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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f yosef Sep 04. 2023

11. 사막의 밤하늘은 아름답다.

이스라엘 견문록

내가 탄 버스가 막차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숨이 콱 막히며 암담했다. 그러나 이내 여행자 모드로 마음을 바꾸고 요트바타로 돌아가는 길을 살폈다. 다행히(?) 길은 단순하게도 남쪽으로 직진이다. 두 번의 큰 갈림길이 있지만 길을 잘못 들 수가 없는 구조로 간단하다. 


관광 안내지도 한 장을 들고 출발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이전 시절이라서 정보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휴대폰 배터리는 빵빵하다. 또 다음날이 토요일(안식일)인 휴일이라서 토요일 밤까지만 도착해도 큰 문제는 없겠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발걸음을 뗐다. 이때만 해도 그렇게 먼 길인 줄은 몰랐다.


처음 2시간은 신나게 걸었다. 왼쪽에 사해를, 오른쪽에는 소금산을 바라보면서, 

'롯의 처가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그 기둥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가는 길목에 '롯의 처' 안내표지가 있긴 하지만 도보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저 표지를 지나 한참 더 가야 하기 때문이다.


롯의 처 안내표지(구글 맵)

지금 돌이켜보면 걸어서 가겠다는 무계획적 계획은 참 무모한 생각이었다. 

엔게디에서 요트바타까지의 도로(구글맵)

왜냐하면, 구글맵으로 경로를 검색해 보니 거리가 195km(90번 도로를 따라), 도보로 39시간을 잡는다. 39분이 아니고 39시간이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 처음부터 겁을 먹고 당황하였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것이 이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금요일 오후 4시쯤 출발했으니 온전히 도보로 걸었다면 토요일을 지나 일요일 아침 7시에나 도착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후까지가 안식일이다. 일요일부터 일주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90번도 남쪽방향으로(구글 맵)

위 사진의 오른쪽의 어딘가에는 마사다 요새가 있고 왼쪽은 그냥 사막이다.  더 가면 요르단이겠지.

간간히 차가 지나가길래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지나가던 차들 대부분은 일단은 멈춰 선다. 이 사막을 동양인 혼자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 궁금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은 대개 걱정을 하면서,


-어디까지 가세요?

-요트바타요. 에일랏 가능 방향이에요.

-아, 그쪽으로는 안 가는데... 혹시 물은 충분해요? 먹을 것은요?

-네, 있어요. 

-그 정도로는 부족할 것 같아요.


하면서, 물과 빵을 챙겨준다. 


그리고는 5분, 10분 정도라도 차를 태워준다. 근방에 마을이 있는지 나를 내려주고는 방향을 틀어서 멀어진다. 


이것은 사막 여행을 여러 번 한 나로서 매번 경험하게 되는 친절이었다. 


-'아,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에티켓인가 보다!'


그래서 나도 다른 여행자들을 보면,


-물은 충분히 있나요? 먹을 것은요?


하며, 꼭 물을 물병에 채워주거나 오렌지나 바나나 등 있는 것을 주곤 했다.


대여섯 번 정도의 히치하이킹으로 사해 끝단까지 오니,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까지 60km가 좀 넘는 거리였는데 그래도 해 지기 전에 3분의 1은 지났다. 4시간 정도 지난 8시쯤이었다. 


저녁이 되고 갈림길에 서니 방향은 틀림이 없이 왼쪽 방향이 맞는데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막에서 미아가 되나 싶기도 하고, 언제 집에 가나 싶었다.


내리막 길이라 마구마구 달렸다. 15년 전 일이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이 나다니... 지금 글을 쓰면서도 놀랍다. 아무 기록도 해 놓은 게 없는데도 말이다.


전에 내가 키부츠에 처음 도착 한 날, 한 외국인 친구가 키부츠 오는 버스에서 졸다가 깼는데 이상해서 버스에서 내렸다고 한다. 내려서 보니 키부츠가 아닌 중간 어디쯤 인지도 모르는 사막에서 미아가 됐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와 다른 건 내가 어디에 있는 줄은 안다는 것뿐 별 차이는 없다.


사해를 벗어난 도로는 에일랏까지 마을이 거의 없다. 도로에는 가로등도 없다. 이 말은 유일하게 조명이 하늘의 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생명과도 같은 내 휴대폰 플래시!


점점 어두워지는 밤하늘, 그리고 3월 말의 사막 밤공기는 정말로 보드랍고 시원했다.


시원한 바람과 공기가 더위를 식혀주었고, 힘을 오히려 내도록 부추겼다. 

다만 어둡기 때문에 지나가는 차가 있을 경우에는 무척 조심해야 한다. 휴대폰 플래시가 유일한 안전장치였다. 차를 피해야 하지만, 또 그 차를 잡아야 하는 내게는 좀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했다. 


이 외진 길을 그것도 금요일(안식일) 밤에 누가 다니겠는가!

다닌다 해도, 아우토반 같은 길을 천천히 갈 운전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나 같아도 이런 길은 마음 놓고 200km는 달리지 않을까? 후훗!


한참을 가다가 포기하고 찻길에 대(大) 자로 눕는다. 10분, 20분 그냥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공기를 마신다. 걱정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주변에 불빛이 없으니 하늘의 별빛이 뚜렷하고 밝다. 

-'아 내가 언제 이런 별들을 또 보겠는가!'


오리온 별자리(Pixabay)

'오리온'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은가? 

눈물 젖은 오리온 초코파이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누가 말했던가!


오리온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 사냥꾼이다. 

가운데 세 별이 그의 칼집이고 가운데 별이 오리온 대성운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카시오페이아 별자리(위키피디아)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는 'W' 혹은 'M'의 모양으로 이 또한 쉽게 찾을 수 있다. 허영심 많은 에티오피아 여왕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왼쪽아래부터 북두칠성 - 작은 곰자리 - 카시오페이아 / 가운데 북극성(Polaris) @브런치작가 천문학자 소년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밤하늘의 나침반'인 북극성이 있다.  아! 지금은 바다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지만. 이 날 나는 세 별자리를 동시에 다 볼 수 있었다. 내가 본 북두칠성은 사진보다는 조금 위에 커다랗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내 주위는 깜깜했기 때문에 훨씬 밟고 크게 볼 수 있었다.


사실 별자리 이야기는 내게 별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주로 새로운 사람과 밤하늘을 같이 있는 일이 있을 경우에 어색함을 깨기 위한 수단으로 내가 아는 별자리를 찾아 일러주고는 한다. 


내가 믿기로는 별, 해, 달 등의 천체는 신이 만들었고, 또 그 만든 목적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years)
창세기 1장 14절


여러분께 나의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고, '이런 기록도 있다' 정도로 소개하는 것이니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의 견해로는(별 신뢰감이 가진 않지만) 어느 날 'bang!' 하고 팽창하여서 여기저기 별들이 널리게 되었다는 이론(theory)을 믿는 데에 더 큰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누워서 한없이 별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느끼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걷는다. 2시간쯤 더 걸었을까. 차가 한 대 지나간다. 휴대폰 플래시를 한껏 흔든다. 보일 리가 없다. 저렇게 쌩쌩 달리는데! 

조금씩 지친다. 


30분을 더 걸었던가. 뒤에서 음악 소리가 크게 들린다. 있는 힘껏 플래시를 흔들며 소리소리를 지른다. 


-나 좀 태워줘~~~~~! 나 좀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차가 내 옆에 섰다. 빨간 스포츠카!

그리고 아주 젊은 남자가 나를 쳐다본다.


-Hey, where are you going? 

-Yotvata!

-Get in! I'm going to Eilat!


'이게 웬 떡이냐!'


 사실 좀 무서웠다. 눈이 좀 약간 풀려 보이기도 했고, 발음이 약간 꼬이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피드다. 얼마나 무섭게 달리는지... 아마도 나를 빨리 집에 데려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친구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잘못 탔다는 느낌을 차가 요트바타 정문에 서기 직전까지 버릴 수가 없었다. 어두워서 어디로 가는지 알 길이 없었으니까.


어쨌든, 12시 좀 넘어 요트바타 키부츠 정문에 내가 서 있게 되었다.

8시간 정도의 무모한 여행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요트바타가 정말 그리운 내 집같이 느껴졌다면 과장일까. 긴장이 풀리고 다리가 풀렸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키부츠 금요일 밤의 풍경은 여전했다. 여기저기 발런티어들은 삼삼오오 모여 물담배와 춤, 이야기들로 금요일 밤을 엮어가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는 내 침대 속으로 곤히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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