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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아픔이 낫질 않고, 제 잘못만 같아요.

두두의 마음 편지

by 아는 정신과 의사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안녕하세요, 이두형 선생님 먼저 개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병원 운영 하시나 안 하시나 이리저리 찾아봤었는데요, 위치가 대구라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많이 축하드릴만한 소식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잘 어루만져주시는 따뜻한 선생님이 되실겁니다.


저는 블로그로, 유투브로 올려주시는 진심 어린 조언으로 도움을 받고있는 독자입니다. 선생님께서 올려주신 글들이 이별을 이겨내는 중인 저에게 많이 와닿았습니다. 방금도 어찌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고 힘들거나 부끄럽고 잊고 싶었던 기억이 떠오르는 건 당연하고 다른 경험으로 채워나가라는 글도 읽고 왔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상황에 맞는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별한 지 오래 되었지만 문득 문득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순간적으로 마음이 쿵 하는 느낌과 함께 기분이 가라앉습니다. 자주 투탁 거리긴 했지만 헤어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아빠가 아프시다는 이유로 연애할 상황이 안될 거 같다며 한번 크게 싸운 다음 날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많이도 울었습니다. 길 가다 울고 자기 전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렇게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아는 사람과 다시 연애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이별을 통보했을 때만큼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연애할 마음이 없고 여유가 없다는 건 핑계였구나. 지금쯤 저를 잊고 그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생각을 하면 이별했을 때의 충격처럼 마음이 쿵 합니다. 제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상대에게 받고 서로 의지할 거라는 생각에 괴롭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생각이라는 걸 알지만 마음이 제 마음대로 움직여버립니다. 속상합니다.


어떻게 너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라는 생각도 들지만 사람 마음 이라는게 어쩔 수 없고 그러라는 법도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헤어진 사이이니 다 제 집착이고 욕심입니다. 그럼에도 제 마음은 정말 충격을 크게 받았는지 잊고 있었지만 떠오르는 순간순간 때문에 기분이 바닥이 되고 몸이 굳는 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런 순간이 올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을지...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너를 위해 살자.. 더 나은 날이 올거다.. 이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시간이 지나게 견디는 것 뿐인지 .. 제가 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사실 이런 순간적인 감정들에서 얼른 빠져나오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나가서 달리기를 한다던지 호흡을 의식적으로 해서 현재 머무는 곳으로 돌아옵니다. 그래도 가끔 찾아오는 이런 순간들은 예전에 기억된 충격과 함께 되살아나서 조금 힘들 때가 있긴 하네요.. 특히 상대는 그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땐.. 더 힘듭니다. 같은 직장에서 앞으로 여러모로 소식도 듣고 어쩌면 마주칠 수도 있는데 그런 날들을 생각하면 약간 불안해지기도 하구요. 저만 이렇게 힘든 시간 겪고 있으니 억울하기도 합니다..


정 많고 모질지 못하고 마음이 여려서 그 이상으로 혼자 힘들어하는 제가 싫어질 때도 있습니다. 지금 제가 온전히 이겨내지 못한 상태라는 걸 말하는 걸까요? 저도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기 위해 더 노력해보고...다른 사람을 만나고 좋은 생각, 경험으로 채워나가야 저도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지..이게 현실적인 방법일지 궁금합니다.


또.. 저에게 헤어짐을 통보할만한 이유들을 생각하면서 저의 단점들도 생각해보게 됐는데 이거와 관련된 말만 나와도 제 단점까지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안좋아질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자책도 들고요.. 헤어짐에는 이 이유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저는 그 사람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을 우선으로 봤는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구나.. 한 번 끝이면 끝인 사람이 있구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머리로는 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 가끔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구구절절 저의 마음을 쓰게 되어 약간 창피한 마음도 있는데요, 분노, 심장 쿵 하는 느낌, 배신감, 억울함, 포기 등등 이별을 이겨내면서 견뎌야 할 대가가 참 쓰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저의 일상은 여전합니다. 여전히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퇴근을 하고 잠을 잡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드는 생각들.. 전혀 보고 싶지 않지만 문득 드는 생각으로 약해지는 저의 마음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두두의 마음 편지)


안녕하세요. 이두형 정신과 원장 이두형입니다. 우선 글과 영상을 지켜봐 주시고 공감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랑을 잃은 아픔만큼 절실히 다가오는 슬픔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힘겨운 마음에 진심을 담아 위로를 전합니다.


저는 사랑과 이별에 대해 주위에서 조언을 청해 오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자주 건넵니다. ‘사랑에서 우리에게 달린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우리는 왜 그토록 사랑에 빠져들었을까요.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 성격이 잘 맞아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비슷해서... 표면적으로 댈 수 있는 이유들은 많이 있지만 어떠한 이유들도 우리의 사랑과 관계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합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은 우주와 같이 깊고, 우리가 이성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영역이 너무도 많습니다. 의식적인 부분 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는 미처 알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부분까지도 감응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연인관계 입니다.


안타깝지만 이는 이별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어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 사랑이라면, 아무리 현실적인 조건이 괜찮고 함께해 온 시간이 오래되었어도 돌아서는 것이 이별입니다. 결별의 과정에서는 대개 헤어지기를 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고, 헤어짐을 원하는 사람은 서로가 가장 다치지 않을, 그리고 스스로가 가장 괜찮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를 빌미로 관계를 종결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아련하고 슬픈 사실입니다. 어떠한 이유로 사랑하지 않게 되어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게 되어 어떠한 이유를 통해 헤어지는 것입니다.


만남은 한 우주와도 같은 마음이 다른 우주를 만나는 일이라 온전히 우리의 의지나 바램대로 이뤄갈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때 그랬으면 어땠을까, 그 때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 때 조금 더 세심했더라면 우리는 달랐을까.’ 라는 마음이 찾아와 후회를 만들기도 하고, 그와 대비되는 과거의 추억들이 떠올라 괴롭기도 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들에 대해, ‘마음에 떠오르는 어떠한 이유들도 이별의 이유는 아니었다.’ 는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의 시작과 끝 모두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사랑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수동적으로 다가오는 이별에도 무력할 수밖에 없냐는 반문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타인이 내게 느끼는 설렘과, 더 이상 그 설렘을 내게 느끼지 않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연이 닿는 누군가와 어떠한 시간을 보낼 지, ‘나를 위해서’ 내가 어떻게 사랑을 이어갈 지는 전적으로 내게 달려있습니다.


저 역시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의 경험을 뒤로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앞선 사랑의 기쁨과 슬픔은 모두 제가 좀 더 사람과 사랑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었고, 이를 통해 남은 삶을 함께 할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떤 사람과 다시 사랑을 하게 되실지 모르겠고, 누군가와의 만남이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더 오래되고 깊은 사랑의 인연을 어느 날에 만나시게 된다면, 지금 보내시는 버거운 시간들도 그 인연을 위한 과정이었구나, 돌아보시게 될 날이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를 만나도 될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것은 우리에게 달린 일이 아니기에 굳이 미리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으셔도 좋겠다, 라는 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만날 만한 인연을 만나게 되는 것도, 그 사람과 이토록 아픈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싶을 만큼 빠져들게 되는 것도 나의 소관은 아닙니다. 다시 사랑을 해 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이는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나도 모르게 점점 빠져들 것이고, 외로움을 지우기 위해 쉽게 잡은 손은 억지로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해도 이내 싫증이 날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삶을 이어가시고, 사랑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이별 후에는 어느 시간동안은 혼자서 충분히 아파야 해.’ 라거나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것이니 빨리 다른 사람과 연애를 시작해야 해.’ 와 같은 ‘말’ 에 흔들리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별의 아픔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관점 보다는, 그렇게 깊은 마음을 나누었으니 헤어짐의 아픔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라는 관점으로 마음을 바라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자연스러운 아픔을 어떻게든 달래고 지우기 위해서 생각에 빠져들고 무리하게 되는 대신, 비록 다소 버거울 지라도 때때로 옛 연인의 생각으로 가슴이 저리기도 하는, 그리고 나의 일상을 그저 보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정리하지면 사랑에 대하여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 중 많은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한 인연의 시작에 분명한 한 가지 이유를 찾기는 어려운 것처럼 이별 역시 어떤 실수나 잘못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연자분께도 이별을 극복하기 위한 하루하루 들이 아닌 단지 사연자분 자신, 그리고 사연자분의 삶과 앞으로 다가올 지도 모르는 사랑을 위한 하루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일상에, 믿을 수 없는 인연이 다시 깃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이 다한 연이 삶에 오랜 고통으로 남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기한이 다한 연을 억지로 붙잡고 옭아매는 것이 새로운 아픔의 씨앗이 되는 경우는 많았지만요. 슬픔은 사랑의 빈자리라 생각했던 공간이 자연스러운 나의 여백이자 더 진솔한 인연을 위한 공간임을 다시 인식해가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변화는 시간이 지나면 익숙함이 됩니다. 사연자 분께 필요한 것은 그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누군가와 함께이시든, 혹은 홀로이시든 깊고 충만한 평온과 행복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모쪼록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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