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다니기 전으로 기억하는 어릴 적 흰긴수염고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나이답게 한참 공룡에 심취해 있었을 때였다. 바다에 살지만 물고기는 아니라는 말이 무슨 소린지 이해도 되기 전에 접한 다큐였다. 15m가량인 티라노사우르스보다 두 배는 넘게 크고 공룡 중에서도 가장 크다는 브라키오사우르스보다도 크다는 신비의 동물.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가 9층이었는데 세워놓으면 10층 높이는 된다는, 상상으로도 구현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그 동물이 심지어 지금도 살아서 바다에 떠다닌다니. 화면 가운데에 커다란 배가 떠 있는데, 그 옆 푸르던 바다색이 검게 물들기 시작한다. 카메라가 점점 줌아웃이 되더니, 거대했던 배가 점이 될 정도의 넓이로 바다가 검게 물든다. 배를 한참 지나 고래가 떠오른다. 달 같은 눈이 나를 본다. 마치 검은 섬이 솟아오르는 느낌. 돌고래처럼 경박스럽지 않은 그 무게감에는 엄숙함마저 감돌았다. 천천히 부양한 그 존재감은 우주 같았다. 어떤 카메라로도 전체를 담을 수 없는 (그때 드론이 있을 리 만무) 그 압도적인 존재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이후로 마음이 지칠 땐 어쩐지 그 고래의 모습이 종종 마음속에 떠올랐다. 흰긴수염고래는 애써 헤엄치기보다 유유히 부유한다. 잔파도나 다른 고기들로 인해 흔들리지 않고 그 자신 그대로 존재한다. 숨을 들이쉬듯 마신 바닷물을 다시 내뱉을 때 수염에 남는 크릴새우 만큼만을 먹고 사는데, 그럼에도 각박하고 치열한 어느 물고기보다도 고요하다. 고래를 떠올리다 보면,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이성적으로 풀어쓰긴 어렵지만 그런 게 인생이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시간 들이 좋았다. 삶의 고민과 아픔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속을 부유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말로 정리되진 않지만 느낌으로 전해졌다. 평온했다. . . . 나는 어떤 정신과 의사를 꿈꾸는가. 바라건대 나를 찾는 이들에게 그런 고래 같은 존재면 좋겠다. 빚을 대신 갚아주거나, 소송을 대신 해결해 주거나, 과거로 돌아가 지우고픈 기억을 삭제해 주거나, 그럴 수는 없겠지만 삶이 먹먹해지는 순간에는 어쩐지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런 느낌. 나눴던 대화와 진심이 그러한 순간에 마음속으로 왠지 모르게 떠오르고 그 기억이 일상을 이어가는 힘이 되는, 그런 느낌을 전할 수 있는 의사가. 아주 특색있다면 특색이 있고, 아무런 특별함이 없다면 없는 나의 이름을 그대로 병원 이름으로 하면서 그래도 기억에 남을 만한 로고 하나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값비싼 비용을 요구하는 번듯한 회사를 통하지 않아도 어플 하나로 미술을 전공하는 고학생들의 젊은 재능과 연결되어 좋다. ”생각하시는 이미지가 있으세요?“ 라는 질문에 그냥 “고래가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라고 답했다. 이 글은 왜 ‘고래 그림이 예쁘겠다.’ 라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을까, 에 대한 조금 구질한 변이다. 전체적인 병원 톤은 따뜻한 느낌인데 왜 로고는 푸른 계열 고래를 했어? 라 주변에서 종종 물어온다. 고래같은 의사가 되고 싶어서 라 답하면 조금 이상하고 우스워 글로 구구절절 글로 남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