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광고란이 꽤 비어 있다. 어릴 적엔 늘 빈틈없이 홍보글과 사진으로 가득했던 공간이 하얗게 비어있으니 문득 바라보면 어쩐지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준다. 으레 그것이 있어야 할 장소에 그것들이 없는 느낌. 오래 추억하고 싶은 것들을 오랜만에 떠올렸을 때, 그 때의 기억이 희끄무레하게 잘 떠오르지 않을 때 느껴지는 허전함이다.
지하철 메인 역사 내 중심지에서도 예전에 비해 빈 광고란이 눈에 띄는 가장 큰 이유는 스마트폰이라고들 한다. 다들 시선이 휴대전화에 가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심심한 시선이 광고를 향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하긴, 나만해도 그 광고판이 비었다는 사실조차 잘 인식하지 못한다. 늘 휴대전화의 가십, 뉴스 기사에 눈이 가 있을 뿐이다.
하늘, 구름, 역사를 지나치는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 가로수의 색이 단풍으로 물들었다가, 떨어졌다가, 다시 초록으로 물드는 과정, 역내 매점에서 파는 떡이며 만쥬 같은 간식들, 지하 상가에 진열된 물건과 전시물, 잡다한 것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늘 같은 포털사이트 기사와 댓글들이 가져가 버린 풍경들이다.
비가 갑자기 내리는 날에는 편의점에서 우산을 산다. 예전 같으면 3000원이 부담되어 비를 맞기를 택했을 텐데, 그 정도의 아까움이 덜해진 것을 보니 삶이 좀 윤택해진 걸까, 감사도 해 본다. 편의점의 기본 우산들 중에서는 투명한 우산을 좋아한다. 비가 떨어지는 하늘을 볼 수 있어서다.
우산을 들고 휴대전화를 들면 평소보다도 걸음걸이가 더 어색해진다. 목도 아프고 허리가 조금 더 꼬이는 느낌. 시야도 평소보다는 더욱 불편하다. 산을 한 손에 휘청휘청 들면서도 아픈 팔목으로 휴대전화 스크롤을 억지로 옮기는 내 모습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공허한 마음에 자극을 채워 넣고 있다는 느낌, 입안이 까지고 속이 불편하면서도 자극에 이끌려 불량식품을 자꾸만 먹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투명한 우산 위를 쳐다 보았다. 단풍잎이 떨어지듯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방울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좋았다.
늘 하늘은 내게 다가온다. 내가 그것을 돌아볼 틈이 없을 뿐이다.
갑작스레 비가 내려 급히 우산을 사야할 때는 투명한 우산을 산다. 지하철 광고가 텅 비어있던 것을 인식하던 날부터 의식적으로 고개를 든다. 하늘을 보면 늘 그대로다. 그 그대로가 나를 위로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구름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늘 미묘하게 다른 듯 같은 그 풍경들. 초등학교 학창시절 운동장에서, 갓 대학생이 되었던 날 강의동 앞에서, 닳고 닳아지던 전공의 시절에도, 관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 군 부대에서도 하늘을 바라보면 늘 같았다.
그 일관됨과, 그 일관된 하늘을 볼 때 떠오르는 옛 기억들이 나를 살게한다. 하늘은 늘 푸르게, 혹은 어둡게, 때로는 물방울로 늘 같이 흐르고 있다. 너도 그냥 그렇게 살면 돼, 그렇게 이야기한다.
오늘도 구름을 보며 출근을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자 다짐한다. 퇴근할 때는 달과 별을 보며 태명이 달과 별인 아이들과, 늘 나와 함께 아이들을 보듬는 아내를 떠올린다. 비가 오면 투명한 우산을 쓰고서 하늘을 본다. 물방울이 어린 구름과 달과 별은 평소보다도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