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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by 울라브 하우게

고등학교 졸업을 전후로 시를 어렵게 받아들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화자의 숨은 의도를 파악해야 할 거 같았고, 단어의 함축적 의미를 반드시 찾아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시는 굉장히 아름답고 그냥 읽고 느끼면 된다라고 깨우쳐준 시인이 바로 울라브 하우게였습니다. 그가 존경하던 시인 “브레히트”에 대해 ‘현관에 놓인 나막신처럼 바로 신으면 된다’라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 말이 저에게는 뒤통수를 맞은 듯하였습니다. 시는 어려운 게 아니라 그저 편안하게 읽으면 된다고 일깨워준 작가의 말을 듣고 시를 그동안 멀리했던 저를 반성을 하였습니다.      


‘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 서서 날이 어찌 될지 내다보며 기다리며 이해하는 시인은 한 그루 나무 같다.’ 울라브 하우게는 이 구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시인입니다. 시가 자연스럽고 부담스럽지 않으며, 매일 지나갈 때마다 보이는 길거리의 나무 같은 한결같지만 친근함도 있습니다. 제가 그의 시를 좋아했던 이유는 내면과의 대화를 표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스스로 주고받는 말들 속에서 평온하지 못하고, 늘 번민과 갈등하고 망설이지만, 어떻게든 내면의 평화를 찾으려 하는 그 순간, 모든 것들은 아름답게 정의하는 모습을 보며 멋진 시인이구나 싶었습니다. 거창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하려는 그가 추구하는 세계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복잡하지 않고 간단명료하며 쉽게 표현하지만, 시 안에서 끊임없이 생각거리를 음미하게 합니다. 작은 거 하나하나 소중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눈이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에

서투른 창이라도 겨눌 것인가

아니면 어린 나무를 감싸 안고

내가 눈을 맞을 것인가

저녁 정원을 

막대를 들고 다닌다

도우려고.

그저

막대로 두드려주거나

가지 끝을 당겨준다.

사과나무가 휘어졌다가 돌아와 설 때는

온몸에 눈을 맞는다

얼마나 당당한가 어린 나무들은

바람 아니면

어디에도 굽힌 적이 없다

바람과의 어울림도

짜릿한 놀이일 뿐이다

열매를 맺어본 나무들은

한 아름 눈을 안고 있다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시인은 노르웨이의 울빅에서 평생을 살며 정원사 일을 하였고, 시를 썼습니다. 평생 400여 편의 시를 남겼고, 거의 독학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배워 200여 편의 시를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사후 그가 남긴 두툼한 일기가 있는데 자국인 노르웨이에서조차 그 일기는 따로 출판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곳에서 특별하게 문학이나 시를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 오히려 그는 당시 시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멋진 시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하우게는 줄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작은 스푼으로 마치 간호사가 약을 주듯 먹여준다. 슬픔과 감사로 가득했던 장례식은 어린 하우게가 세례 받은 계곡 아래 성당에서 있었다. 말이 끄는 수레가 그의 몸을 싣고 산으로 올라갔다. 작은 망아지가 어미 말과 관을 따라 내내 행복하게 뛰어갔다” 그의 시를 존경하던 어느 한 시인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며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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