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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Dec 30. 2019

우리 아이에겐, 우리 아이만의 시간이 흐른다.

아이가 밤잠을 자던 날.

  아이가 밤잠을 자지 않았다. 이제 태어난 지 한두 달 남짓, 아직 뇌도 생체 시계도 덜 성숙한 아기의 수면 패턴이 일정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백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의 조리원 동기 아이들이 하나 둘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이와 생일이 비슷한 친구의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밤에 잠을 잘 자서,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 지 깨우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저런 노하우, 밤에 아기를 재울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해 주기도 했다.


  우리는 초조했다. 두 시간 동안 아이를 안으며 팔꿈치와 어깨의 통증을 고스란히 느끼다, 마치 각도에 따라 눈을 감았다 뜨는 인형처럼 내려놓자마자 눈을 뜨고 다시 우는 아기를 바라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뭐든 최선으로 해 주고 싶은데, 다른 아이에 비해 유독 밤에 잘 자지 못하고 우는 모습이 걱정이 되어서가 더 큰 이유였다.


  육아 팁을 구하기 위해 유튜브를 검색하고 조언을 구했다. 먹놀잠, 낮잠 조절, 주간에 수유 텀을 줄이고 야간에는 늘리기, 아이 뱃고래를 늘려 한 번의 수유량 늘리기, 백색 소음 ... 온갖 정보를 따라 노력했다. 하지만 아기는 밤에는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낮에는 어떻게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곤히 잠들었다.


  우리는 지쳐갔다.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힘들게 하는 노력들이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치는 것 자체도 슬프지만, 그보다 지침으로 인해 아이의 귀여움, 사랑스러움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것이 슬펐다.


  공부한 바를 믿기로 했다. 학습과 같은 고위 기능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전두엽의 글루타메이트 회로가 충분히 성숙해야 한다. 반면, 변연계를 통한 감정적 반응은 태어난 직후부터도 일어난다. 가르침이 이루어지기는 힘든 시기, 불안과 두려움은 심어지기 쉬운 시기다. 오로지 울음으로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우리 아기, 지금은 우리의 틀에 맞추기 위한 훈육의 시기가 아니라 그저 충분히 안아주고, 보살피고, 또 안아줄 시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벌써부터 먹놀잠을 자는 아기도 많고, 이른 날짜부터 통잠을 자는 편안한 아기도 물론 많더라만, 지금 우리 아기는 먹다가 잠들고, 낮에 푹 자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아기는 그저 그럴 뿐이라 생각하면, 낮밤이 바뀌는 정도는 아기를 위해 힘들지 않다.  단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80일 째의 후반부. 아기가 밤에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하루는 새벽 2시 쯤 잠을 자더니, 그 다음 날에는 1시, 그 다음 날에는 자정... 밤에는 30분도 이어서 자지 못하던 아이가 4시간, 6시간을 내리 자기 시작했다.


  3~4시간 마다 수유하던 아기가 6시간도 넘게 아무것도 먹지 않다 보니, 낮에 깨 있는 시간 동안은 더 자주 젖을 보챘다. 한 번에 먹는 양도 늘었다. 밤에 많이 자다 보니 낮잠이 줄었고, 먹고 바로 잠들지 않고 옹알거리며 놀곤 했다.


  아, 유튜브, 인터넷에서 말하던 비법 그대로였다. 먹놀잠, 주간 수유 횟수와 뱃고래 늘리기, 낮잠 덜 재우기는 수단이 아니라, 실은 뇌가 성숙해가는 아이의 변화 그 자체였다. 부모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기다림 끝에 아이가 스스로 도달한 결과였다.


  수단은 종종 진짜 목적을 쫓아내고 주인 행세를 한다. 우리 아이가 잘 크고 있을까, 건강한 걸까, 다른 아이들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많아 보이는데, 괜찮은 걸까.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뿌리는 물론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일 터다. 그런데 아이가 잘 되고 있는 게 맞을까,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괜찮은 걸까, 그 고민들 때문에 정작 지금 아기와 나눌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놓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지금 아이에게 행복이란, 어떻게 하면 아이가 이상적인 모습에 비슷할까 이리저리 고민하고 초조해 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안아주고 또 안아주는 부모의 품이며, 아빠를 바라보곤 함박웃음을 지으며 옹알거리는 아이에게 되돌려주는, 다 큰 어른의 옹알이 흉내다.


  아이에게는 모두 각자의 시간이 흐른다. 앞으로도 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해 걸음이 서툴지도, 말이 늦을 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다른 아이들의 빠른 시간에 우리 아이의 발걸음을 맞출 수 있을까를 고민이 든다면, 그 때 마다 그저 한 번 더 안아주고 우리 아이만의 시간을 함께 세어주자, 처음 마주하는 종류의 사랑에 빠진 아빠가, 서투름이 두렵지만 늘 든든해보이고픈 아빠가 다짐해 본다. 욕심과 원은 한 끝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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