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싶다.

2월을 보내며

by 영진


2월을 보내고 있다. 해가 바뀌고 이것저것 읽기는 했으나 딱히 어느 한 권을 집어 글을 쓰기에 상황이 영 그랬다. 사는 게 어찌 기계 같을 수 있겠는가. 일련의 동작을 반복하는 그 무엇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기계를 비유로 쓰지 못할 수도 있을 테니 저 표현도 맞을까 싶기는 한 시절이다. (하긴 이제 AI니 피지컬 AI니 이것들이 같은 동작만 반복하는 것을 넘어 배우고 적응한다면 현상만으로는 인간과 로봇을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AI를 기계에 포함한다면 저런 농 섞인 비유도 이젠 사라지겠다 싶은 시절)


어쨌든 뭐 2월에 여행도 다녀왔고, 책도 읽었는데, 심신이 복잡하다. 그냥 평화의 시절을 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말밖에.


사정은 이러하다. 해가 바뀌는 거야 내가 정한 것이 아니니,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닌 듯하여 혼자 제주도를 갔다. 한라산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아 운동 삼아 다녀오고, 그렇게 간 김에 발길 닿는 대로 하루 이틀 다녀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성판악으로 해서 올라갔다 오기로 하고, 제주도로 간 다음날 새벽에 산을 올랐다. 산에 오르기 전에 한라산공원 측에서 안내 문자가 왔다. 진달래 대피소까지만 개방되고 대피소에서 정상까지는 통제된다고 하였다.





대피소에서 가족과 카톡을 주고받았고, 다들 정상까지 못 오르니 아쉽겠다는 말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아쉬움이 크진 않았다. 원래 등산을 하더라도 정상에 오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능선 따라 있는 길 따라 걷던가, 숨이 좀 덜 차면 살짝 뛰곤 하는 게 내 정서다. 그러니 여기서 그 기준이 달라지진 않았던가 보다. 그러고 내려오니 점심시간 전에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했다. 눈 내리는 날 등산이 쉽지 않았음을 경험한 난 허기진 배를 달래려고 멀지 않은 고기국수 집에서 배를 채웠다. 그러고 4·3 평화기념관으로 갔다.



가족들과 제주도로 여행 올 때는 차마 이곳을 가야겠는 생각을 못 했다. 몇 해 전 왔을 때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라 엄두도 못 냈는데, 이번에 한라산 등산 예약을 하고 식당을 찾던 차에 성판악 근처에서 이 기념관이 멀지 않았음을 알았다. 4·3은 잘 알려진 대로 시대적 사건이고 아픔이다. 갈등의 증폭이 결국 사달이 난 것이다. 기념관을 둘러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생각에 사진 찍을 생각이 나질 않았다. 기념관 입구에서 찍은 상징 설치물과 로비 사진이 전부이다.




학살이 일어나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을까 상상한 것이 현실이 된다. 피해자는 분해되고, 가해자도 결코 온전치 못하다. 그저 저 사건이 내가 사는 동안 경험하지 않기를 바랄 뿐. 누구나 경험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 것이다. 어렸을 때 충격적으로 경험한 장면은 평생을 간다. 개인마다 그 계기가 다를 뿐. 누구는 시골에서 동네 사람들이 닭을 잡을 때, 누구는 학창 시절 생물 시간에 만난 개구리, 누구의 ( ) 안에 그 장면, 그 순간. 아, 계속 이미지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저 비극적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에겐 괄호가 사람으로 채워졌을 거라 생각하면 그다음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진다.



그러고 돌아와서 2월 중순부터, 신간 두 권을 읽었다. <천국의 가을>, <대만 박물관 산책>


『천국의 가을』, (지은이) 스티븐 플랫, (옮긴이) 임태홍, 글항아리, 2026-01-05.

『대만 박물관 산책』, (지은이) 류영하, 해피북미디어, 2026-01-09.


<천국의 가을>은 1월부터 읽고 있었고, <대만 박물관 산책>은 다녀와서 읽기 시작했다. <천국의 가을>은 태평천국(1850~1868) 이야기다. 홍수전이 꿈을 꾸고 나서 기독교 사상으로 청나라에 저항한 운동이다. 학창 시절 세계사에서 들어보고, 한창 홍콩 영화들이 많이 들어올 때 배경으로 나와 들어보고 대학교에서 교양시간에 마주했던 정도였다. 태평천국 이야기를 여기서 장황하게 나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읽다 보니 접한 전쟁의 잔혹함이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 보통 교양수업이나 그런 얌전한 곳에선 이 전쟁의 피해 규모나 잔혹함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듯하다. 일단 규모 면에서 처참함을 접할 수 있다. 대략 보수적으로 잡아도 2000만 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본다. 크게 잡은 통계는 7,8000만 명까지 이른다.(626쪽) 당시 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었던 듯한데, 대략 전투에서 직접적으로 전사한 군인과 처형당한 사람, 약탈과 학살로 희생된 민간인들, 질병에 희생된 사람들을 보고하거나 기록한 것에서 추린 듯하다.



그리고 대략 200년 전이라고는 하나 그 참혹함과 잔인함이 상당하다. 책에 나온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면 청나라 군대가 태평천국군이 점령하고 있던 안칭이라는 도시를 차지했다. 식량부족으로 태평천국군이 도시전투 후반에 항복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항복한 포로가 8000명인데, 이 전부가 참수당했다. 당시 부대의 장은 증국번의 동생 증국전이었고, 그는 고민 끝에 대략 십여 명씩 데리고 나와 참수하자는 지휘관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 참수는 "아침 7시에 시작해서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직후 등불 아래서 끝났다."(387-388)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반란군이라 살려두는 것이 불가능한 게 당시 저 지역의 감수성이고, 법도였나 보다. 2000만 명이 희생됐으면 전투가 여기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니 잡힌 사람들과 점령된 마을은 어찌 됐겠나. 약탈, 방화, 강간, 노인과 어린아이 산모도 가리지 않았다.



며칠 전 4·3 평화기념관에서 관람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규모 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떠올리다가 멈추었다. 제주 4·3의 희생자는 대략 1만 5000여 명인데, 그들에게 벌어진 것에서 나온 아픈 장면들도 편안하지 않았는데, 그걸 확대해 생각하려니 그냥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 태평천국의 지도자인 홍수전은 1864년 난징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그렇다. 대략 60여 년 뒤의 그 난징이다. 중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잔인함을 보였다는 그곳. 일본군만 잔인한 것 아니었구나. 청군도 태평천국군도 한국군도 북한군도 미군도. 모두 전쟁에 휘말리면 답이 없다.



<대만 박물관 산책>.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여기서도 아픔과 잔인함은 있었다. 대만의 여러 박물관을 소개해 놓은 류영하 선생의 신간이다. 난 대만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맛있는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봤고, 기회가 되면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책도 찾아보자" 해서 찾았는데, 마침 <대만 박물관 산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홍콩과 대만에 관해 여러 방면으로 연구하신 선생이신데, 이전에 홍콩에 대해 알아보려다가 이 선생 책을 몇 권 읽었던 차에 알고 있었는데, 신간이 나왔던 것이다.



대만에 소재한 박물관들을 소개해 주는 책인데, 박물관과 관련해서 읽을 수 있는 대만의 정체성, 대만이라는 곳의 다양한 측면들을 서술해 준 것이다. 그런데 박물관하면 보통 역사적인 측면을 담고 있는 곳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역시 대만에서도 아픔은 있었다. 대만이란 곳은 다양한 집단들이 살았고, 유입된 그런 섬이다. 여러 충돌이 있었고, 그중에 2·28 사건이 있었다. 국민당 정부가 공산당에게 패배하고 있던 시기에 대만에서 국민당 정권이 일본의 항복 이후 대만을 차지하고 당시 먼저 살고 있던 사람들의 터전에 간섭하면서 일어났다. 국민당 정권이 대만에 자리 잡은 후 몇 가지 품목을 독점해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그전부터 팔던 담배를 못 팔게 단속하면서 희생자가 나왔고, 그동안 섬에 먼저 살던 사람들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충돌이 커졌고, 먼저 살던 사람들의 희생이 크게 나왔다.(368) 대략 18000~2800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압은 국민당 군경이 동원됐고, 무자비했다. 대략 4·3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시대도 그러하다. 사건은 1947년에 발생했다. 제주 4·3도 1947년이다. 둘 다 냉전 진영 대립과 원거주민 학살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박물관 관련 책이라 학살 피해를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았지만, 4·3이나 태평천국이나 난징이나 다를 게 있나 싶었다.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처형, 참수, 강탈, 고문, 강간, 방화. 암매장.



2월은 길 따라갔는데 슬픔이 있었고, 잡히는 대로 읽었는데 아픔이 나왔다.


정의로운 전쟁이라면서 누군가는 시작하겠지만, 희생자들 앞에 전쟁은 정의롭지 않다. 역사적이거나 인류학적으로 전쟁이 가져온 장점도 있다고는 하나 누가 그 장점을 얻고자 자신을 희생하겠나. 전쟁으로 정의를 얻겠다고 한 자는, 그렇게 원하는 그대들이 맨 앞에서 서고, 그 앞에 그대들의 자식들을 세워라.



긴장이라는 상태 자체가 평화일 수 있다는 말을 <대만 박물관 산책>의 저자는 말한다. 백번 옳고 옳은 말이다. 언제 지구에서 하나였던 공동체가 있었단 말인가. 세상은 온통 경계였고, 그 변화하는 경계에서 안 싸우면서 요리조리 잘 지나 다니는 것이 지혜였다. 난 이 평화 속에서 나의 가족과 지인들이 태어나고 천수를 누리고 잠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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