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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Aug 06. 2022

뜻 대로 안되는 삶, 고래와 같은 마음으로

(SBS 인, 잇 투고)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고래와 같은 마음으로 : 맥락으로서의 자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실 아직 챙겨 보지는 못했지만, 주제도 주제고 나의 직업이 정신과 의사인 만큼 따로 시간을 만들어 꼭 챙겨 보고 싶은 드라마다.


어느 날, 병원을 내원하시는 환자분 한 분이 내게 물어왔다.


“선생님, 정신과랑 고래가 뭔가 연관이 있어요?”


내 병원 로고에도 고래 그림이 있고, 드라마 주인공 우영우도 유난히 고래를 좋아하길래 궁금증이 일었다고 한다. 물론 정신과와 고래 사이에 특별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래가 마음이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어떻게 모티브가 될 수 있을지는 짐작이 간다.





어린 시절 대왕고래(흔히 ‘흰긴수염고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로 나는 고래에 매료됐다.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화면 한가운데에 커다란 배가 떠 있는데, 배 옆으로 찰랑이던 푸른색의 바다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점점 줌아웃 되자, 그 거대한 배가 점이 될 정도의 넓이로 바다가 검게 물들었다. 배를 한참 지나 대왕고래가 떠올랐다. 달 같은 눈이 나를 바라봤다. 마치 검은 섬이 솟아오르는 느낌. 돌고래처럼 경박스럽지 않은 그 깊은 무게감에 엄숙함마저 감돌았다. 천천히 부양하는 그 모습은 마치 우주 같았다. 그 어떤 카메라로도 담을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이후로 마음이 지칠 땐 어쩐지 그 고래의 모습이 종종 떠올랐다. 대왕고래는 애써 헤엄치기보다 유유히 부유한다. 잔파도나 다른 물고기들로 인해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 그대로 존재한다. 숨을 들이쉬듯 마신 바닷물을 다시 내뱉었을 때, 수염에 남은 크릴새우 만큼만을 먹고 사는데도 각박하고 치열한 어느 물고기보다도 웅장하고 고요하다.


그런 고래의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성적으로 풀어쓰기는 어렵지만 ‘그런 게 인생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시간들이 좋았다. 삶의 고민과 아픔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넓은 바닷 속을 부유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말로 정리되지는 않지만 느낌으로 전해졌다. 평온했다.


나는 어떤 정신과 의사를 꿈꾸는가. 바라건대 나를 찾는 이들에게 그런 고래 같은 존재면 좋겠다. 빚을 대신 갚아주거나, 복잡한 소송을 대신 해결해 주거나, 과거로 돌아가 지우고픈 기억 삭제해줄 수는 없겠지만, 삶이 먹먹해지는 순간에 어쩐지 떠오르는 사람. 나와 나눈 대화가 일상을 이어가는 힘이 되는 그런 기운을 전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병원 로고에 고래를 넣었더랬다.


나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그런 고래의 유유한 모습을 보며 평온함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고래가 정신과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의 영감과 모티브가 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사실 우리 모두는 그런 고래 같은 존재를 가슴 저 깊이 품고 있다.





마음을 바라보는 최신 동향 중 하나인 맥락행동과학에서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관점을 다음처럼 제안한다. 먼저 ‘내용으로서의 자기’이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데 가장 흔하고 익숙해져있는 관점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서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가족 관계는 어떤지, 나이는 몇 살이고 어떤 친구와 어울리는지. 이런 내용들이 나 자신이라고 믿는 관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이러한 삶의 내용들은 시시각각 변한다. 다섯 살,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을 지나 마흔 살, 또는 더 나이가 들었을 때 그때마다 ‘내가 나라고 믿었던 내용들’은 계속 달라진다. 그 중에 어떤 것이 ‘진짜’ 나일까. 10년 전? 1년 전? 심지어 어제의 내 모습이 나라고 믿었던 것들 중에서도 많은 것들이 달라졌거나 이미 사라지고 없을 수도 있다. 찰나의 순간에 나를 스쳐간 하나의 현상이자 잠깐 나의 일부가 되었다가 사라졌을 뿐이다. 그 달라지는 과정을 스스로가 인식한다는 것. 그 변화의 중심에 서있으면서 나라는 존재가 어떤 고정된 실체가 아닌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이것을 ‘과정으로서의 자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바뀌어간다는 것을 느끼고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인식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우리 마음 저 깊은 곳에는 내 생각과 감정, 삶의 변화를 지긋이 지켜보고 있는 존재가 있다. 이 존재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오는 동안 늘 그곳에 있었다. 삶의 풍파에 위협받지 않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너절한 우리의 불안과 고민에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늘 같은 곳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존재. 내가 어떤 일을 경험하고, 어떠한 기쁨과 상처를 받든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때, 그러한 고민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늘 온화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깊은 나. 이것이 바로 ‘맥락으로서의 자기’다.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지금도 거대하면서도 온화한 대왕고래처럼 유유히 우리의 마음속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존재가 있다는 자각조차 없을 때부터, 가장 깊은 곳에서 늘 따뜻이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늘 미래를 걱정하고 사람에 아파하지만 고래 같은 ‘진정한 나’는 한 번도 위협받은 적 없이 평온했다.





왠지 대왕고래는 자신의 몸이 얼마나 더 커졌는지, 자신을 스쳐 가는 물고기들이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오늘 크릴새우를 몇 마리나 먹었는지에 대해 집착하지 않을 것 같다. 단지 스스로의 삶을 충분히 부유하고, 바다를 온몸으로 느낄 것만 같다. 우리도 그의 마음을 닮을 수 있다면, 사실 내 마음속에도 그 고래와 같은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시시각각 내 마음을 조여 오는 불안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자폐라는 어찌할 수 없는 어려움을 고스란히 받아든 채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우영우는 누구도 완벽할 수 없는 모든 우리네 인생에 대한 메타포다. 마음대로 되지 않은 삶 속에서 각자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해 가는 우리들. 좀 더 깊은 우리, ‘맥락으로서의 나 자신’은 늘 그래왔듯 오늘도 부족함과 넘침, 맞고 틀림의 굴레에서 벗어나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마음속 고래와 같은 그 마음을 느껴 보시길. 하루를 살아갈 조그만 위안과 힘이 전해질지도 모른다.






이전 병원 로고에 대해 썼던 글을 모티브로, SBS 인, 잇에 기고한 글입니다.

늘 뜻대로 되지 않는 것 투성이인 삶이지만, 그 삶을 이어나가는 영감과 작은 위로를 전해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5/0000989632?sid=103

https://news.sbs.co.kr/news/contributor.do?plink=BRAND&cooper=SBSNEWSMAIN

https://blog.naver.com/dhmd0913/222313665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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