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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꼭 맞는 레시피

카페를 설계하는 디렉터 JOHN의 창업현장노트

by Director John Apr 17. 2022

'내게 꼭 맞는 레시피'

제목을 적어 놓고 나니 예전에 방문했던 한 카페가 생각났다.

오피스 상권에 있는 한 작은 카페였다. (12평 정도 됐었나?) 요즘 트렌디한 카페들처럼 인테리어가 힙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커피가 맛있었고, 카페 사장과 함께 일하는 직원 모두 친절한 카페였다. 

그땐 사무실 근처에 있는 카페여서 자주 갔다. 출근길에 한잔, 점심 먹고 한잔, 손님 오면 또 사러 가고... 

그런데 카페는 맛있고 다 좋았는데,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자주 가다 보니 직업병 때문에 아쉬운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레시피였다. 

오피스 상권에 있는 대부분의 카페는 점심시간에 많은 손님을 집중적으로 받아야 하는 게 주 특징이다.

보통 대부분의 상권이 점심시간에 붐비는 게 특징이지만, 서울 대표적인 오피스 상권에서는 진짜 심각할 정도로 특정 시간에 손님이 몰린다. 이런 현상을 다르게 해석하면 점심시간에 손님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매출이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다 받아야 하는거 아니겠어?)


그런데 내가 자주 갔던 그 카페는 충분히 더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뉴 레시피 때문에 절반 이상의 손님들을 놓치고 있어 보였다. 

절반 이상의 손님을 놓친다고? (한번이라도 매장 운영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아까운지... 알것이다.) 

카페에는 시그니쳐 메뉴 몇 가지가 있었다. 

하나같이 레시피가 매우 복잡해 보였다. 준비하는 시간도 길어보였고, 점심시간에 몇몇 손님이 그 메뉴를 주문하면 그 뒤로는 쭈-욱 메뉴가 밀려있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더 이상 주문도 받지 못하고, 메뉴도 늦게 나가게 되니 너무 오래 기다릴 것 같은 손님은 자연스럽게 다른 카페로 이탈하는 게 보였다. (이런 경우가 은근 많다.) 

사실 이런 상황을 오너 입장에서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시간에 한참 Bar 안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손님으로 방문한 난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난 자신의 카페에 꼭-맞는 레시피를 계획해야 한다고 항상 항상 말한다. 


레시피를 계획할 땐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가장 먼저 메뉴 가격! 

저가 메뉴인가, 고가 메뉴인가! 

식음료시장에선 너무도 당연하고 기본적인 고려사항이다. 고가 메뉴일수록 레시피가 복잡해질 수 있고, 좋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도 있다. 고가 메뉴에서 사용하는 재료를 사용해서 저가 메뉴로 운영할 수 있을까? 불가능. 물리적인 한계는 절대 넘을 수 없다. 그래서 메뉴 가격에 맞는 레시피를 계획하는게 진짜 중요하다!


그 다음은 위치!

어떤 상권이냐에 따라서 레시피는 달라질 수 있다. 충분히.

위 이야기 속 카페의 경우라면 오피스 상권으로 사실, 시그니쳐 메뉴가 큰 영향을 끼치는 상권이 아니다. 

실제로 카페 포스를 열어서 분석해보면 하루 동안 시그니쳐 메뉴 매출은 매우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너들은 반대로 시그니쳐 메뉴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오너들은 공들여 준비한 메뉴이기 때문에 각별히 더 신경써는 것이고, 몇몇 손님들이 찾기 때문에 유독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허나 포스 자료를 현실적으로 살펴보면 매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하루에 1-2잔? 나갈까 말까인 경우가 많다.)

요즘 힙한 상권이나 외곽 상권의 경우라면 시그니쳐 메뉴 전략이 필요하겠지만, 오피스 상권은 아니다. 

간혹 메뉴 컨설팅 현장에서도 황당한 경우를 많이 보게된다.

상권의 특성이나 타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레시피를 설계해주는 컨설턴트들이 은근히 많다. 점심시간에 집중적으로 사람이 몰리는데 이런 카페에 장인 레시피가 필요 있을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메뉴 컨설턴트도 어렵고 복잡한 메뉴가 자신의 실력을 검증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부분 실제 매장 운영 경험이 없는 컨설턴트가 많아서 더욱 그런 경우가 많다. 


내가 자주 가던 카페 오너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 대한 고민을 내게 털어놓았다. 평소 괜한 조언은 불쾌할 수 있으니 말을 아꼈었는데, 고민을 들었을 땐 솔직하게 답을 해주었다. 그 이후 오너는 진심으로 필요성을 느껴 레시피 점검을 맡겼고, 난 메뉴 구성에 조금 변화를 줬다. 시그니쳐 메뉴를 과감히 없애고, 한 가지 메뉴로 다양하게 베리에이션 할 수 있는 구성으로 계획했다. 오너 입장에서는 너무 쉬운 레시피 때문에 처음엔 갸우뚱- 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내가 사용하는 레시피는 완전 상업레시피여서 진짜! 심플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카페를 찾았을 때 오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예상대로 음료 만드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고,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메뉴의 수가 늘어나다 보니 점심시간에 몰리는 손님들을 거의 다 해결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매출이 생각보다 많이 올랐다. 사실 결과는 너무 당연했다. 

물론 처음에 오너는 시그니쳐 메뉴에 미련이 많았다. 어렵게 배운 거라고 했고, 비싼 돈을 들여서 배운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난 그 메뉴를 버림으로 해서 그 시그니쳐 메뉴에 투자한 금액 이상을 벌게 해 주겠다고 하면서 겨우 설득했다. 

레시피는 단순히 메뉴를 만들기 위한 계획만이 아니다. 

난 레시피를 기획, 전략이라 생각한다. 특히 F&B 브랜드에 있어선 더더욱 그렇다. 

재료 선택에 따라서 정체성이 달라질 수 있고, 공정계획에 따라서 생산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원가에 따라서 마진도 달라지고, 재료 원가와 품질에 따라서 판매가와 고객 만족도 사이 밸런스가 맞아진다. 그래서 레시피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난 레시피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간단하게 색다른 레시피. 

그게 내 레시피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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