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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림 Jun 23. 2022

비가 멈추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비 오는 날의 손님들


사계절 중 싫어하는 계절을 고르라면 여름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여름이라면 끔찍하게 싫어하는 알아주는 여름 헤이터인데 게다가 (서울 기준) 오늘처럼 비가 억수로 내린다? 그러면 그날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여름날이 완성된다.

비 오는 날이 싫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정말 사소하지만 발이 젖는다는 이유가 가장 큰데 무얼 신어도 비에 젖어 양말까지 젖어드는 그 찝찝함을 참을 수가 없다. 그러면 쪼리를 신으면 그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쪼리는 너무 미끄럽기도 하고 쪼리를 신고 회사에 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나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비 오는 날은 밖에 나가지 않는 쪽을 택하곤 한다. 폭우가 내려도 집에서 바라보는 비는 얼마나 좋게요?


매장을 운영할 때에 이렇게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이면 매장 출근을 하기도 전에 사장인 나조차 나가기가 싫어진다. 이런 날은 매출은 포기하고 그저 가게를 지키고 앉아있는 강아지의 마음으로 출근을 한다. 사실 이런 날 누가 오겠냐며 가게 문을 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무척이나 크지만 그래도 정해진 오픈 날짜와 시간은 꼭 지키자는 나 혼자만의 철칙이 있어 억지로 억지로 나가서 매장을 지키고 있으면 거짓말처럼 이 폭우를 뚫고 와주시는 손님들이 있다. 그럼 그렇지 이 날씨에 누가와~ 하고 반쯤 포기한 채 카운터에 앉아있다가도 유리문을 열고 손님들이 들어올 때면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에게 꼬리가 달려있다면 헬리콥터 못지않게 파다다닥 돌아갔을 거다. 매출도 매출이지만 텅 빈 홀을 바라보며 공허하게 울리는 음악과 윙윙 돌아가는 에어컨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얼마나 외로운지 아무도 모를 거다. 특히 나는 비를 싫어하고 비 내리는날의 외출을 극도로 꺼려하는 사람이라 이런 날 찾아주지 않는 손님들이 밉기는커녕 이런 날씨에는 나오지 않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그 텅 빈 홀을 홀로 오도카니 지키다가도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주는 손님들이 신기하기도 했고 너무나 고마웠다. 나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커피가 필요해서 왔음을 알면서도 마치 나 때문에 이 험한 길을 발걸음 한 것이라 믿고 싶을 만큼 이토록 반가운 마음이라니.

매장에 오는 모든 손님들이 귀하지만 이런 날 찾아주는 손님들에게는 더 잘하고 싶었다. 궂은 날씨에 옷도 신발도 다 젖어 축축해진 몸과 마음을 내가 보상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더욱 정성껏 커피를 내리고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쓰게 된다. 항상 셔플 모드로 틀어놓는 매장 음악도 눈치껏 날씨와 어울리는 음악이 시작되어 완벽하게 비와 어울리는 공간을 선사하고 싶었다.

조금 오버스러울지 몰라도 내가 비를 싫어하기에 가능한 이해와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매장을 그만두고 비가 쏟아졌던 날이 한두날도 아닌데 오늘따라 매장 검정 어닝 밑에서 우산을 접고 유리문을 열고 비에 조금 젖은 채 발그레한 얼굴로 안녕하세요, 했던 그 모습들이 문득 생각이 나는 밤이다.







인스타그램에 위의 내용을 압축해서 예전 카페 사진과 함께 글을 게재했고  밑으로 주르륵 달린 댓글을 보니 카페 솔림이 각자의 기억에 아직까지 예쁘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 다시 한번 뭉클하고 감사한 .

이토록 퍼붓는 비가 싫지만은 않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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