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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Aug 11. 2019

네가, 살아볼 수 있음을 다행이라 느끼길 바라

셀프 이발을 하며 떠올리는 아이 생각

바리깡으로 옆 뒷머리를 미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가위로 윗머리 앞머리도 잘라 본다. 설익은 솜씨에 여기저기 머리가 삐죽이지만 괜찮다. 떨어지는 머리 끝자락을 보며 섬섬한 아이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다듬어주는 상상을 한다.


손수 피아노를 쳐 주고 싶다가도, 종종 틀리는 가락으로 괴롭히기보다 완벽한 마스터피스를 들려주는 게 교육에 더 좋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피아노 치는 아빠를 보면 따라서 치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연습을 더 하기로 결론을 낸다.


사내아이니까 함께 농구를 하고 목욕탕을 가는 상상도 해본다. 어릴 적 가족끼리 가는 등산을 나는 참 좋아했었는데, 아이도 그걸 좋아할까.


이따금씩 두렵다. 예전에 아이가 달라지는 프로그램을 볼 땐, 마치 수술의가 술기를 연습하듯 가족들 마음의 역동을 그려도 보고, 저들이 내게 도움을 청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 지 고민해 보곤 했었다. 이젠 그렇게 여유있게 프로그램을 관조하지 못한다. 정신과 의사의 입장 보다는 부모의 입장에서 감정이 이입된다. 어떤 아빠라야 달이가 좋아할까, 함께 행복할까.


멋지고 똑똑하고 건강하면 아이의 행복에 수월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에 아이가 멋지고 똑똑하고 건강하길 바랐었는데, 생각이 점점 달라진다. 잘남과 못남을 구별하는 어른이 될 필요가 없음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아이에게, 세상이 어떤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느껴지면 좋겠다.


원해서, 부모를 선택해서 세상에 오는 아이는 없다. 부모의 사랑이 있어 태어나게 되었을 뿐이다. 세상의 버거움을 아는 부모는 그래서 늘 미안하고 그저 아이가, 살아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느끼기를 바란다. 그럴 수 있도록 아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고 싶다.


친한 형님은 아이를 키우며 '내가 아닌 누구를 위해 대신 죽을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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