결재 번복의 당위성만 설명할 뿐 장관 본인의 책임을 소홀히 하는 모습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동안 대한민국 정부조직 내 파워게임은 많이 보고 학습하여서 솔직히 특별한 감각이 없다. 검찰 VS 경찰, 법무부 VS 검찰, 중앙선관위 VS 감사원, 감사원 VS 국민권익위원회 등 대한민국 정부조직 내 파워게임의 행태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행정학(정책학) 박사 논문 주제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일반적 국가기관의 파워게임과는 차원이 다르다. 군대라는 조직이 갖고 있는 영향력과 지배력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충분히 학습하였기 때문이다. 5.16 군사쿠데타. 하나회, 12.12사태, 5.18. 광주민주화운동.. 대한민국의 굴곡진 현대사에는 군이 국가와 사회적 혼란의 중심에 있던 역사적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이 과거의 사례와 비교할 만큼 위험한 수준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인 군 조직에서 불필요한 갈등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군 조직은 일사불란한 지휘보고체계 및 명령수행체계가 유지되고 가동되어야 한다. 국방부장관이 장병의 순직사건에 대해 재발방지대책을 신중히 검토하하고 지시하였음에도 신중히 판단하지 않고 결재를 번복했다는 발언, 소속장관의 결재사실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수사기관 책임자에게 전화하여 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행위, 상급기관이 수사보고서의 경찰이첩 보류를 지시했음에도 본인의 판단으로 이첩을 강행하고 사전승인 없는 방송출연으로 군의 신뢰를 실추한 해병대수사단장은 각자 할 말이 많겠지만 현재의 상황을 유발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공직생활 25년 중 7년 정도 기간을 광역지방자치단체 감사(조사) 부서에서 공직기강 감찰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다. 당시는 6급, 7급 혈기 왕성한 시절이고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의지가 강하여서 시군, 공공기관 암행감찰하며 상당한 실적(?)을 올렸던 기억이 있다. 당시 경기도지사는 김문수 지사로 "청렴영생" "부패즉사"라는 슬로우건을 도정철학으로 내세우던 시절이었다. 마치 어사 박문수로 빙의하여 경기도 내 비위공무원 색출을 위한 감찰활동을 열심히 하였고 그 결과 행안부장관, 대통령 표창도 받고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힘든 것은 감찰이 아니라 그 이후의 순간이었다. 현장에서 비위행위를 적발하고 조사보고서를 쓰는 순간이면 실무자인 나는 혐의자 비위행위를 최대한 노출시키려 하였다. 숲을 보기보다 나무를 보는 식이었다. 반면 팀장, 과장, 국장 보고를 올라가면 내가 주장한 징계양정보다 경미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밤새 술을 마시고 며칠 쉬고 또다시 조사보고서를 쓰는 힘든 시절이 있었다. 당시 지자체 공무원의 비위유형은 대부분 금품수수, 음주운전, 성비위 등 정형화된 사건들이었지만 관련규정에는 비위의 동기, 행태에 따라 징계양정이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하물며,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의 순직사건 수사에서 해병대수사단의 수사에 대한 부담감은 그 깊이와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경험칙상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위계질서가 강한 군조직에서 상급자를 수사하고 조사하며 처벌하는 것은 조직의 위계질서 유지, 조직의 존립과도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금번 해병대수사단장의 진실을 밝히려는 결연한 수사의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상당한 신뢰감, 존경감을 표현하는 바이다. 다만, 해병대수사단장 개인의 의지만으로 거대 공룡조직 국방부를 상대로 수사결과의 정당성을 피력하려면 완벽한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하나 이를 지키지 못한 부분이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고 채수근 상병이 순직한 지 1개월이 지났다. 사건의 전말을 해결할 열쇠는 해병대, 국방부의 손을 거쳐 이제 경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경찰이 사건의 전말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한계를 밝혀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국방부와 해병대는 금번 수사과정에서 노출된 미흡한 조직내부 의사결정 시스템과 조직의 갈등을 조속히 치유하여 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조직의 역량을 총집결해야 할 것이다.
국방부의 수사 외압, 해병대의 항명... 참 듣기 거북한 말이다. 빨리 사건이 명쾌하게 해결되길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