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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림 Jul 30. 2021

한여름의 수박주스

엄마의피땀 눈물

다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인 여름이다.

덥고 끈적하고 습한 날씨의 여름을 무척이나 싫어하는데 이렇게 어김없이 찌는듯한 여름이 되면 항상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바로 수박주스.


여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과일인 수박을 갈아 만든 주스인데 카페를 운영할 당시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수박주스가 효자메뉴로 등극하기까지는 뒤에서 숨은 노력이 필요했다. 수박을 주스로 만든다는 게 말로 들으면 굉장히 간단해 보이지만 제품을 상품으로 판매할 때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잘 익은 수박을 골라 반으로 쪼개면 수도 없이 많은 씨가 보인다. 집에서 먹는 거라면 대충 눈에 보이는 씨를 몇 개 골라내고 또 한입 베어 물고 먹다가 입안에 걸리는 씨들은 호도독 뱉어내면 그만이겠지만 돈을 받고 판매하는 제품은 그렇게 대충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수박주스를 마실 때 씨가 씹히는 것은 용납이 안된다.)

그렇다면 좋은 상품이 되기 위해 수박의 씨를 발라내는 작업이 필요한데 하루 종일 혼자 카페에 붙어있으면 씨 바르는 작업을 할 틈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작업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수박씨를 하나하나 발라낸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수박을 반으로 쪼갯을때 켜켜이 쌓여있어 수를 가늠하기 조차 어려운 그 많은 씨를 발라내다 보면 아무리 수박씨를 발라내는 스킬이 쌓였다한들 정말 욕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기도 한다.

이토록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작업을 나의 구원투수 엄마가 항상 해주었다. 처음에는 카페를 마감하고 나서 내가 작업을 했지만 일을 마친 후 온몸이 녹초가 되어서는 또 주방에 서서 작업을 하는 나를 보고는 엄마가 씨 바르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본인이 해주겠다고 해서 이 작업은 여름 내내 오롯이 엄마의 몫이 되었다. 게다가 수박 한두 통 작업해서 매장에 가져가면 금방 동이 나기 일쑤라(수박주스 한 컵에 수박을 정말 넉넉히 넣어드렸다)  수박주스를 마시러 일부러 발걸음을 한 손님들께 다 떨어졌다는 죄송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작업해주기 시작하면서 작업해둔 수박이 동이 날 것 같으면 잽싸게 엄마한테 연락을 했고 그러면 엄마는 집에서 수박씨 바르는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을 마치면 그것을 이고 지고는 빠르게 카페까지 가져다주었다.(집과 카페가 가까워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수박주스가 시작되는 시즌이면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성당 피정, 기도모임 등)을 포기하고 매일 나의 연락을 기다리며 여름을 보낸 우리 엄마. 이따금 방문하는 손님들마다 수박주스만 계속 찾아서 수박이 빠르게 소진되는 날에는 하루에 두 번 작업을 해야하는 엄마에게 미안해하며 연락을 해도 늘 웃으며 많이 나가서 좋다고 말하던 엄마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엄마도 좋은 마음으로 수박 작업을 본인이 하겠다고 말했지만 분명하기 싫고 하기 힘든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더운 여름 마트에서 그 무겁고 큰 수박을 사는것 부터 또 실리콘 장갑을 끼고 그 큰 수박과 씨름하며 매일매일 빠짐없이 땀을 흘리고 수박씨를 발라내는 작업을 어느 누가 하고 싶을까? 뿐만아니라 작업 후 나오는 수박껍질 쓰레기 하며 끈적한 국물은 또 어떻고. 그저 오로지 당신의 딸인 나를 위해 모든 걸 감내했을 뿐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오죽하면 카페를 그만둘 때 엄마가 나에게 처음 한 말은 엄마 이제 여름에 수박 안 날라도 되겠네! 해방이다! 였다. 


카페를 그만둔 지금도 여름철이면 간간히 수박주스가 그립다며 메시지를 주시는 손님들이 있다. 엄마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아직까지도 기억해주는 손님들을 통해 느끼고 있다. 


나의 뜨거운 여름은 늘 차가운 수박주스로 기억될 것 같다. 엄마의 정성과 함께


여름철 엄마에게 날아온 사진 한 장. 수박 작업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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