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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f yosef Sep 06. 2023

12. 태권도로 영어를 극복하다

이스라엘 견문록

1) 내가 있을 곳이 없어!

키부츠에 도착하고 2주 정도까지는 영어에 대한 공포감은 못 느꼈다. 계속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에는 준비해 둔 자기소개용 멘트들로 버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상대를 만나면 일단은 내 소개를 하고, 이름 물어보고, 어디에서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등 상대를 알아가는 기초적인 정보들로 이루어진 대화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이상 이런 대화는 진행불가다. 그 마지노선이 2주였다. 


두려웠다. 방에도 외국인이 있고, 밖에는 더 많은 외국인이 있다. 

-'당연하지. 외국이니까.'

한번 방에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웠고, 일단 밖에 나가면 방에 들어오기가 무서웠다.


아...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이렇게 살려고 나온 것도 아닌데.

듣는 것도 문제지만 말하는 문제는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해결해야만 했다.


2) 태권도가 나를 살리다!

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께 태권도 도복과 태권도화를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다. 나는 태권도를 무척 사랑한다. 지금도 태권도 시범 영상을 보면 심장이 떨린다.  대한 국민 누구든 안 그러랴! 그러나 나는 그 정도가 좀 더 큰 것 같다. 태권도화까지 장만하여 집에서 많이 연습했다. 단 시험을 치르지는 않아서 공인 1단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키부츠 숙소 앞(@Eyal Asher)

하루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와서 태권도에 관련된 용어를 영단어로 찾아 기록하고, 태권도 품새를 다시 공부했다. 그리고 선선해진 저녁에 발런티어 숙소 앞에 있는 작은 잔디밭에서 운동하기 시작했다.

먼저 20바퀴 정도 가볍게 뛰고, 스트레칭을 하고, 발차기와 품새 연습을 했다. 


며칠 후, 도복이 도착했다.

낯선 곳에서 도복 입고 운동한다는 것이 좀 창피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에는 절박했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방에서 밖을 나와야 했으니 말이다.

저녁마다 도복을 입고 앞마당에 나왔다. 혼자 잔디밭을 가볍게 뛰고, 스트레칭을 하고, 발차기를 연습한다. 어느 날인가 소문이 났는지 내가 운동하는 시간에 맞춰 다른 발런티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키부츠닉 어린아이, 청소년들도 구경하러 모였다. 자연스럽게 그들 중에 호기심을 갖고 배우겠다 는 사람들이 생겼다. 둥글게 둘러앉아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먼저 같이 하고 발차기 시범을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전부터 준비해 온 문장들을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떠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태권도에 대해서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몸의 부위 명칭이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을 땐, 손으로 짚으면서 'this' 하면 된다. 그리고는 기억이 안 난 단어는 다시 찾아서 대본을 완성해 갔다.


앞차기를 보며 주면서,

- This kick is called '앞차기', front kinck in English.

- Kick the '앞차기' with the sole of your foot.

- When you kick  

- first, lift your leg 

- second, fold your knee

- and kick by pusing.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이 상황에서.

암튼 열심히 설명하고, 보여주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좀 더 극복할 수 있었다. 

공동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 하나 건너에 두 발런티어가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한 명은 미국인이었고 다른 친구는 아일랜드인이었다. 둘은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대화의 반 이상이 'What?'이었다. 서로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처음에 그 장면을 목격한 나는,

-'서로 다른 말을 하나?' 

-'왜 서로 못 알아듣지?'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완벽한-완벽하게 할 수도 없겠지만, 내 기준에서- 영어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두려움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 무렵에 한국인 20대 초반의 빼빼하고 안경을 쓴 P가 키부츠에 왔다. 금세 형님 동생하게 되었다. P가 내가 저녁마다 도복을 입고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형님, 저 초등학교 때 태권도 선수였어요!

-우와! 잘 됐다! 빨리 집에 전화해서 도복하고 태권도화 보내달라고 해, 같이 하자!

-네, 형님!


매일 저녁 둘이서 같이 도복을 입고 운동을 한다. 이 친구의 발차기는 정말 부러울 정도로 화려하다. 


-'역시 선수는 선수네!'


3) 피를 봐야...

Pixabay

나도 열심히 따라 하며 연습을 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20대 초반의 키 크고 마르고 피부가 하얀 독일인 발런티어 요하네스가 관심을 보인다. 이름이 '요하네스'라고 해서 나는 장난 삼아 머리를 숙이고 손을 이마에 댔다가 떼면서,

- Your highness~!

하곤 했다. 자기도 따라서 인사하며 웃는다.


 발차기 연습도 몇 번 해보더니 나와 겨루기를 하잔다. 마른 체구에 키가 170이 안 되는 작은 몸집인 나를 만만하게 본 것이다. 그는 키가 크긴 했지만 역시 말라서 근육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괜찮겠냐는 내 말에, 


-No problem!


스트레칭으로 몸을 간단하게 풀고 겨루기를 한다. P가 심판을 본다. 처음에는 살살하다가 한대 씩 주고받으니 슬슬 열이 오른다. 그러다가 뒤후려차기를 했는데, 하얀 요하네스의 코에서 빨간 코피가 흘렀다. 상황 종료다. 사실 내 발에 맞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암튼, 부딪혀서 맞은 것이리라.


이 사건 때문인지는 모르나 그 뒤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구경하게 되었다. P군과 의논하여 인터넷으로 태극마크가 새겨진 머리끈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일정한 훈련을 마친 수련생(^^)에게 선물로 주기로 한 것이다. 


첫 번째 수료생은 영국에서 온 이다. 역시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존은 태권도에 진심이었다. 정말 열심히 훈련을 했다. 다만 아쉽게도 그가 영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빨리 찾아와서 우리는 경건하게 머리띠 전달식과 함께 수료식을 거행했다.


몇 주 동안 사람들 앞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내게 있던 영어,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스르륵 가셨다. 때마침 한국인 친구들이 오기도 해서 외로움도 많이 덜어낼 수 있었다.


4) 떼로 몰려온 한국인 발런티어들!

내가 있던 키부츠에는 처음엔 PY양이 혼자 있었고, 그 뒤에 내가, 그리고 태권도 선수 PS군이 몇 주 동안 함께 했다. 예루살렘을 다녀온 후에는 점점 한국인들이 늘어났다. 체육과 졸업한 초등학교 교사 KD, 몸짱인 SK, 축구를 잘하는 HD, 피부가 하얗고 예뻐서 키부츠에서 제일 인기 많았던 KM, 수영 선수 출신 SS, 제일 어린 막내 WM, 귀여운 PJ, 그리고 마지막으로 합류한 KH. 한국인 11명으로 늘어났다. 나이가 제일 많은 내가 자연스레 한국인 발런티어 매니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의논하고 발런티어 매니저 A에게 의견을 피력하는 그런 놀라운 일들을 하게 된다.


한국인들이 많아지니 함께 자연스럽게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삼겹살 파티, 사막 트래킹 및 베두인 족 레스토랑 방문 등. 특히 나에게 기억에 남는 것은 수영 선수 출신 SS로부터 생애 처음으로 접영을 배우고 마스터한 일이다. 지금도 참 고맙게 생각한다.



이전 11화 11. 사막의 밤하늘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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