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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Aug 18. 2019

눈 떠. 감으면 다쳐.

운동을 하며 느낀, 삶을 대하는 자세.

  헬스에 빠졌다. 학생 때 꾸준히 헬스장을 다니다 일이 바빠진 이후로는 잊고 지냈었다. 주마다 하루씩 뛰는 야간 사회인 농구로 운동 욕구를 달래곤 했었는데 그만 발목을 크게 다치고 말았다. 목발을 짚고 재활을 하며 발목을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려니 쇠질 만한 것이 없었다.


  마침 헬스 경력이 긴 동료가 있어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서로 운동 파트너가 된다. 바벨을 들 때 전해지는 중력의 감각을 느끼며 몸이 무리가 되진 않는 지 살핀다. 평생 익숙하게 써 오던 몸인데도, 새삼스레 다시금 그 존재를 느끼고 그와 친해짐을 느낀다.


  학생 때는 몸을 만들려 바벨을 들었는데, 이젠 더 높은 무게를 들고 싶어 몸을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다치지 않고, 이기지 않고도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 귀하다. 누군가를 이기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질 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기쁨이기에, 천천히 바벨의 무게를 늘려가는 즐거움은 편안하다.

 

  삼두근 운동을 위해 벤치에 누워 바를 들었다 (사진; 라잉 트라이셉스 익스텐션) 꽤 느껴지는 무게감에 지쳐 바가 얼굴에 다가올 때 무심코 눈을 감았다. 그 때 보조를 해 주던 동료가 재빨리 한마디 했다. “눈 떠. 눈 감으면 다쳐.”


  무거운 바가 얼굴로 내려오는 동작이라 자칫 균형을 잃거나 하여 바벨을 놓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바를 응시하며 집중하고 주의해야 하는데, 나는 무게가 무거워 용을 쓰느라, 또 동료가 보조를 해 주니 다칠 리가 없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눈을 감아 버렸던 것이다.


  문득 생각했다. 살면서도 힘이 부칠 때 눈을 감는 일이 많았구나 하고. 눈앞의 부담스런 위기, 가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을 때 우리는 애써 몸과 마음의 눈을 감아버린다. 불편한 현실을 들여다 볼 용기가 없어서다. 마치 눈 감고 귀 막은 채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조금의 시간만 지나면 삶이 대충 잘 풀린 채 흐르고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삶의 원리는 오히려 반대인 것 같다. 눈을 감을수록 삶이 꼬이고, 뜰수록 풀린다. 얼굴로 다가오는 바가 무거울수록, 주어진 과제가 버거울수록 눈을 열심히 떠야 한다. 이 순간에 좀 더 집중하고, 고민하고, 명료히 생각해야 한다. 이는 단지 다치지 않기 위해서 뿐만은 아니다.


 느껴지는 무게가 무거울수록 근육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인 것처럼, 버거운 일일 수록 해냈을 때 느끼고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많다. 물론 경주마처럼 왜 달리는 지도 모른 채, 무작정 빠르기 위해서만 달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다시 오지 않을 중요한 시기에, 놓칠 수 없는 무언가에 몰두하는 중이라면, 가끔은 지금이 삶의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몰입하는 것도 멋진 일이다.


  어영부영 눈 감고 악을 쓰는 척만 해도 오늘의 운동은 대개 동료의 보조에 의해 안전히, 잘 마무리 된다. 삶도, 때로는 주어진 과정에 몸을 싣고 흐르는 대로만 기다려도 어떻게든 흐른다. 그러나 운동이 노동이 되지 않고 내 몸에 의미 있는 가치를 남기기를 원한다면, 눈을 떠야 한다. 오늘이 어떻게든 흐른 수많은 날들 중 하루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한 날들 중 하루이기를 바란다면, 눈을 떠야 한다.


  살다보면 언젠가는 위기가 다가온다. 마주하기 싫은 진실, 감내하기 어려운 고난에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때도 많다. 그럴 때면 그저 눈을 감은 채 시간이 흐르기를, 흐르는 시간 동안 헝클어진 삶이 흩어지듯 사라지거나 깔끔히 정돈되기를 바라기 쉽다. 그러나 요령이 집중과 노력보다 더 값지기는 어렵다. 요행보다는 진정으로 채우는 삶이 아름답다.


  그러니, 눈을 떠야 할 땐 눈을 떠야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온전히 또 깊이 눈을 감고 쉴 때가 찾아올 것이다. 진심을 다해 온 지난날들과 비로소 이루어진 무언가들을 기쁘게 돌아보면서, 아쉬움은 덜어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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