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 정신과 의사 Feb 04. 2020

두려움 앞에 머리를 박는 타조에 관하여

중요한 일일 수록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회피 행동


  흔히 눈앞의 위험, 다가오는 불안을 외면하는 사람을 비유할 때 타조의 예를 든다. 타조는 위협이 다가올 때면 그 두려움에 압도된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단지 땅에 머리를 박고 눈을 감아버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이 때로는 이런 타조의 모습을 닮을 때가 있다. 어리석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을 지를 잘 알면서도, 그 상황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이 너무 큰 나머지 이를 외면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마음 한켠에 공부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PC방을 떠나지 못하는 학생이 있고, 두려움에 압도되어 면접을 가지 못하는 취업 준비생도 있다. 어떤 직장인은 관계가 불편한 상사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이리 저리 피해 다니기도 하고, 사람이 붐비는 것이 불편한 이는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더라도 티비 영화채널에 영화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기도 한다.
 
  불편함과 두려움을 유발하는 상황을 피하는 행동, 즉 회피 행동에는 단기적으로 우리의 기분을 편하게 해 주는 기능이 있다. 아니 편하게 해 준다기 보다는, 미래에 다가올 것이라 상상되는 두려움에 초조해 하는 우리의 마음을 잠깐 진정시켜 준다. 시험 걱정에 시달릴 때는 음악 한 곡이 잠깐의 큰 위로를 주고, 직장일로 머리가 혼란할 때는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한숨 잠을 청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떠오른다.
 
  그러나 이러한 회피의 효과는 보통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는 대개 회피가 우리에게 안정을 가져다 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벗어나기 힘든 마음의 불편함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회피를 통해 불편한 현실에서 잠깐 도피할 수는 있어도, 우리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저절로 떠오르는 상상을 막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두렵거나 혐오스러운 무언가를 피할 때, 그것이 길가의 오물 같이 내 삶에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이내 마음속에서 잊혀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입시 시험, 구직 면접, 직장 내 대인관계 같이 삶에 큰 의미를 가지는 것들이라면, 잠시 이를 회피한다고 해서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자리를 벗어나 그 상황을 회피한다 하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그 상황 속에 머무를 것이며, 눈을 감아 불편한 것을 보지 않으려 해도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그 일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재생될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와 크게 다퉜다고 하자. 싸움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 화해하고픈 마음이 들지만, 여전히 다퉜을 때의 앙금이 깊게 남아있고 먼저 사과를 건네자니 어색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다음날에라도 바로 화해를 할까 생각을 하다가도, 친구가 괘씸하기도 하고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도 어색해 사과를 미루어 버리게 된다. 당장은 ‘에이, 모르겠다.‘ 라며 가볍게 넘겨버리길 몇 번, 점점 화해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지지만, 커지는 부담감만큼 화해는 더 어려워진다. 어느 새 왜 다퉜는지 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불편해 회피를 반복하게 된다. 피한다고 해서 마음이 편안한 것도 아니다.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친구와 화해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러려니 불편하고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다투느라 불편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인간은 누구나 좋은 감정을 가까이 하려 하고 힘든 감정을 멀리하려 한다. 불안, 어려움,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시도 역시 잘못된 것이라 할 수는 없고, 오히려 인간에게 이는 자연스러운 시도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고 도피하려는 우리의 시도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 지, 실제로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지를 잘 따져 보아야 한다. 그다지 중요한 일을 붙잡고 크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여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일을 애써 모른 척 하는 것 또한 우리의 마음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일이다. 설사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을 벗어날지언정, 우리는 우리의 마음, 상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대안은 ‘유연함’ 이다. 우리는 곧잘 단 한 가지의 삶의 원칙, 예컨대 ‘접하는 모든 일은 완벽하고 멋지게 해결해야 한다’ 거나 ‘마음이 불편해지는 상황이라면 무조건 피하는 것이 좋다’ 같은 원칙을 세우고 이를 모든 상황에 적용하려 한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 공통되게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과거에 유효하고 유용했던 원칙이 지금에서는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매 상황, 매 순간마다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고 또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방식인지를 고민하고, 이에 따라 그 때 그 때 다르게 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앞서의 예를 이어가 보자. 다툰 친구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것은 그 친구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다. 그와 그간 그렇게 친밀한 관계도 아니었고, 내게 그렇게 큰 의미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와의 관계를 신경 쓰는 것은 오히려 내 마음을 소모하는 비효율적인 일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실제로 특별한 대처를 하지 않고 지내다 보면 마음에 큰 부담을 남기지 않고 이내 잊혀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비록 크게 다투긴 했어도 그가 내게 큰 의미가 있고 앞으로도 그와 함께 하고픈 마음이 크다면, 회피하고픈 마음을 애써 무릅쓰고 그에게 용기를 내어 사과의 말을 전하는 것이 나의 마음이 가장 편안한 길이자 내 삶을 위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단, 이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화해의 말을 건네는 불편함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친구의 가치를 평가절하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당장의 불쾌함, 어색함, 어려움을 피하려는 우리의 마음은 늘 우리에게 속삭인다. 이 일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모른척하고 피해 버리자고.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또 이에 대해 잘 판단해야 한다. 지금 찾아드는 외면하고픈 마음이 정말로 의미 없는 무언가를 지우려는 마음인지, 아니면 너무도 중요하지만 그로인한 부담감에 회피해 버리고픈 마음인지.
 
  생각보다 우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 마음을 쓰고 있고,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을 회피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가 행하려는 행동이, 우리의 삶에 중요한 가치의 다가가는 방향인지 멀어지는 방향인지를 살펴보고, 그리 중요치 않은 일에는 흘리는 감정 소모를 잘 추스르면 어떨까. 반면에 그 일이 어차피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면, 마음속 상상에 의한 두려움, 부담으로 ‘두 번, 세 번, 수십 번’ 고생하는 대신 눈을 질끈 감고 그 일에 뛰어들어 버리면 어떨까. 이렇듯 유연히 삶에 대응하는 자세는 의외로 마음 가벼운 하루를 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글머리에서 이야기했던, 다가오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처박고 눈을 감은 채 두려움에 떨기만 할 뿐이라는 타조의 일화는 사실 오해다. 혼란에 빠져 다가오는 두려움을 그저 외면하려고만 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란 오명을 쓴 타조의 이 `머리박기` 행동은, 실은 먼 곳으로부터 전해지는 포식자의 미세한 진동을, 땅에 머리를 대어 정교하게 감지하기 위한 행동이다. 우리도 타조의 `머리박기` 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물론 본받아야 할 머리박기가, 다가오는 위협에 그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회피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타조가 땅 위의 미약한 진동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이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듯이 우리도 세심히 우리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지금 경험하는 이 상황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이에 대해 지금 내가 취하려 하는 행동이 혹 당장의 불편함으로  부터만 벗어나고자 하려는 회피 행동은 아닌지,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를 향하는 행동일 것인지, 이들에 대해 사려 깊게 고민하는 진정한 의미의 `머리박기` 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또 원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데 조그만 도움이 될 것이다.




(함께 읽기를 권해드리는 글)

https://m.blog.naver.com/dhmd0913/221706620076

https://m.blog.naver.com/dhmd0913/221552773480

https://m.blog.naver.com/dhmd0913/221541469504


매거진의 이전글 인스타의 여행 사진보다도 우리 집 베개가 더 소중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