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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May 16. 2020

사랑을 노력한다는 것

20대 그 때의 사랑과, 지금의 사랑


  가수 박원의 '노력' 이라는 노래가 한참 인기 있던 시절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한 인연이 원치 않은 이별로 마무리되던 시점이었다. '사랑을 노력 한다는 게 말이 되니.' 라는 후렴구가, 마치 이별을 통보하던 상대방의 속마음과 같이 느껴져서 가슴에 많이 남았었다.


  20대의 사랑은 대개 그러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 곁에 있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그러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끌리는 것, 어떠한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것만을 사랑이라 믿었다. 함께 있기만 해도 기분이 저절로 들뜨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이 느낌이야 말로 사랑이구나.' 저절로 깨닫게 되는 그런 것만이.


  그래서일까. 그 시절의 연애는 늘 그런 느낌을 공유하며 시작되었다가 그런 느낌이 사라지면 끝이 나곤 했다. 늘 다른 이유로 영원할 것만 같은 설렘을 느끼다, 익숙함에 그 느낌이 바래진다는 같은 이유로 이별이 찾아왔다. 그 덧없는 과정의 반복은 참 지치는 일이었다.


  과정 자체 보다 나를 더욱더 지치게 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깨닫는 스스로의 마음의 흐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인에게 마음이 떠나는 이유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던 그의 싫은 모습을 새로이 발견해서가 아니라, 나를 매료시켰던 그 모습에 식상해졌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아름다워 보였던 섬세한 감수성은 점차 예민함으로 느껴졌고, 재기발랄함은 진중하지 못함으로 느껴졌다. 더욱 슬픈 것은 상대방 역시 그렇게 나를 식상하게 느끼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었다. 서로는 서로가 변했다고 했다. 아니, 서로는 변한 적이 없다. 서로의 마음만이 변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그간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을 지를 열심히 재고 견주고 있었다는 것을.


  남은 여생 이라는 길고 긴 시간 동안 어긋날 수 있는 조짐을 찾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기에 20대의 연애는 늘 살얼음 길이었다. 흔한 다툼에서, 서로가 처한 현실적 조건에서, 심지어 사소한 운전 습관에서도 이별의 씨앗은 자랐다. 다툰 후 한참이나 연락이 되지 않는 상대를 기다리며 결혼 후 부부싸움 다음을 상상했고, 몸을 움직이는 일에는 도무지 흥미가 가지 않는다는 상대의 말에서 주말 동안 다른 취미를 즐겨야 할 장면들이 떠올랐다. 둘만으론 너무 좋지만 세상의 슬픈 논리를 무시할 수만 없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한 과정의 반복 속에서 고민했다. 길어도 반 십년을 넘기기 힘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인 줄만 알았으나 지나고 보면 너무도 얄팍한 그 사랑이라는 감정을 바탕으로 한 평생을 한 사람과 살아갈 수 있는 걸까. 그러한 마음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혼 생활이라면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그 때의 이별은 너무 쉬웠다. 쉬운 이별이라고 해서 힘들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쉽다는 의미는, 이별이 마치 변한 체형으로 인해 맞지 않는 옷을 정리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좋은 옷도 맞지 않으면 입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사람도,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다면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령 그 끝이 있더라도 꼭 함께 해보고 싶은 이를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해본 이는 알 것이다. 식장 입구에 설 때 까지, 심지어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도 이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맞을까 고민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상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와는 관계없는 혼자만의 근원적인 불안이다. 이혼이 그토록 흔한 세상에서, 우리 부부만의 평범한 특별함을 잘 간직해 나갈 수 있을 까. 그토록 자연스러웠던 이별이 다시금 찾아오지는 않을 까.


  생각했던 대로 결혼생활에도 파도가 존재했다. 30여년을 다른 가치관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두 사람이 같은 삶으로 녹아드는 과정이 때로 서로에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베어봤자 물이지만 굳이 칼로 서로를 베는 순간이 찾아오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결혼 전과 달리 이별에 대한 생각은 깃들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면 함께 만들어 먹다 남은 반찬이 있고 출근길 핸들 옆에서는 아내가 자동차 키에 걸어준 아들의 얼굴이 흔들렸다. 둘이서 꾸민 아이의 방에서 아이를 재울 때면, 함께 아이의 침대를 고르던 순간이 떠올랐다. 삶 속에 서로의 숨결이 가득하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은 결혼생활도 연애와 매 한가지였다. 단지 함께 살아가다 보면 익숙해지기 전의 애틋함을 기억할 이유가 생긴다. 그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되새기다 보면 같이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아내가 애잔히 느껴진다. 세상의 더 좋은 것을 가지고, 더 멋진 사람들과 이어지고 싶었던 욕망으로 자꾸만 흐르던 마음의 시선이 온전히 우리에게로 모아진다. 


  예전엔 아무리 간절한 사랑도 나 자신을 아끼는 마음 보다는 크진 못했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내 삶보다 중요한 무엇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 삶보다 중요한 것을 내게 선사해 주고, 그것을 함께 지켜가는 존재에 대한 마음 역시 깊어져 간다. 육체적인 설렘의 아득한 자극은 무뎌지지만, 서로를 처음 아끼던 순간의 소중함은 오히려 점점 선명해진다. 


  흐려지는 마음을 붙잡고 어떻게든 사랑을 되돌리려 억지로 노력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소중한 의미를 위해 그녀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깃든다. 그것이 나의 행복으로 이어진다. 나를 위해 그를 위하는 마음이기에 어떠한 가식도 무리도 필요하지 않다. 함께 만들어가는 가치로운 하루, 그리고 그것을 위한 노력과 고단함, 그로부터의 보람이 존재할 뿐이다.




  매력적인 이성과 처음 손을 잡는 순간의 분출되는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선사하는 황홀함, 그 이성을 초월하는 아득함은 너무도 강렬하다. 아무런 노력 없이도 저절로 느껴지는 달콤함이 분명 존재하고, 우리는 으레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러한 초월감 만을 사랑이라 말하곤 한다. 


  그러나 가지고 싶은 욕망은 그의 곁에 서는 순간부터, 그것이 강렬했을수록 더욱 빨리 옅어지고 소실된다. 반면 가치 있는 삶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바램은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깊어진다. 삶을 함께 쌓아간다는 느낌은, 그럴듯한 그를 곁에 두고 싶다는 소유욕보다 덜 날카롭고 더 뭉클하다. 


  노래의 가사처럼 사랑을 노력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싶도록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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